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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택광 | 경희대 교수·문화평론가


 

안철수 전 교수가 보궐선거 출마를 선언하면서 귀국했다. 북한의 전쟁위협을 강조하는 분위기가 무색하게 국민의 시선은 그의 귀국 일정에 쏠렸다. 그만큼 그의 귀국은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왜 보궐선거에 출마하는지 모른다고 말할 이들은 없을 테다. 귀국의 명분은 명확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집중된 관심에 대해 과연 안 전 교수가 적절하게 화답했던 것인지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귀국 당시 공항에서 이루어진 회견은 솔직히 이런 문제의식을 강화하는 것처럼 보였다. 신당창당과 관련한 질문에서 그는 “일단 당선이 된 뒤에 고민하겠다”는 식으로 대답했다. 즉답을 회피하는 인상이 되풀이된 것이다.


주민에 인사하는 안철수 전 교수 (경향신문DB)


안 전 교수의 귀국이 의미를 가진다면 바로 야권 정계개편에 대한 기대감 때문일 것이다. 그가 보궐선거에 출마하려는 명분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국회의원을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야권 정계개편을 위한 디딤돌을 놓겠다는 것이 그의 출마를 정당화해주는 근거인 셈이다. 그런데 이 중요한 문제에 대해 그는 말을 아꼈다. 


신중한 접근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명확한 답을 듣고자 했던 이들에게 아쉬움을 남기기에 충분했다.


안 전 교수는 그 회견에서 강력한 의지를 표명하면서 향후 야권 정계개편 청사진을 부분적이나마 제시했어야 한다. 왜냐하면 야권 정계개편 문제는 단순하게 안철수라는 개인의 정치입문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지난 선거에서 출몰했던 ‘안철수현상’의 연장선에서 이 문제를 보아야 하는 것이다. ‘안철수현상’은 안철수 개인의 것이 아니다. 안철수로 표상되는 것도 있지만, 표상되지 않는 것도 있는 것이다.


마치 ‘새 정치’를 규정하는 순간 ‘낡은 정치’가 되는 원리와 마찬가지이다. ‘새 정치’는 정당정치 바깥에 있는 정치를 암시하는데, 보궐선거를 통해 안 전 교수가 국회의원으로 당선된다면 ‘새 정치’의 의미는 퇴색할 수밖에 없다. 


정당정치는 전혀 새로운 정치를 만들어낸다기보다, 지금 있는 정치역량을 통해 ‘국민’의 이해관계를 재현하는 장치이다. 물론 이런 정당정치는 결코 ‘국민’을 개인으로 재현할 수 없다. 개인의 요구 모두를 정당정치가 그대로 받아안을 수 없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정치에 대한 개인의 요구를 완벽하게 재현하지 못한다는 의미에서 언제나 정당정치는 ‘낡은 정치’일 수밖에 없다. 이런 의미에서 안 전 교수가 국회로 진출해서 정당정치 내로 진입한다면, ‘새 정치’는 오히려 그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을 것이다. ‘새 정치’와 야권 정계개편은 보기보다 복잡한 속내를 감추고 있는 셈이다. 이런 맥락에서 더 이상 ‘새 정치’는 야권 정계개편의 명분으로 작동하기 어렵다.


지금 필요한 것은 야권 정계개편을 통해 정당정치를 정상화하는 것이고, 이를 위해 안 전 교수가 헌신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그래야 직접 언급했던 것처럼 정치공학적 접근을 넘어선 보궐선거의 정치성을 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선거에서 목격한 것은 정당정치의 위기였고, ‘새 정치’에 대한 요구였다. ‘안철수현상’으로 표상되었던 이 위기와 요구는 안철수 개인의 역량을 통해 구체화될 수 있는 것이었지만, 지난 대선에서 돌파력의 한계는 분명했다.


안 전 교수가 정치인으로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자신에게 요구되고 있는 것을 실현시킬 수 있는 역량을 제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귀국 비행기에서 최장집 교수의 책을 읽는 모습 같은 이미지 이상을 보여준 것이 없는 것도 부정하기 어렵다. 박원순 시장을 만나는 이벤트도 이런 이미지 정치의 연장선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 같다. 이미지 이상 무엇이 필요한데, 그것은 명분을 자신의 방식으로 재구성하는 것을 통해 가능하지 않을까 한다.


그 명분은 자중지란에 빠진 야권을 재구성하고, 이념의 내용을 채우는 것이다. 한국 사회가 지금 직면하고 있는 정치상황은 진보의 몰락과 보수의 분열이라고 볼 수 있다. 진보보다도 보수의 가치를 어떻게 제대로 구현할 것인가 이 문제가 정치인의 관건으로 등장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안철수현상’은 진보의 문제라기보다 보수의 문제였다. 진보의 의제가 강력했다면 ‘안철수현상’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난 선거를 통해 목격한 것은 다양한 보수주의자들이 출현했다는 사실이다. 너도 나도 제대로 된 보수를 자처하는 현상이 있었다. 보수의 분열은 보수의 경쟁을 촉진시키고 있는 것인데, 이런 상황에서 야권 정계개편이 어떤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할지 그림은 분명하다는 생각이다. 안 전 교수가 이런 정국에서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 이제 보여줄 필요가 있다. 그래야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 보궐선거에 출마한 것이 아니라는 자신의 명분을 확실히 드러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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