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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은 이제 시간문제가 되었다. 그러나 이 현실이 호락호락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대통령에게 쏠려 있는 시선 덕분에 정작 중요한 문제가 부각되고 있지 않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이 사태의 원인은 대통령 자신이다. 그러나 내가 흥미로웠던 것은 지금까지 대통령의 문제를 까맣게 몰랐다는 듯이 구는 보수 언론들이다. 반추해보면, 이상 징후는 취임 초기부터 감지되고 있었다. 인수위 시절부터 엇박자가 빈번했고, 외교 분야에서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일들이 비일비재했다. 세월호 정국에서 드러난 무능이나 대북정책에서 보여준 모순은 이 정부에 문제가 있고, 그 원인이 대통령이라는 사실을 암시하는 것이었다.

장관과 수석비서관들이 대통령을 독대한 적이 없다는 발언은 충격적이라기보다 어이없는 일이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적어도 이 정부를 구성했던 각료들은 대통령에게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인지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침묵했다. 집권여당인 새누리당 역시 마찬가지였다. 직접적으로 몰랐다고 하더라도 어렴풋이 짐작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 만일 지금 앞다투어 고백하듯이 진짜 이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면 그 또한 책임 방기라고 할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이들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모든 문제의 원인을 방치한 셈이다.

한때 ‘잃어버린 10년’ 운운하면서 ‘좌파정부’가 망친 대한민국을 다시 살려야 한다고 주장했던 보수들이 이명박 정부에 이어 박근혜 정부를 탄생시켰다는 사실은 결코 망각의 강을 건널 수 없다. 말하자면, 지금 이 위기는 단순히 대통령 하나만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보수정권 재창출이라는 명분으로 대통령과 관련한 문제를 축소 또는 억압했다는 사실이 더욱 심각한 것이라고 하겠다.

대통령 일인의 권력에 국정이 좌우되는 한국 민주주의의 취약성을 해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다. 개헌 논의가 나오는 배경도 이 때문이다. 대통령이 국민을 대표하고 의회가 경제적 이익집단을 대변하는 기이한 제도는 87년 체제의 특징이기도 하지만, 또한 한국 정치 발전의 질곡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 벌어지는 사태를 보고 있으면, 과연 개헌을 주장하는 정치인들을 믿을 수 있을지 모를 일이다. 역설적으로 대통령 일인이 국정을 좌지우지하게 만들어온 주역이 정치인들 자신이 아닌지 되물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최순실이라는 선출되지 않은 권력에 농락당했다는 억울함이 압도적일 수도 있다. 그러나 대통령조차 독대할 수 없는 장관과 수석비서관들이 침묵을 유지했던 배경은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자신이 임명한 각료들과 국정을 논하지 않는 대통령의 행태가 ‘독특한 국정 스타일’로 여겨졌던 것일까. 오히려 그렇게 대통령이 무엇을 하든 자신들의 자리만 보전하면 된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이런 복지부동이 지금 사태를 만들어낸 복합적인 원인은 아닌지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이 모든 것은 보수 정치 자체에 대한 근본적 불신을 유발한다. 그렇게 모든 것을 바꾸고, 대한민국 경제를 발전시키겠다고 큰소리를 쳤던 보수 정치인들이 사실상 최순실 게이트를 막지 못했거나 오히려 방조했다는 사실에 대한 뼈저린 반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

대통령 퇴진에 미온적이었던 야당 정치인들 역시 책임을 벗어나긴 어렵다. 민주주의의 원칙을 지키기보다 정치공학적인 관점에서 사태를 바라보는 답답함은 여전하다는 생각이다. 어떤 이들은 ‘혁명’이니 ‘봉기’를 소리 높여 외치지만, 이런 분위기에서 근본적인 변화를 기대하긴 어렵다는 생각이다. 물론 새로운 정치세력은 쉽게 출현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지금 필요한 것은 대통령 퇴진과 집권전략이라는 틀을 넘어서는 새로운 정치 전망이다.

이 전망은 그냥 얻어진다기보다, 사태를 사태 그대로 받아들이는 개방성을 통해 형성될 수 있을 것이다.  벌거벗은 임금님이라는 우화가 떠오른다. 서로 권력에 아부하던 그 신하들은 “임금님이 벌거벗었다”는 한 어린이의 솔직함 앞에서 속수무책이었다. 정치인의 권위는 진실에 대한 솔직한 태도에서 발생한다. 지금 퇴진 압박을 받고 있는 대통령도 한때는 진솔한 태도로 인해 카리스마를 얻기도 했다.

분출하고 있는 시민의 요구가 또 다른 권력엘리트의 자리이동에 머물지 않아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자유민주주의’라는 표상으로 굳어져 있는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를 더욱 발본적으로 주장할 필요가 있다. 급진화된 시민의 주장만이 보수 정치의 한계를 넘어갈 수 있는 새로운 정치적 전망을 가능하게 만들 것이다.

이택광 | 경희대 교수·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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