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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전 대표와 호남의 불화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마지막 쟁점으로 이번 선거운동은 막을 내리는 모양이다. 새누리당의 친박 공천 소동으로 요란하게 시작하여,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사이의 야권연대 얘기로 실속 없이 시끄럽다가, ‘호남의 향방’에 대한 관심을 끝으로 선거운동은 종을 치고 있다. 이런 재미없고 의미 없는 선거가 어디 있나 싶다.

문 전 대표는 호남이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모든 정치적 기회를 포기하겠다고 배수진을 치며 호남을 두 차례나 방문하였다. 방문의 효과는 있었던 것 같다. 그것이 선거의 흐름을 바꾸어놓을 만한 것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반발을 불러일으켜 부작용을 낳을 거라는 걱정은 일단 덜었다.

문제는, 이렇게 해서 문 전 대표와 호남의 불화가 해결될 수 있는가라는 것이다. 이들 사이의 불화의 원인을 어떤 사람은 ‘감정’의 문제로 설명을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정체성’의 문제로 해석을 한다. ‘이익’의 문제로 그것의 본질을 분석하는 사람도 있다. 문 전 대표의 처방에는 이런 것들이 섞여 있다. 이를테면, 참여정부가 호남을 홀대하지 않았다는 증거로 이 시기에 임용된 호남 출신 고위직 인사들의 명단을 돌린 것은 ‘이익’의 관점에서 이 문제를 보는 것이고, 5·18묘역에 무릎을 꿇는 의례는 ‘정체성’의 질문에 부응하려는 것이다. 호남이 인정하지 않으면 정치를 떠나겠다고 한 것은 ‘감정’에 호소하는 것인 듯하다.

이들 사이의 불화를 헤게모니 투쟁의 일환으로 보는 사람들은 1987년 이후 민주화를 함께 이끌어왔던 ‘호남과 리버럴 연합’의 해체로 해석한다. 야권의 지배를 둘러싼 두 헤게모니 분파의 연합에 균열이 생기고 이것을 통합하는 리더십이 없어서 정치적 파탄을 맞게 되었다는 것이 현재의 상황이라는 말이다. 문제가 ‘호남과 리버럴 연합’이 주도권을 다투느라 엎치락뒤치락하는 것이라면 이들을 포용하면서 공정하게 다루어갈 수 있는 리더십과 경쟁의 제도가 중요할 것이다. 그런데 고민은 이런 것들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호남과 리버럴’이 가지고 있는 ‘지역주의’ 독해(讀解)의 아쉬움이다.

첫째, 리버럴 측의 아쉬움이다. 리버럴은 호남을 여타의 지역주의와 같은 차원에서, 여러 지역주의 가운데 하나로 인식을 한다는 것이다. 호남의 지역주의가 어떻게 생겼으며 어떤 역사, 구조적 성격을 가지고 있는지를 생각하지 않은 채, 호남의 지역주의를 그저 ‘낡은 것’이며, 일거에 ‘타파해야 할 그 무엇’으로만 여긴다는 것이다.

문재인 전 대표가 5·18민중항쟁 추모탑에 분향한 뒤 참배하고 있다_연합뉴스

그런데 알다시피, 호남지역주의는 영남지역주의의 선행적이고 공격적인 자극에 대응하느라 생겼다. 호남지역주의는 방어적이며 수세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영남지역주의는 정치적 권위주의와 결합한 것에 비해, 호남지역주의는 정치적 민주주의와 결합하였다. 리버럴은 호남지역주의의 이런 역사, 구조적 성격을 충분히 이해하지 않은 것 같았다. 열린우리당 시절 리버럴이 호남지역주의를 ‘난닝구’라고 호명하였던 것이 대표적 사례다. ‘난닝구’란 구태정치의 상징이라는 뜻으로 쓰였다.

둘째, 호남 측의 아쉬움이다. 우리나라의 지역주의는 영남의 선행 원인에 의해 생성되었다. 그런데 그것이 만들어진 후에 영남지역주의와 호남지역주의는 ‘거울효과’를 통해 서로를 강화해 간다. 마주 세워놓은 두 개의 거울은 서로의 모습을 되받아 끝없이 이어지는 영상을 만들어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영남·호남지역주의는 서로를 보면서 끝없이 강화된다.

따라서 지역주의의 해결은, 그것의 발생사적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 원인을 제공한 순서에 따라 결자해지를 요구하기 어려운 것이다. 동시에 거울을 깨야만 한다. 거울효과와 동시해결의 원칙이 지역주의의 해결을 어렵게 한다. 영남지역주의에 대해 발생사적 책임을 규탄하거나 결자해지를 요구하는 것은 영토적 보수주의처럼 지역주의를 오히려 강화하는 경향이 있다.

호남과 리버럴의 불화는 오랫동안 쌓여온 문제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호남과 리버럴이 각자 가지고 있는 지역주의 인식의 아쉬움을 인정하고 그것을 넘어서는 지혜를 찾아야 한다. 리버럴은 우리나라 지역주의 문제가 영남과 호남의 대결이라는 평면적 인식을 넘어서야 한다. 우리나라 지역주의 문제는 호남 배제, 호남 고립화이며 호남지역주의는 그것에 대응하는 방어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호남은 우리나라 지역주의 문제의 해결은 그것의 발생사적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 결자해지를 요구하기 어려운 것이라는 현실을 이해해야 한다. 문재인 전 대표와 호남의 불화는 한 정파와 한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 전체의 문제이기 때문에 함께 고민해야 한다. 이번 선거에서도 해결하지 못한 과제다.


김태일 |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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