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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만에 있는 아름다운 열대의 섬. 세계에서 자유로운 삶을 추구하는 젊은이들이 모여들어 자급 공동체를 이루었다. 매일 하는 일은 해변에서 수영을 하거나 파티를 벌이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을 보내도 누구 하나 야단치지 않는 완벽한 낙원이다. 그런데 한 젊은이가 바다에서 수영을 하다 상어에게 물리는 사고를 당한다. 그런데 아무도 그를 병원에 데려가지 않고 방치한다. 자신들의 낙원이 다른 이들에게 알려질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젊은이는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계속 비명을 지른다. 그러자 다른 젊은이들은 파티 분위기를 깬다는 이유로 죽어가는 친구를 숙소에서 멀리 떨어진 숲 속에 유기해버린다.

대니 보일 감독이 영화로 만든 알렉스 갈런드의 베스트셀러 소설 <비치>에 등장하는 내용이다. 이 소설의 주제는 진정한 낙원에 대한 질문일 것이다. 낙원에는 문자 그대로 불행이나 고통 따위는 없을 것이라고 우리는 쉽게 생각한다. 그러나 갈런드의 소설은 그렇게 불행과 고통이 없는 낙원이 역설적으로 또 다른 지옥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진정한 낙원은 무엇일까. 남의 불행과 고통을 외면하거나 방치해도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받을 필요가 없는 곳이 낙원일까. 아니면, 그 불행과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지혜와 대책을 함께 내놓을 수 있는 곳이 낙원일까. 당연히 후자일 것이다. 왜냐하면 불행과 고통이 존재하지 않는 삶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불행과 고통을 아예 지워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불행과 고통의 실체를 인정하고 해결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는 것일 터이다. 그것을 위해 근대 이후 인류는 민주주의 정치체를 발전시켜왔다. 불행과 고통을 사전에 차단하고 봉쇄해버리는 전체주의보다 사후에 문제를 함께 해결할 수 있는 민주주의가 훨씬 인간적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어떤 불가항력적인 문제를 사후에 해결하기 위한 정교한 정치기술의 결과물이 정부체계였다고 볼 수 있다. 한국도 ‘민주화’ 이후에 이런 정치기술을 선진화라는 믿음으로 열심히 학습하고 실현하고자 노력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요즘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보고 있으면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다.

난항을 겪고 있는 세월호특별법만을 보더라도 과연 한국에 제대로 된 정부의 기능이 있는지 삼척동자도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참사 현장인 진도 팽목항에 내려가서 유가족들에게 모든 문제를 앞장서서 해결하겠다고 장담한 장본인은 다른 누구도 아닌 정부의 수장 대통령이었다. ‘해경 해체’라는 특단의 조처를 대국민담화로 발표하면서 눈물까지 보인 당사자도 바로 대통령이었다. 그런데도 상황은 이상하게 흘러갔다. 책임 지고 해결하겠다던 대통령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다가 갑자기 국무회의 발언을 통해 ‘삼권분립’에 위배되기 때문에 특별법은 자신이 관여하지 않겠고 밝혔다. 당연히 유가족의 입장에서 보면 대통령 당신이 직접 해결해주겠다고 나섰다가 석연치 않은 이유로 발을 빼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는 대목이다.

세월호 참사 당시 대국민담화 도중 눈물을 흘리던 박근혜 대통령. 지금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출처 : 경향DB)


교과서적으로 본다면, 대통령의 발언은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삼권분립 원칙을 중요하게 여겼다면 대통령 당신은 왜 참사 현장을 직접 찾았고, 온갖 해결책을 유가족 면담에서 손수 지시했는지 도무지 앞뒤가 맞지 않다. 여당은 이제 와서 세월호 문제를 특정 세력이 정치적으로 이용한다고 볼멘소리를 하고 있지만, ‘순수 유가족’이라는 논법을 동원해 불순세력에 조종당하는 듯한 뉘앙스로 사안을 정치적 관점에서 바라보게 만든 이들은 정작 누구였던가. 원칙으로 돌아가서 생각해보자. 삼권분립이나 사법체계라는 것은 왜 필요한 것인가. 말할 것도 없이 민주주의를 제대로 작동시키기 위한 것이지 자신의 지지자들만 바라보는 정부와 여당에 정당성을 부여해주기 위한 핑계가 아니다.

지리멸렬한 야당의 위기를 정부와 여당이 이용해서 해결해야 할 문제를 회피한다고 면죄부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세월호 참사의 원인을 규명하는 것은 정치적 입장을 넘어선 공동체 자체의 문제이다. 대승적으로 결단을 내려야 하는 사안이지 정세를 이용해서 자신들에게 유리한 입지를 확보하는 계기로 삼을 순 없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낙원은 불행과 고통을 아예 원천봉쇄함으로써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불행과 고통을 제대로 처리하고 해결할 수 있을 때 도래한다. 정부와 여당은 여론조사에서 드러난 반쪽의 지지율에 만족해서 손을 놓아서는 안될 것이다.


이택광 | 경희대 교수·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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