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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신화에 등장하는 헤라클레스는 신의 제왕인 제우스와 알크메네라는 공주 사이에서 태어난 반인반신의 존재로 그려진다. 제우스의 부인인 헤라의 저주를 받아서 헤라클레스는 취중에 자신의 자식들을 죽이고, 12개의 과업을 완수해야 비로소 죄를 씻을 수 있게 되었다.

이 12개의 과업은 대체로 괴물과 야수를 퇴치하고 다른 지역의 권력자를 굴복시키는 일이었다. 이러한 이야기만 놓고 보면 별반 특별할 것이 없는 신화이다.

그러나 이 헤라클레스가 근대 서양에서 성장과 발전의 상징이었다는 사실을 알면 흥미가 동한다. 눈썰미가 있는 여행객이라면, 서양의 저택이나 궁전 천장화에 그려져 있는 헤라클레스의 이미지를 종종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질투와 배신으로 점철되어 있는 폭력적 이야기의 주인공이 왜 이렇게 화려한 장식으로 다시 태어나서 기림을 받고 있는 것일까. 대체로 헤라클레스는 왕자를 교육하던 방에 그려져 있다. 신화에 따르면, 헤라클레스는 18세에 님프로부터 쾌락과 미덕 둘 중에서 어떤 삶을 추구할 것인지 질문을 받는다. 쾌락을 선택하면 평생을 안락하게 살다가 죽을 것이고, 미덕을 선택하면 고난을 겪지만 나중에 불멸의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예언이었다.

장삼이사라면 쾌락을 선택하겠지만, 당연히 신화의 영웅 헤라클레스는 미덕을 선택한다. 그래서 불멸을 향한 그의 고난은 시작되었고, 신화의 끝이 그렇듯, 자신의 노력과 운명의 힘으로 마침내 하늘로 올라가서 별자리가 된다.

헤라클레스가 왜 서양에서 추앙받았는지 감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헤라클레스는 세속의 쾌락을 등지고 불멸을 추구하는 자기계발의 화신이었기 때문이다. 왕자라면 마땅히 헤라클레스처럼 쾌락보다도 미덕을 선택해서 장차 왕국을 부강하고 강인하게 만들어야 했다. 헤라클레스 같은 ‘진짜 사나이’가 왕자의 ‘멘토’라고 한다면 얼마나 든든하겠는가. 이런 바람을 담아서 왕은 아들의 방을 헤라클레스의 상징으로 도배를 했을 터이다.

근대가 도래하면서 이런 헤라클레스의 상징성은 정치적 의미로 한 단계 더 격상한다. 탁월한 개인의 자기계발이라는 함의에서 국가의 성장과 발전이라는 훨씬 집단적 맥락을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서양이 아닌 다른 지역의 존재들은 헤라클레스의 12과업에 등장하는 괴물에 비유되곤 했다. 많은 괴물 중에서도 특히 히드라는 헤라클레스의 대척점에 놓여 있는 혼돈의 대명사였다.

히드라는 머리 하나를 자르면 두 개가 자라는 무시무시한 뱀이다. 서양의 계몽주의를 암시했던 헤라클레스와 대조적으로 히드라는 혼돈 그 자체를 지시하는 비합리성의 상징이자 서양의 성장을 위해서 없어져야 할 악의 화신이었다.

이처럼 헤라클레스는 본의 아니게 서양의 제국주의를 옹호하는 상징 구실을 한 셈이다. 성장과 개발이라는 명분으로 타자를 정복하고 제거하는 것에 정당성을 부여했던 어두운 역사가 헤라클레스 신화에 추가되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헤라클레스라는 존재는 더 이상 우리에게 이런 의미로 다가오지 않지만, 여전히 그 상징이 대변했던 성장의 신화는 12과업보다도 더 많은 과업을 수행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경우만 보더라도, 헤라클레스 신화는 다른 모습으로 형상만 바꿔서 여전히 활개를 치고 있지 않은가.


문제는 신화의 헤라클레스라기보다 현실에서 자신과 다른 이들을 ‘악’으로 규정하고 혼돈의 원인으로 지목해서 퇴치 또는 제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태도일 것이다. 그 태도의 밑에 깔려 있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성장주의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이다. 이런 믿음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는 목소리들이 끊이지 않았지만, 한국 사회에서 헤라클레스를 흉내 내기에 급급한 근육질의 ‘영웅들’은 자신의 불멸만을 위해 마음에 들지 않는 이들을 히드라로 규정하고 몽둥이를 휘두르기에 여념이 없는 것 같다. 영웅이 아니라 불한당들이 지배하는 세계가 종국에 선사할 것은 불멸이라기보다 환멸일 것이다.

신화의 헤라클레스가 불멸일 수 있었던 까닭은 완력 때문이 아니라 고난을 극복할 수 있었던 용기 덕분이었다. 이 용기는 자신의 믿음만을 옳다고 여기고 수많은 히드라들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그 믿음을 의심하고 세계를 재구성할 수 있는 미덕일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을 이끌어 왔던 가치들을 시급히 돌아볼 때가 되었다고 본다. 그것이 진정한 헤라클레스의 용기이다.


이택광 | 경희대 교수·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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