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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릿광대인줄만 알았던 도널드 트럼프가 마침내 미 공화당 대선 후보가 되었다. 트럼프를 미치광이 취급했던 이들에게 충격적인 일이 벌어진 것이다. 물론 이런 상황이 본선에서 어떤 결과를 낳을지 장담할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공화당 대선 후보가 되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트럼프 현상이 무시할 수 없는 상승력을 가진 실체적 열망이라는 사실을 증명한다.

미국은 대체로 리버럴리즘과 보수주의가 서로 균형을 이루면서 정치적 안정을 도모해온 국가이다. 급진주의를 배제한 보수 양당 체제는 자유민주주의의 보편 모델로서 추앙받아 왔다. 이런 자유민주주의는 2차 세계대전 동안 미국이 반파시즘 전선에 동참하면서 가치화되었고, 냉전시기를 통과하면서 확고한 ‘자유 진영’의 이념으로 자리 잡았다.

트럼프 현상은 이렇게 미국 주도의 전후 세계 체제를 지탱해왔던 정치적 질서에 이상 기류가 흐르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이 이상 기류는 트럼프가 연일 내뱉는 ‘고립주의’라는 겉모습으로 드러나고 있지만, 사실상 그 뿌리는 자유민주주의라는 스크린에 덮여서 보이지 않았던 인종주의, 반지성주의, 백인우월주의, 기독교 근본주의 등이다. 지금까지 미국에서 지엽적인 것으로 간주되어 왔던 이런 극우주의 경향이 트럼프라는 프리즘을 통해 제 색채를 드러낸 것이다.

트럼프 현상의 본질은 민주주의에 대한 반발심이다. 트럼프를 지지하는 이들은 미국의 민주주의가 자신들의 의견을 대의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는 점에서 일정하게 자유민주주의의 한계를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더 완전한 민주주의를 추구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민주주의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미국 공화당의 대선후보 지명이 사실상 확정된 도널드 트럼프_AP연합뉴스

이런 판단은 이성적이라기보다 감정적이다. 트럼프의 캠페인이 혐오 정서를 부추기는 방식으로 호응을 얻었다는 것은 많은 문제를 시사한다. 트럼프 현상 역시 민주주의라는 제도를 통해 반민주주의가 세를 얻었다는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1980년대 이후 미국은 하나의 미국을 만들어내기 위해 여러 규범들을 만들어냈는데, 그중 하나가 ‘정치적 올바름’을 위한 문화운동이었다.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요구는 차이를 존중하고 소수성을 옹호한다는 취지였지만, 일정 부분 ‘정치적 올바름’ 자체를 규범화해서 이 규범에 들어맞지 않는 것을 모두 나쁜 것으로 규정해버리는 교조적 경향으로 귀결되기도 했다. 이런 ‘정치적 올바름’의 문제를 트럼프 지지자들은 자신들에 대한 역차별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런 리버럴리즘의 한계가 트럼프 현상에 일정하게 영향을 끼쳤다고 해도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문제는 이보다 더 복잡하다.

개인적으로 나는 미국의 트럼프 현상은 공화당으로 대표돼 왔던 보수주의가 약화됐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부시 정부가 노골적으로 보여줬던 것처럼 공화당은 정치적 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기독교 근본주의와 손을 잡는 제스처를 취했다. 이라크 침공을 십자군 원정에 비유했던 수사학은 그냥 등장한 것이 아니다. 신자유주의의 확산과 경기침체는 공화당을 지지하던 중산층의 이탈을 낳을 수밖에 없었다. 이른바 ‘합리적 유권자’에 해당했던 이들이 이탈하면서 만들어진 공백을 채운 것은 이민자와 소수인종에 대해 불만을 품은 백인 노동자들이었다. 불법 이민자들과 소수인종들이 자신의 일자리를 빼앗아간다고 생각하지만,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규범 때문에 불만을 토로하기도 쉽지 않았던 이들은 ‘국경 폐쇄’를 소리 높여 외치고, 남의 나라를 위해 미국의 돈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트럼프가 자신들의 속마음을 시원하게 대변해준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어릿광대라고 하기에 트럼프의 제안은 구체적이다. 트럼프는 “다시 미국을 위대하게 만들 것이다” “미국을 보호할 것이다” “우리는 유럽과 다른 길을 갈 것이다” 등의 기치를 내걸고 있다. 더불어 해외로 이전한 공장을 불러들여 생산직 일자리를 늘리고 불법 이민자를 추방하겠다고 한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쌓아 불법 이민을 근본적으로 막아서 노동자의 이익을 지키겠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런 파격적 주장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껴온 백인 노동자들에게 사이다 같은 청량감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트럼프가 대선에서 승리해 만에 하나 미국 대통령이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벌써부터 아찔하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그가 내세우는 ‘고립주의’는 한반도에서 미군을 철수하겠다고 공공연하게 선언하게 만든 배경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미국 우선주의는 민주당 대선 후보 힐러리 클린턴의 입장에서도 확연하게 드러난다. 사실상 트럼프와 힐러리는 정책적인 측면에서 거의 변별성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트럼프든 힐러리든,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에게 모두 부담스러운 대통령들일 것이다. 이런 직접적인 영향 못지않게 트럼프 현상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이른바 민주주의 선진국이라는 미국 역시 트럼프 현상 같은 포퓰리즘에 속수무책이라는 사실이다. 과연 이 현상은 진전일까 퇴행일까. 민주주의의 역설을 넘어선 민주주의를 고민할 때이다.


이택광 | 경희대 교수·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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