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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12일 오후 2시50분, 조용한 복도에 벨이 울린다. 단원고 2층, 2학년9반 교실 복도 쪽 유리창과 벽에 붙었던, 간절한 기도를 적은 무수한 쪽지가 일주일 새 다 떼어졌다.

유리창에서 딱 하나 떼지 못한 건, ‘경미’. 초록 면테이프로 글자를 만든 이름이다. 양쪽 창 가운데 벽에 걸린 그림이 새삼스럽다. 화가 뭉크가 그린 ‘절규’다.

“못 들어가겠어.”

11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 단원고등학교 '기억교실'에서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가족 및 봉사자들이 책상 위 유품들을 정리하고 있다. 연합뉴스

교실 뒷문 앞에서 돌아서는 엄마. 그러기를 몇 차례, 숨을 크게 쉬고는 복도에 놓인 갈색 종이 상자를 두 손으로 들고 교실로 들어간다. 상자 앞면과 뚜껑에 노란 리본과 딸의 이름 ‘오경미’가 새겨진 종이가 붙었다.

경미 생일인 지난 8월6일에도 엄마는 이 교실에 왔다. 교실 이전을 앞두고 천주교, 기독교, 불교 성직자가 참회하는 기도를 올렸다. 얼마 안 있으면 치워지는 이 교실 이 자리. 엄마는 창가 1분단 맨 뒤 왼쪽 경미 자리에 앉아 사진을 보았다. 경미가 짧은 머리 위에 벚꽃 몇 송이 꽂고 살짝 웃었다. 그날은 교실로 쉽게 들어섰는데, 라고 쓰려고 보니, 이리 생각하는 내게 의구심이 든다.

억울하게 딸을 빼앗긴 뒤 딸이 지낸 학교 교문을 들어서면서, 아이가 걷던 비탈길을 오르면서, 경미의 눈길이 닿았을 곳을 애써 헤아리면서… 엄마는 어땠을까.

제대로 된 교육, 참교육을 바로 여기서 시작하자는 ‘기억 교실’을 두고 비수 같은 말이 쏟아지던 시간들 사이로 경미의 숨결이 남은 교실을 찾을 때, 그 마음은 대체 어떠 했을까.

3시 정각 다시 벨이 울린다. 2시50분 벨은 수업 끝, 이번은 시작 벨이겠다. 쉬는 시간, 3층 3반 교실 친구 책상에 검은 펜으로 다녀간 흔적을 남기고 다시 이 교실로 들어오던 아이도 있었다.

교실 군데군데 정리를 마친 유품 상자가 낯선 모습으로 있었다. 흰 국화 한 송이씩과 함께. 마지막으로 경미와 김혜선, 이보미, 이수진, 조은정, 진윤희 그리고 최혜정 선생님의 유품을 엄마들과 아빠가 쌌다. 스무 명 학생과 선생님의 책상 위로 유품 상자가 모두 놓였다. 가슴이 철렁했다. 책상에 아이들 사진과 화분, 친구들이 챙겨 준 음료수와 과자, 공책과 편지가 있을 때와는 교실 모습이 사뭇 달랐다. 이야기하던 아이들 입을, 숨을 틀어막은 듯했다. 다시, 무섭고 두렵지 않을까. 유품 상자가 마치 관처럼 보였다.

“도저히 못 보겠어.”

경미 엄마가 울면서 교실 밖으로 나왔다. 맞다. 도저히 못 볼 장면이다. 이 교실에서 수업을 마치고 교복을 입은 채 수학여행을 떠난 학생 스무 명이 사라졌다는 사실도, 2년4개월여 진실 규명을 외치는 유가족에게 진실을 찾을 통로를 죄다 막아대는 대한민국도, 조은화·허다윤·남현철·박영인 학생과 고창석·양승진 두 선생님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는데 이제 그만 학교를 떠나라고 등을 떼미는 상황도 도저히 못 볼 장면이다.

교실에서 내려온 오후 4시, 국기 게양대 위 태극기가 이따금 부는 바람에 흔들린다. 틀림없이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들려주었을 거다. ‘자랑스러운 태극기’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이라고. 저 말에 천 개 만 개, 물음표를 던져야겠다.

오후 6시, 엄마들이 마음을 부여잡고 금요일마다 하는 ‘아이들이 돌아온다는 약속!-전국 금요 피케팅’에 나섰다. 상록수역 앞에서 두 시간 가까이 세월호특별법 개정을 위한 서명을 받았다.

엄마들과 헤어져 돌아온 밤, 노래를 틀었다. 되돌려 듣기를 얼마나 했을까. 더 많은 당신이 함께 들어주면 좋겠다. 프라머나드가 부른 ‘4월의 편지’. 노랫말을 쓰고 곡을 만든 이는 단원고 2학년 10반 권지혜의 언니 다혜씨다.

“오늘도 널 그리며 하루를 보낸다/ 오늘도 여전히 난 눈물이 흘러/ 소중했던 네 빈자리 아직 있는 것 같아/ 아름답던 추억들 붙잡고 싶어// 다시 돌아와 줘/ 보고 싶은 날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후렴)// 밤하늘 저 별들이 혹시 니가 아닐까/ 지친 내 하루 너에게 말하고 싶어// 내가 있는 이곳 아직 차가운 바다/ 니가 있는 그곳 따뜻한 봄이었으면/ 우리 함께했었던 추억 모두 다/ 난 잊지 못할 거야 그 시간들.”

박수정 | 르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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