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아이를 처음 어린이집에 보냈을 때에는 집 근처의 사설 기관을 이용했다. 아이가 첫 등원하던 날을 잊을 수가 없다. 그날 아침 하늘이 어떠했는지 엄마 손을 잡고 미지의 세계로 처음 들어서던 아이의 뒷모습이 어떠했는지 눈에 선하다. 물론 그날을 나보다 더 선명하게 기억하는 건 아이를 등원시키고 안절부절못하던 아내일 테고 아내의 시름도 그때부터 깊어졌던 듯하다. 아마도 아내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아이를 맡긴 부모라면 누구나 내 아이가 홀대를 받는 건 아닌지 혹은 학대를 당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 앞서고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이 두려움이 우리 사이 불화의 이유이기도 했다. 나는 일단 맡겼으면 믿고 보자는 식이었지만 아내는 알림장을 꼼꼼하게 살펴 이상 징후가 없음을 확인하고 어린이집 선생에게 커피 한잔이라도 건네야만 안심을 했다. 늘 사소한 일들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아이가 말 못할 일이 생겨 고통받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했다. 그러면서 눈물바람이 되면 나는 그깟 일에 아파하지 말라는 식으로 힐난하고 끝내 말다툼을 하게 되는 거였다.

그러다 어린이집에서 사고가 났다. 야외활동을 하고 나서, 한 아이를 두고 온 거였다. 하원 시간에 맞춰 아이 엄마가 왔을 때에야 어린이집 선생들도 아이가 없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다행히 동네 아주머니 한 분이 혼자 헤매던 아이의 손을 잡고 어린이집까지 데려다주어 큰일은 벌어지지 않았지만 이 일이 계기가 되어 아내는 사설 기관을 그만두고 공동육아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공동육아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적어도 아이가 학대당할 염려는 없었다. 그러다 내 벌이로는 생활비를 충당할 수 없게 되자 아내는 겨울 방학 동안 돌봄교실 교사로 일하게 되었고 아침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등원시키는 건 내 일이 되었다.

이전에도 두어 달 아이를 돌본 적은 있지만 두어 살 무렵이라 그리 힘든 줄 몰랐던 모양이다. 아이를 먹이고 입힌 뒤 차에 태워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기만 하면 되는데도 고되기가 이를 데 없었다. 그러면서 아주 사소하고 평범한 일들에 예민해져갔고 공동생활에 어쩔 수 없이 익숙해져야 하는 아이를 가까이 지켜보면서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그제야 그깟 일에 아파하지 말라 힐난했던 내가 얼마나 철없고 어리석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더불어 부모의 마음속에 생겨나는 자연스러운 두려움을 이용하는 자들이 얼마나 비열한지도 새삼 알게 되었다. 나도 살면서 많은 이들에게 상처를 줬고 앞으로도 노력은 하겠지만 그런 일들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8년 12월 13일 (출처:경향신문DB)

언젠가 나는 이 글에서 우리가 누군가와 불화하게 되는 것은 이미 해버린 일들, 이미 저지른 실수들 탓이 아니라 하지 않은 일들, 미안하다 말하지 않고 용서를 구하지 않은 탓일 수 있다고 쓴 적이 있다. 그리고 아마 보통의 경우 미안하다 말하지 않거나 용서를 구하지 않는 이유는 상대방이 마음을 다친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마음을 다친 사람에게는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 해도 결코 그깟 일이 될 수 없고 그토록 사소해 보이는 일에 마음을 다치는 이유는 그이가 그 일에 마음을 기울였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가까운 사람이 그 사실을 잊고 위로는커녕 소심하다고 타박한다면 궁지에 몰린 듯 쓸쓸하고 적막할 것이다.

어쩌면 지구에 사는 우리는 모두 궁지에 몰린 사람일지도 모른다. 이 세계는 어디나 궁지일지도 모른다. 한 철거민이 한강에 뛰어들어 주검으로 떠오르고 이제 스물네살밖에 안된 한 젊은 노동자가 기계에 끼여 무참히 죽어가는 시절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그깟 일이란 있을 수 없다. 삶에 대한 그치지 않는 불안과 두려움. 태어날 때부터 지녔던 것만 같은 불안과 두려움을 품고 궁지에 몰려 살아가는 우리에게 아무리 사소한 일도 그깟 일일 수는 없을 테니 가까운 누군가가 사소한 일에 상심한 듯 보이면 그렇게 보이도록 애써 참고 견디는 중일 수도 있음을 헤아려보자.

<손홍규 소설가>

'일반 칼럼 > 문화와 삶' 카테고리의 다른 글

관용어  (0) 2019.02.14
양심  (0) 2019.01.17
슬픔을 아는 사람  (0) 2018.11.22
사람과 사연  (0) 2018.10.25
이야기꽃  (0) 2018.09.27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