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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된 토스트 가게가 있다. 가까이 초·중·고가 있어 주인 아주머니는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을 고스란히 보았다. 아이마다 꼭 앉는 자리와 먹는 곁두리가 있었다. 누가 여기 앉고 저기 앉았는지, 누가 슈감자와 와플, 소시지를 좋아했는지 속속들이 훤했다.

우르르 몰려온 아이들 가운데 주문할 수 없는 아이가 눈에 띄면 아주머니는 먹고 싶은 걸 물어 만들어준다.

“왜 나는 공짜로 안 주느냐”고 누가 불평하면 이렇게 말한다.

“이건 공짜가 아냐. 마음을 심는 거야.” 오늘 먹은 음식이 뒷날 다른 사람에게 아이가 전해줄 수 있는 따뜻한 마음으로 자라기를 바랐다.

“외로워 죽겠어요. 난 외로워 죽겠어요.” 하루는 철판에 토스트를 굽는데 고등학생 여자아이가 말했다. “왜?” 흘려듣지 않고 물었다. 들어보니 주중에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자 지내며 학교를 다녔다. 밤마다 무섭진 않았을까. 아주머니가 밑반찬 몇 가지를 만들어 건네고 문자를 보냈다. 말로든 문자로든 흔하디 흔하게 쓰는 “사랑해요”라는 말을 아이는 몰랐다. 통 듣지 못한 말이었다. 돌려받은 반찬통에 귤 몇 알이 들었다. 아주머니에게 주고 싶어 샀단다.

세상을 버리려던 10대, 20대들이 아주머니를 찾아오기도 한다. 학교 선생에게 “죽으려면 학교 말고 다른 데서 죽으라”는 소리를 들은 학생도 있다. 아주머니는 심장이 벌렁대는 이야기를 그저 듣는다. 귀 기울여주는 것만도 위로가 되었다. 정작 아이들이 배고팠던 건 사랑과 마음이었다. 아주머니의 어린 친구들은 가족에게 받은 학대와 폭력, 그 상처를 조금씩 내보였다. 세상이 미웠는데 토닥여주는 한 사람이 생긴 거다. 어떤 청년은 부끄러운 자기 행동과 반성을 털어놓고는, 웃었다. 작고 좁은 토스트 가게가 어디서도 찾지 못한 ‘고백’할 곳이 되었다. 딸, 아들이라 부르는 이들이 아무 때고 왔다 갈 때면 아주머니는 밥 먹으러 다시 오라는 말을 빠뜨리지 않는다.


서울 북서울 꿈의 숲으로 나들이 나온 아이들이 서로 포옹을 하고 있다 _연합뉴스


아주머니는 꽁꽁 언 어느 겨울밤을 잊지 못한다. 밤 10시 무렵 가게 문을 닫으려는데 아흔 살 가까워 보이는 노인이 종이상자를 쌓은 수레를 끌고 왔다. 중국말을 써서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배가 고프다는 걸 알았다. 문을 닫으려던 손을 멈춰 라면을 끓이고 밥을 챙겼다. 안 받는대도 노인이 굳이 돈 300원을 손에 쥐여줬다. 수레가 저 끝 길모퉁이를 돌아 어둠 속으로 묻힌 뒤, 다시는 그 노인을 볼 수 없었다.

누군가에게 잠시 자리를 내주고 먹을 걸 나누고, 거칠어진 마음에 함께 꿈을 심으려는 일은 일부러 시작한 게 아니다. 자신이 감당할 만한 일이 아닌 듯해 세든 가게를 내놓았던 때도 있다. 하지만 임자를 만날 만하면 애써 나쁜 점을 낱낱이 들어 등 떠밀다시피 보냈다. 이 일을 그만두면 당장 몸은 편하겠지만 마음이 슬플 게 뻔했다. 맘 놓고 들를 곳을 잃을 어린 친구들을 생각하면 그럴 수가 없었다.

누군가가 돕는답시고 잣대를 들이밀어 이들을 판단하지는 않을까 걱정되어 아주머니는 뉘 도움도 쉬이 받지 않는다. 딱 한 사람 예외인데, 우연히 지나다 여기 들러 알게 된 먼 지역에 사는 신부님이다. 무엇보다 아이들 자랑과 아이들 걱정을 나누고 고백할 친구가 되어 주었다.

내가 처음 이 가게에 갔을 때 “아줌마!” 하며 17살 여자, 남자 아이가 들어왔다. 여자아이는 얼마 전 중졸 검정고시를 통과했다며 다시 학교생활을 시작하려 했다. 그런데 그날 저녁이 다 되도록 둘은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집에서 밥해 먹을 수 있는데 안 해 먹었거나 돈이 있는데도 사먹지 않은 게 아니다. 손님으로 갔다가 아주머니와 이야기를 나누게 된 나를 두 아이는 친구로 받아줬다. 먹고 싶은 걸 고르라니 김밥과 라면, 소시지를 2인분씩 시켰다. 두 사람 앞에 차려진 첫 끼니. 아, 맛있다며 잘 먹겠다는 인사가 가슴에 얹혀 사라지지 않고 콕콕 찌른다.

아주머니에게서 얻어들은 말 가운데 간직하고 싶은 말이 있다.

“제가 섬기는 아이들….”

또렷하고 자연스레 그리 말했다. 그이는 베푸는 게 아니라 섬긴다. “사라질 줄 몰랐던” 아이들이 갑작스레 사라진 뒤, 그 섬김이 절실했다.



박수정 | 르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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