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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퍼트 주한 미 대사에게 자상을 입힌 김기종씨에게 경찰이 국가보안법 적용을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대통령까지 직접 나서서 “한·미동맹에 대한 공격”이라고 언급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작 피해 당사자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은 이 사건에 그렇게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 같지 않고, 한국 정부만 애가 달아 좌불안석하는 인상이다. 초임장교 임관식에 참가한 대통령은 재차 “어떤 외부의 방해에도 한·미관계는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천명했다. 이번 사건이 ‘외부의 방해’라는 묘한 인상을 남긴 것이다.

그런데 경찰이 이적표현물 소지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분향소 설치 혐의 등을 언급하면서 김기종씨의 범행과 이른바 ‘종북세력’의 관계를 입증하려고 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논리의 허술함만이 드러나고 있을 뿐이다. 이번 사건을 개인의 단독범행이 아니라 한·미동맹을 반대하는 ‘종북세력’의 음모로 몰고 가서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사실상 얻을 것이 없다는 판단이다. 있다면 공안 분위기를 조성해서 지지율이 하락하고 있는 정부에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내는 정도일 것이다.

내가 보기에, 대통령이 거듭 “한·미동맹은 굳건하다”는 식으로 발언하고, 경찰이 단독범행보다도 배후세력을 찾기 위해 철저히 조사하겠다고 나서는 모양새는 확신에 찬 것이라기보다, 어딘가 불안한 마음을 애써 감추고 있는 느낌이다. 솔직히 말해서 대통령이든 경찰이든, 김기종씨가 왜 주한 미 대사를 공격한 것인지 도통 이유를 가늠할 수 없기에 이런 식으로 대응을 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과거 같으면 이런 일은 분명한 이유를 가졌다. 대학생들이 미 문화원을 점령했던 1980년대를 상기해보자. 그때 대학생들은 1980년 광주에서 일어난 비극의 책임을 미국에 묻는다는 확고한 목적의식이 있었다. 전시작전권을 가진 미국이 광주에서 벌어질 일을 몰랐을 리 없다는 논리적 추론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김기종씨의 범행은 겉으로 보기에 평화를 외치면서 폭력을 휘두르는 아이러니를 내포하고 있었다. 명분은 한·미 연합훈련을 반대한다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주한 미 대사를 공격 대상으로 삼을 이유는 없는 것이다. 진정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는 군사훈련을 반대하겠다면 훨씬 더 상징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의사를 전달할 수 있었다.

아무리 다양한 관점에서 이유를 따져봐도 속 시원한 대답을 찾기 어렵다. 이렇게 알 수 없는 김기종씨를 ‘괴물’이나 ‘광인’으로 부르는 것은 너무도 손쉬운 일이다. ‘괴물’이나 ‘광인’은 이해할 수 없는 존재이다.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은 ‘외부의 존재’라는 것을 암시한다. 그러나 과연 김기종씨는 ‘외부’에서 나타난 존재일까.

어쩌면 지금 대통령이 강조하는 ‘외부의 방해’나 경찰이 입증하려는 ‘종북세력’보다도, 이런 범행이 일어났음에도 도대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이 상황이야말로 진정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위기의 실체인지도 모른다. 김기종씨의 과거 이력 때문에 이 문제를 해묵은 이념대결로 몰고 가려는 시도는 위기의 본질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하는 변죽에 가깝다. 이념대결이라는 거짓 문제를 벗어나서 보면, 김기종씨의 행동은 예전에 신은미씨에게 폭발물을 던진 고등학생이나 페미니스트가 싫다고 IS에 가담한 김모군, 그리고 청와대를 폭파하겠다고 협박했던 강모씨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른 것이 있다면, 김기종씨의 나이 정도일 것이다. 이들의 행동은 개인의 분노를 상징적인 대상에게 표출하는 방식으로 드러났다. 우리 모두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던 대구 지하철과 숭례문 방화도 비슷한 맥락에 놓여 있는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주최 조찬 강연회에서 김기종씨에게 습격을 당한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가 앉았던 식탁에 피가 묻어 있다. _ 연합뉴스


소외되어 있는 개인은 자신의 경험에 포착되는 대상에게 사적인 불행의 원인을 쉽사리 돌린다. 앞서 지적한 사건을 일으킨 당사자들은 대체로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사적인 문제로 인식하는 공통점을 갖는다. 껍데기만 남은 공허한 이념이 이런 논리적 비약을 돕는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는 까닭은 무엇일까.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할 정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가난한 자의 세계와 부유한 자의 세계로 나눠진 세상에서 정치는 둘을 통합하는 역할을 해야 할 것인데, 지금 한국에서 정치는 말 그대로 실종되어 있다. 문제는 이 위기를 인지하고 적절한 대책을 수립해야 할 정부조차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일 테다. 우발적 범행을 통해 갑자기 나타난 저들은 단순히 ‘괴물’이나 ‘광인’이 아니라, 해체된 우리 사회에 던져진 스핑크스의 질문들이다.


이택광 | 경희대 교수·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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