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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6년 개항 이후 근대가 시작되면서 조선의 낙후한 현실을 전근대의 학문과 사상에서 찾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전근대의 학문과 사상을 당시에는 ‘구학(舊學)’이라고 불렀다. 구학을 버리고 근대적 지식과 사상을 배워야 하는 것이 시대의 책무가 되었다.

신학이 필연이라면 구학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이 문제를 둘러싸고 논쟁이 벌이지기도 하였다. 차분히 정리할 여유가 없었다. 대세는 신학이었고 구학은 조선을 정체시킨 주범으로 매도되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구학을 담은 서적들은 관심의 대상이 되지 않았고, 또 한편 일본 등 외국으로 반출되었던 것이다.

구한말의 우국적 계몽신문 ‘대한매일신보’는 1908년 12월18일·19일·20일 3일에 걸쳐 ‘구서간행론(舊書刊行論)’이란 사설을 실어 고서를 수습, 보존하는 한편, 가치 있는 구서적을 간행할 것을 제안하였다. 이 글은 신채호가 쓴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이 글의 서두에서 서적이란 한 나라의 인심, 풍속, 정치, 실업, 문화, 무력을 산출하는 ‘생식기’이며 역대 성현, 영웅, 고인(高人), 지사, 충신, 의협을 본떠서 모사한 ‘사진첩’으로 정의하고, 영국의 부와 독일의 강함을 만든 것은 금전과 광산, 창과 대포가 아닌 서적이라고 단언한다. 그러므로 서적을 간행, 광포(廣布)하는 사람은 ‘일대 공신’이다. 따라서 신서적을 광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구서적을 광포할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신서적이 출현하려면 구서적을 수습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한국에 필요한 신서적이란 무엇인가. “반드시 한국의 풍속과 학술에 있어서 고유한 특질을 발휘하며, 서구에서 전래된 새 이상, 새 학설을 조입(調入)하여 국민의 심리를 활현(活現)하는 것”이 그것이다. 외국의 신서적을 수입하기도 바쁜데 왜 구서를 수습해야 하는 것인가? 이런 신서적을 만들기 위한 토대를 이루는 것이 바로 구서적이기 때문이다. 또 외국의 신서적은 오늘이 아니라도 수입할 수 있지만, 구서는 오늘 수습하지 않으면 뒷날 다시 수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신채호는 자신의 판단으로는 한국은 출판의 주체가 전할 만한 서적은 출판해서 전하지 않고, 전할 필요가 없는 책만 출판해 전했기 때문에 한국의 서적계가 빈약하다고 지적한다.

그는 그 이유 다섯 가지를 든다. 첫째, 학계의 독재. 주자학에 어긋나는 사상을 이단사설(異端邪說),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몰고, 저자를 죽이고 자손을 금고(禁錮)했기에 새 진리가 있어도 외부로 공간하지 못했다. 둘째, 가족주의. 자신의 직계 선조가 아닐 경우 아무리 훌륭한 저작이 있어도 간행하지 않는다. 셋째, 중국 숭배주의. 본국의 좋은 서적이 있어도 간행하지 않는다. 넷째, 맹목적 고인 추수주의. 고인을 따르기만 하므로 새로운 학설이 나온들 책으로 간행하지 않는다. 다섯째, 금속활자 인쇄술은 세계에서 가장 일찍 발명한 것이지만, 저작권의 개념이 없어 출판의 상업화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따라서 저작은 초고로만 남고 간행되지 않았다. 이상의 다섯 가지 이유로 전할 만한 한국의 저작이 거의 멸종 지경에 이르렀다.

신채호는 박지원의 <연암집>, 정약용의 <여유당전집>, 안정복의 <동사강목>, 이긍익의 <연려실기술>, <조야집요(朝野輯要)> 등이 여전히 초본의 상태에 있음을 지적한다. 그리고 자신이 우연히 본 책으로 이중환의 <택리지>, 최강(崔岡)이란 사람이 소개한 ‘삼국 이래 외국을 물리친 명장의 사적을 상세히 기록한’ <이십사걸전(二十四傑傳)>, 남장희(南章熙)란 사람이 소장한 한국의 고대, 삼국시대, 고려시대 등의 지도를 그린 산수명화 2권 등을 소개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간행된 서적도 너무나 희소하다는 것이다. 예컨대 <징비록>, <동국이상국집>은 도쿄의 서사(書肆)에서는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지만 서울에서는 1, 2종도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또 구서적의 수집가 역시 일본인이다. 경화세족(京華世族) 가문에서는 신서적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구서적을 경시, 천시하여 ‘구름’처럼 팔아먹고 있고, 그 책이 서점에 나오면 즉시 구입하는 자는 일본인이라는 것이다.

놀랍고 애석한 바는 이런 책이 서포에 나온 뒤에 한국이 사서 보는 경우는 절대로 없고, 저 시끌벅적 팔아치우는 사람은 대판아(大阪兒)가 아니면 살마객(薩摩客)이며, 견양씨(犬養氏)가 아니면 반총랑(飯塚郞)이라, 무릇 한국 역사 및 선철(先哲)의 유집(遺集)이라 하면, 한 권 좀 먹은 책에 황금을 어지러이 던지니, 그런즉 몇 년을 지나면 한국의 문헌은 모두 일본인의 손바닥으로 들어갈 것이니, 오호라! 오사카(大阪)와 사쓰마(薩摩)의 일본인 수중으로 한국의 구서적이 넘어간다. 한국의 서적이 외국으로 모두 건너가면, 어떻게 될 것인가? 신채호는 그 결과 후세의 한국인은 선민(先民)을 우러러 존경할 수도, 조국을 존중할 수도, ‘독립의 자존심’을 만들 수 없으리라 말한다. 그리하여 그는 “오늘 구서를 보전하여 후인에게 물려주는 사람은 곧 일대의 명성(明星)이며 만세의 목탁”이라고 말한다.

또한 그 일을 할 사람은 학부(學部)의 술에 취해 꿈꾸는 듯한 관리도 아니고, 귀족 가문의 비루한 사내도 아닌 각처의 서점 주인이고, 그들이 구서를 수습하여 유용한 신서를 간행하는 것이야말로 ‘국민의 앞날에 큰 행복’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마지막 말이다. “금일에 구서가 죄다 없어지면 4000년 문명의 땅을 쓴 듯 없어지리니, 급급하다, 구서의 보존의 도(道)여!” 하지만 신채호의 열변에도 수많은 책이 일본으로 흘러나갔던 사정은 이미 앞서 말한 바 있다. 가슴이 쓰리구나!


강명관 |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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