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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책 이야기를 좀 더 해보자. 일본에는 엄청난 분량의 한국 책이 있다. 천리대학의 책이 좋은 예다. 2006년 천리대학을 방문해 도서관 서고에 들어가 본 적이 있다. 방대한 분량의 한국 책이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경성제국대학 교수로 있으면서 ‘조선학’을 연구했던 이마니시 류(今西龍)의 수집본을 중심으로 한 것이다.

도서관 측에서는 우리 방문객들에게 미리 보고 싶은 책이 있으면 말해 보라고 했지만, 정작 우리 측에서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책을 신청하는 바람에 귀중본은 보지 못했다. 이 도서관에는 안견의 ‘몽유도원도’도 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보여 달랬더니, 보여준단다. 유리장 안에 얌전히 놓여 있는 ‘몽유도원도’를 보고 있자니, 옆에서 설명이 따른다. 원본은 아니고 복제본이란다. 다만 이 복제본도 워낙 정교해 원본과 다름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믿을 수밖에.

천리대학 도서관을 보고 도대체 얼마나 많은 한국 고서가 일본으로 건너갔을까 하고 재삼 생각하게 되었다. 국회도서관에서 1968년에 낸 <한국고서종합목록>이 있는데, 한국과 일본, 미국 등에 있는 고서를 조사해 모은 책이다. 물론 실사를 한 것은 아니고, 기존의 도서목록을 종합한 것이다. 목록을 보면 일본에 건너간 책이 어마어마하게 많다는 데 놀라게 된다.

일본에 건너간 책에는 첫째 정상적 루트를 통한 것이 있다. 예컨대 일본의 요청에 의해 조선 정부에서 하사한 것이 그것이다. 현재 일본 각지에 소장되어 있는 ‘대장경’을 위시한 불경은 그런 식으로 건너간 것이 대부분이다.

둘째, 임진왜란 때 약탈한 것이다. 전쟁 중에 허다한 책을 약탈해 가져갔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일본 궁내성 도서료(圖書寮)에 보관되어 있는 국보급의 조선 책들은 왜장 부전수가(浮田秀家)가 약탈해간 것이라고 한다.

셋째, 일제강점기에 반출한 책이 있다. 먼저 국가 권력을 동원해 반출한 것이다. 예컨대 <조선왕조실록> 태백산본의 경우는 그냥 동경제국대학으로 반출했다. 확실한 약탈이다. 또 대금을 치르고 구입한 경우다. 일정한 금액을 지불했다고 하지만, 물정 어두운 조선 사람의 눈을 속여 책을 쓸어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이 어떻게 조선의 책들을 헐값에 쓸어 담았는지 다음 자료를 보자. 일본인이 직접 내뱉은 말이다.



“나는 고본(古本) 매입의 목적으로 조선에 건너오기를 전후 두 차례 하였다. 첫 번째는 1912년 3월15일부터 27일간, 두 번째는 1923년 4월부터 90일간이다. 고본옥(古本屋)은 조선에 고본 매입을 위해 두 차례 다녀간 것. 1903년이 명고옥(名古屋)의 기중당(其中堂) 주인 삼포겸조(三浦兼助)가 선봉이고, 동경의 촌구(村口) 선친이 2진, 동경의 기부귀길(磯部龜吉)이 3진이고 그리고 고본옥이 넷째로 조선옥을 다녀간 것이다.

기중당의 <고려사(高麗史)> 매입 과정은 이렇다. 경성에 도착한 지 4일째 되는 날 중개인 고씨(高氏)가 와서 <고려사> 외 수점을 살 것을 권한다. 이 <고려사>는 대형의 호장본(豪裝本). 전 73책으로 500년이나 이전의 고려시대의 출판이다. 지금은 내각(內閣)에도, 타 대신가(大臣家)에도 없는 한국 무이(無二)의 진본(珍本)인 때문이라고 중개인은 바람을 넣는다.

그러나 방매인(放賣人)의 공능(功能)을 신용하기도 어렵거니와 동국의 학자 2, 3인에게 들어도 누구나 <고려사>는 희유(稀有)함을 보증하는 바로 입수하기 어려운 물품이라고 한결같은 회답에는 의의가 없다. 책 그 자체는 이미 보아 만족한 것, <고려사>를 다루기는 이번이 처음이라 시가를 모르고, 73책의 고본이 250원(당시 쌀 20석 정도)이란 의외의 대금. (중략) 장사를 떠나 무조건 <고려사>를 사자. 대금에 불구하고 <고려사> 외 40, 50점 구입.

한남서림(翰南書林) 주인 백두용(白斗鏞)은 학식 있고 풍채 있는 학자 같은 느낌을 주는 사람이었다. <포은집(圃隱集)> 2책 1원50전, <이퇴계전집(李退溪全集)> 30책 18원 외 41책. 교동의 일호서림(一乎書林)에서 <역대사론(歷代史論)> 10책 3원50전, <두율비해(杜律批解)> 14책 5원60전 외 15책. 그리고 파고다공원 앞 광학서포(廣學書鋪)에서 <호씨춘추(胡氏春秋)> 10책 3원10전, <청음집(淸陰集)> 10책 4원50전 외 32책을 매입.

한성서화관에서 <구봉집(龜峯集)> 5책 1원75전. 한일서림(翰一書林), 모 고물점(古物店), 모 서림 등에서 각각 <공자통기(孔子通紀)>(70전) 샀다. 이밖에 <염락풍아(濂洛風雅)>(70전), <초사(楚辭)>(4책, 1원), <송재시집(松齋詩集)>(35전), <성령집(性靈集)>, <사명집(四溟集)>, <이태백집>, <정재집(定齋集)>, <풍고집(楓皐集)>, <백사집(白沙集)>, <두율방운(杜律方韻)>, <후산집(後山集)>’ 등을 사 가지고 귀향하였다.”

개인이 아니라 일본의 고서상들이 1903년부터 조선으로 건너와서 책을 구매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책을 수호하던 조선의 사족 체제는 끝장이 났고 사족 체제하에서 유의미한 책은 청산해야 할 유산이 되어 있었다. 과거의 체제, 문화를 지키다가 나라가 망했다는, 혹은 식민지가 되었다는 생각이 팽배해 있었고, 이것은 과거의 것을 몰아서 폐기 처분하는 행동으로 이어졌다. 수많은 책과 문서는 이렇게 해서 헐값에 일본으로 건너가고 있었던 것이다.


강명관 |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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