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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이 지면에서 일제의 조선 책 모으기에 대해 간단히 썼는데, 검토해야 할 자료가 더 있다. 일단 다음 자료를 읽어보자. ‘촌구(村句)씨의 선친 경성(京城) 수서(蒐書)항’에는 다음과 같이 기술되어 있다.

“급히 귀가하여 여장을 차리고, 있는 돈을 모두 가지고 한걸음에 경성에 왔다. 경성에 도착하자마자 조선인이 경영하는 ‘고본옥(古本屋)’을 내리 훑었다. 촌구씨가 착목(着目)한 것은 주로 고간(古刊) 당본(唐本)이었다. 그 가운데는 송판(宋版)의 <육신주문선(六臣註文選)>이 있었다. 이러한 것에는 조선의 ‘고본옥’은 전연 눈을 뜨지 못하였는지 61책 송판이 겨우 3원 남짓. 이 금액으로 입수했으니 꿈같은 이야기이다. 당본의 옛것은 거의 1책 6전 정도로 살 수 있었고, 조선본보다 비교적 비쌌다.”

촌구씨는 이들 송판이나 원판(元版)의 귀중본을 가지고 경성을 떠나 동경으로 돌아왔다. 동경에서는 <육신주문선>이 천 몇 백 원에 팔렸고, 세상에 볼 수 없었던 고판의 희귀서도 곧장 팔렸다. 이전보다 더 풍부한 자금을 준비해 가지고 재차 도선(渡鮮)하여 경성의 어느 한 서적상 재고품을 전부 사자고 할 정도의 배포있는 흥정을 했다. 그런데 만철(滿鐵)이 그 일을 듣고 “조선본은 만철에서 수집하고 싶으니 일절 손을 대지 말아 주었으면 좋겠다. 그 대신 당본은 그대에게 일임하고 만철에서 일절 손을 대지 않겠다”고 타협을 해왔기에 응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 촌구의 부친은 조선에 2진으로 진출한 고서상이었다. 이 사람은 고서를 팔기 위해 조선으로 건너온 것이 아니라, 조선의 고서를 사기 위해 건너왔다. 이 자가 노린 것은 ‘고간 당본’, 곧 조선에 있는 중국본 서적이었다. 곧 그것은 당나라 때 판본이 아니라, 조선이 중국에서 수입한 중국 간행 서적을 말한다.

촌구의 아버지가 송판 <육신주문선>을 구입한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송대의 서적, 곧 송판본은 장서가들이 최고의 것으로 꼽는다. 교정과 글씨, 종이 모두 최고로 꼽는 것이다. 오죽 했으면 송판본 책을 손에 넣기 위해 애첩을 넘겨준 사람까지 있을까? 고려는 송과의 무역이 활발했으니 적지 않은 송판본이 수입되었을 것이고, 그것은 조선조까지 남아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조선 사람들은 송판 자체에 대해 별반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있었다. 촌구의 아버지가 조선의 고서점이 전혀 그런 사실에 눈을 뜨지 못했다고 하면서 <육신주문선>을 3원에 사서 동경에서 천 몇 백 원에 팔았다고 하니, 그 당시 일본 고서상들에게 조선은 그야말로 ‘엘도라도’였고, 노다지를 발견한 기분이었을 것이다.



<육신주문선> 등으로 500~600배나 되는 이문을 남긴 촌구의 아버지는 또 풍부한 자금을 가지고 와서 한 서점의 재고 전체를 사려고 흥정을 했는데, 그때 만철의 만류로 그만두었다는 것이다. 만철은 남만주철도주식회사(南滿洲鐵道株式會社)다. 러일전쟁이 끝나고 일본은 ‘포츠머스 조약’ ‘만주선후협약(滿洲善后協約)’에 근거해서 러시아가 남만주에서 가진 일체의 권리를 계승하고, 1907년 남만주철도주식회사를 설립해 러시아가 경영하던 철도의 일부, 곧 장춘(長春)에서 대련(大連)에 이르는 철도를 경영했다. 만철은 워낙 규모가 크고 방대한 사업을 벌여 중국의 동북 지역에 군림한 사실상의 식민지 국가였다.

1907년 만철 설립 당시 이사였던 동국제국대학교 교수 강송삼태랑(岡松參太郞)이 만철도조사부 도서실을 설립했는데, 여기서 중국의 고전, 일본어 도서, 서양서, 러시아어 자료를 정상적 구입(값을 치르고 구입하는 것), 특별 구입(계획적인 프로그램에 의한 구입), 기증, 권력을 이용한 강제적 ‘접수’ 등으로 광범위하게 축적하기 시작했다. 만철의 도서실은 1922년 ‘남만주철도주식회사대련도서관(南滿洲鐵道株式會社大連圖書館)’이란 명칭을 얻었다. 만철도서관의 방대한 자료는 지금도 남아 있으며 거기에는 방대한 규모의 한국 관계 자료도 남아 있다(이상은,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편, 한국 관련 ‘만철(滿鐵)’ 자료목록집). 만철이 조선본을 수집하려 한다는 것은 이런 맥락을 갖고 있는 것이다.

만철 같은 거대한 기관뿐만 아니라 총독 사내정의(寺內正毅) 같은 자는 권력을 이용해 책과 서화를 긁어모아 일본으로 반출했고, 마에마 교사쿠(前間恭作), 시라토리 구라키치(白鳥庫吉) 같은 학자, 아사미 린따로(淺見倫太郞) 같은 변호사도 조선에서 책을 긁어모았다. 이들의 책은 모두 일본으로 반출되었다. 마에마 교사쿠의 책은 일본 동양문고(東洋文庫)의 서고에 들어가 있고, 시라토리 구라키치의 책은 관동대지진 때 소실되었다. 아사미 린따로의 책은 뒷날 미쓰이(三井)물산에 넘겨졌고, 미쓰이 쪽은 다시 미국 버클리대학에 팔았다. 한국 학자들이 요즘도 가끔 방문하는 곳이다.

2006년 후지모토 유키오(藤本幸夫) 도야마(富山)대학 교수가 <일본 현존 조선본 연구>란 책을 냈다. 일본에 있는 한국본 서적을 모두 모아서 목록을 만든 것이다. 물론 작업의 결과가 모두 출판된 것은 아니다. 경(經)·사(史)·자(子)·집(集) 중 일본에 있는 모든 조선 문집의 목차를 정리한 것이다. 이것만 해도 어마어마한 페이지의 거창한 책이다. 전체가 간행된다면 일본에 있는 한국 책의 규모를 대충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이 목록을 만드는 데 평생을 바친 학자의 집념도 알 만하다. 대한민국 학자가 이런 ‘짓’을 하면 연구성과 0%에 해당한다. 아마도 무능한 교수로 낙인이 찍혀 쫓겨날 것이다. 끝으로 한마디 더하자면, 우리나라에 있는 고서의 전체 규모는 아직도 분명하지 않다는 것이다.


강명관 |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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