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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나는 구두 한 짝을 손에 들고 맨발로 미친 듯이 뛰었다. 다른 한 짝은 광장 어딘가에 뒹굴고 있을 것이었다. 정문 쪽에서 학생들이 밀집한 광장으로 최루탄이 날아오기 시작했고, 그와 동시에 학생들은 사방으로 몸을 날려 뛰었다. 허공을 가르며 날아오는 최루탄은 태양빛을 받아 까맣게 보였다. 내 눈에 그것은 새처럼 보였다. 까만 새들은 수십마리씩 떼로 날아와 광장에 떨어졌다. 이웃 학교에서는 한 청년이 그 새에 맞아 쓰러져 목숨을 잃었다. 그를 애도하는 물결이 학교 안팎, 광장으로 모여들었다. 선뜻 광장으로 나서지 못하고 도서관 창가를 서성이던 나 같은 겁쟁이도 예외는 아니었다.

광장은 사방으로 길이 통하는, 자유로운 곳이다. 그러나 그날 나는 광장 한가운데에서 두려움이 목까지 차올라 죽을 것 같았다. 한 치도 물러설 수 없는 대치 상황에서 까만 새떼들이 광장을 향해 날아오는 것이 또렷하게 보였다.       

그 순간 공포로 내 머릿속은 하얘졌다. 어디로든 뛰어야 했다. 멈추어 보니 후문 밖이었고, 구두 한 짝이 손에 들려 있었다. 왼쪽으로 가면 신촌, 또 다른 광장이 나왔고, 오른쪽으로 가면 광화문, 세상으로 이어지는 터널이 있었다. 나는 어설픈 패잔병처럼 구두 한 짝을 손에 들고 맨발로 터널 속으로 들어갔다. 터널은 길고, 어두웠다.

그날 이후, 나는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새들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다. 무엇인가, 새들처럼, 하늘에서 움직이는 작고 까만 것들을 보면 맥박이 빨라졌고, 어디로 뛸까, 머리를 감싸고 두리번거렸다. 그 증세는 이듬해 대학을 졸업하고 광화문에 있는 문예지 기자로 입사한 뒤에도 계속되었다. 세상에 그럭저럭 적응해갔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골목길을 느릿느릿 걸어 광화문 네거리로 빠져나오곤 했다. 골목 주점들의 불이 하나둘씩 켜지는 저물녘이면, 퇴근자들 발길만큼이나 가볍게 새들이 가로수 사이로 날아올랐다. 그러다가 그만 나뭇가지를 잘못 짚어 바닥으로 떨어지는 새들도 있었다. 어느 날 내 앞에 그런 새가 한 마리 떨어져 죽었다. 그것은 나와는 무관한 듯했지만, 돌이켜보면 내 삶의 전환점이 된 사건이었다.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가는 새를 온전히 바라볼 수 없었던 사람이 비단 나만이었을까. 그날 밤 집으로 돌아와 나는 한 마리 새의 죽음을 생각하는 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새의 출발점은 광장이었고, 개인의 훼손된 마음으로 가는 길이었다. 그것이 내 생애 첫 소설이자 등단작 <광장으로 가는 길>이었다. 제목의 광장은 우리가 그때 불렀던 ‘민주광장’을 뜻했다. 매년 한두 번 모교의 그 광장을 찾아가곤 했다. 그러다 몇 년 동안 하얗게 잊었다. 까마득한 후배들이 그 광장을 되찾아 주었다. 부끄럽고, 고맙다.

함정임 | 소설가·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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