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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지금 당신이라고 했어? 너 몇 살이야?”

“당신이라고 하지 그럼 여보라고 해?”

며칠 전에 보게 된 말다툼 현장에서 오고 간 얘기다. 자동차 주차문제로 벌이는 말다툼에서 나이가 무슨 상관일까 마는 몇 살이냐고 되묻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우리는 나이로 줄을 세운다.

나이가 아니면 직위나 직업, 그도 아니면 전직이 뭐였는지에 따라 사람에 대한 호칭이 달라진다.

네댓살 차이가 나는 나이를 확인하고 나면 말 놓겠다든지 친구하자든지 하면서 갑자기 아랫사람 취급에 들어간다. 직책을 놔두고 ‘씨’라고 부르면 하대한다는 느낌을 갖는다.

얼마 전에 내가 일을하고 있는 단체에서는 서로를 ‘동지’라고 부르자고 했었다. 누구는 그 단체 소속의 위원회 위원장이고 누구는 다른 단체의 회장이고 누구는 나이도 많고 경륜도 있지만 그 위원회의 위원에 불과(?)해서 호칭이 중구난방이어서다.

나이가 아래인 사람도 선생님이라고 부르다가 친숙해지면 ‘샘’이라고 줄여 부른다. 호칭이 이러다 보니 격을 두지 않는 ‘동지’라는 말이 제안될 만도 했다.

그런데 동지라니. 그게 통할 세상인가. 당장 문제가 불거졌다. 동지라는 말이 대중들에게 이질감을 준다는 문제제기가 들어왔다. 인민을 일제의 잔재인 국민이라고 불러야 하고 노동자를 근로자, 동무를 친구로만 불러야 하는 현실이지 않은가. 분단이 뺏어 간 단어들이다. 너무도 복잡하다, 우리의 호칭 문제.

역시 몇 달 전이다. 나는 선생님이라고 무난한 호칭을 썼고 다른 사람들은 장관님이라고 불렀다. 장관을 했던 사람이지만 장관 그만둔 지가 십년도 더 됐는데 말이다. 그분이 총리를 하지 않는 이상 평생 장관님이라고 불릴 것이다.


하나금융그룹은 금융권 등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고객’이라는 호칭 대신 국립국어원이 권장하는 순 우리말인 ‘손님’으로 변경해 사용한다고 1일 밝혔다._AP연합뉴스



재미있는 일화가 하나 있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그분이 빈민선교를 하면서 함께 일하는 활동가들과 경찰서에 잡혀갔다가 ‘목사님’으로 불리면서 특별대우를 받게 되자 교단에 목사직을 반납해버렸다. 현장 활동을 하는 데에 그 호칭이 방해된다고 본 것이다. 허병섭님 얘기다.

우리의 호칭은 존칭이냐 낮춤말이냐가 확연히 구분되는 존비어들이다. 가까운 사이인지 잘 모르는 관계인지에 따라서 친소어가 있을 뿐인 외국과는 판이하다. 영어에서 상대방을 ‘유(you)’라고 하면 끝이라는 건 다 안다. 시아버지도, 하늘 같은 선배도 그냥 유(당신)다. 유교의 종주국인 중국도 마찬가지다. 처음에 잘 모를 때는 ‘닌()’이라 하다가 안면 트고 나면 ‘니()’라고 하면 누구에게나 통한다. 일본의 ‘아나타(あなた)’도 그렇다.

위계와 권위, 수직적 관계망을 만드는 우리의 복잡한 호칭은 아무래도 조선 신분사회와 일제의 잔재가 군사독재를 거치면서 강화된 듯하다.

이런 호칭문화의 완결판은 자기에게 존칭어를 쓰는 것이다. 목사님, 교수님, 변호사님 등이 대표적인 직책 위주의 존칭형 호칭인 현실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자신을 소개하면서 “아무개 목사입니다. 아무개 변호사입니다”하는 식 말이다. “무슨 일 하는 목사인 김 아무개입니다”라고 해야 할 것을 그런 식으로 자기에게 존칭어를 쓴다.

아무도 ‘이 아무개 농부입니다’라거나 ‘최 아무개 선생입니다’라고 하지 않는데도 말이다.

위계를 은연중에 조장하는 존비어가 과도한 우리의 호칭들은 알게 모르게 심각한 사회문제로 비화될 수 있다고 본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지 적은지, 끗발 있는 위치에 있는지 별 볼 일 없는지에 따라 호칭과 말투가 달라지는 현실은 쉽게 사회적 갑을관계로 변질될 수 있다. 을의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고객이나 손님이 되는 순간 고약한 갑질을 하는 우리의 현실에서 그것을 본다.

“여기서는 모두 ‘님’으로 부르겠습니다”라고 미리 알리고 ‘님’으로 부르면 어떨지 우리 단체에 제안하려 한다.


전희식 | 농부, ‘소농은 혁명이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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