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얼마 전 옛날 회사 동료의 아들 결혼식장에 다녀왔다. 1990년 초반에 버스 운전을 할 때 같이 일했던 동료였다. 그런데 문○○이 와 있었다. 잊을 수 없는 놈. 어떻게 여기를 왔을까. 동료들이 그동안 이 사람하고 친하게 지내고 있었다는 말인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문○○은 버스회사 노동조합 조합장이었다. 문은 회사 관리자 행세를 하면서 동료 기사들을 자기 부하처럼 취급했다. 회사는 도로가 막히는 사정은 생각하지 않고 운행 ‘탕수’만 채우려고 난폭운전을 조장했는데 문○○은 회사에 아부만 했다. 게다가 회사는 기본급이 곧 통상임금이라고 주장하면서 야간, 연장근로 수당을 일부 떼먹었다. 나는 기사들의 임금을 제대로 받게 하기 위해 노조를 찾아갔지만 문은 나를 무시하면서 단체협약도 보여 주지 않았다. 내가 혼자 회사를 상대로 임금 소송을 걸었더니 문은 나를 조합원 자격에서 제명했다.

이런 일도 있었다. 회사 차고지에 있던 구멍가게에서 문○○과 말다툼을 하다가 돌아섰는데 문○○이 “까불지 마”하면서 내 뒤통수를 쳤다. 폭력을 유도하려고 일부러 그런 짓을 한 건데, 한창 혈기 왕성했던 나는 구멍가게 앞에 있던 플라스틱 빈 막걸리통을 집어서 그자를 때리려고 폼을 잡았다. 동료 기사들이 말려 싸움은 그냥 끝났다. 아니나 다를까 문○○은 나를 검찰에 폭행으로 고소했다. 결국 기소되지는 않았다.


문○○은 기사들한테 사기도 쳤다. 강남이 한창 개발될 때 조합원들한테 개포동 땅을 사주겠다고 속여 200만~500만원씩을 받았다. 나중에 개포동 땅을 살 수 없다는 걸 알게 된 조합원들은 돈을 받으려고 애썼지만 문○○은 주지 않았다. 어떤 기사들은 문에게 밉보일까 봐 달라는 소리도 못했다.1993년에 사업주는 회사를 팔아 버렸다. 그 과정에서 문은 고용승계를 주장하기는커녕 관리자보다 더 앞장서서 기사들한테 사표를 받았다. 버스 기사들은 퇴직금을 받고 그만두거나, 다른 회사로 재입사했다.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이 '성년후견 개시 심판 청구' 첫 심리에 참석하기 위해 3일 오후 서초구 서울가정법원으로 들어서고 있다._연합뉴스

결혼식장 식당에서 옛 동료가 문한테 나를 상기시켰다. “안건모야.” 문이 나를 보더니 얼굴이 굳어졌다. 곧바로 가증스러운 웃음을 지으면서 “그래, 기억나.” 하고 반가운 척 내게 손을 내밀었다. 어이가 없었다. ‘기억나?’ 나는 문○○을 빤히 쳐다보면서 맞은편에 앉았다.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졌다. 어떻게 사람이 저럴 수 있을까. 자기 잘못을 모르나? ‘안건모씨, 그땐 미안했어. 먹고살려니 어쩔 수 없었어.’ 뭐 이런 말이라도 하면서 악수를 청해야 하는 거 아냐? 맞은편에 앉아서 자세히 보니 참 많이 늙었다. 몇 살이나 됐을까? 그렇게 먹고살아서 마음이 편했을까? 연민도 느껴졌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이런 건가, 하는 회의도 들었다. 회사와 ‘사바사바’하면서 제 욕심만 채웠던 문○○도 꼴 보기 싫었지만 그자와 시시덕거리고 있는 옛 동료들도 실망스러워 나와 버렸다.

한국 사회는 이런 자들이 잘살고 있는 이상한 나라다. 밑으로는 문○○ 같은 소시민이 먹이 부스러기 받아먹는 재미로 같은 계급의 소시민을 괴롭히고도 버젓이 잘살고 있고, 위로는 탐욕스러운 관피아가 세월호 참사나 가습기 참사가 나든 말든 욕심만 채우면서 잘살고 있다. 한국 사회를 좀먹고 있는 재무부 출신의 모피아를 비롯해 법조마피아, 원전마피아, 군납마피아 들도 떵떵거리며 살고 있다.

우리 사회는 이렇게 ‘사바사바’해 제 뱃속만 불리는 관리나 기업, 정치가들을 제대로 단죄하지 못하고 있다. 해방이 되고 난 뒤 친일을 했던 자들을 처벌하지 못하고, 독재자들을 처벌하지 못했던 역사가 가장 중요한 원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수많은 광주시민을 학살한 전두환도 처벌받기는커녕 아직도 “29만원이 전 재산” “광주사태 나하고 아무 관계없다” “어느 누가 총을 국민에게 쏘라고 하겠어”라는 거짓말을 뻔뻔하게 내뱉으며 잘살고 있다. 이런 자들이 죄의 대가를 받는 모습을 살아생전에 볼 수 있을까? 감춰놓은 재산도 환수당하는 꼴도 말이다.


안건모 | ‘작은책’ 대표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