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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시골에 내려와 지내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8년쯤. 길에 나서면 늘 지나치는 몇 사람이 있다. 몸이 불편하다. 서울에 살면서는 아무렇지 않게 장애인과 만나거나, 길에서 마주친 적이 거의 없었다. 동네에 그런 사람이 살았는지 알지 못했고, 관심을 기울인 적도 없었다. 여기 와서는 금세 사정이 달라졌다. 몸이 불편한 많은 사람들이 늘 자기 일을 하고, 사람들과 어울려 지냈다. 그런 사람들은 자동차 없이 걷는 일이 많아서 더 자주 마주쳤다. 금세 인사를 주고받는 사이가 된다.

마을에서 살면, 이사를 한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점점 더 자연스레 받아들이게 된다. 땅을 가꾸고, 이웃과 더불어 사는 것에 가장 애를 쓴다. 땅과 이웃을 떠나는 일은 거의 난민이 된다는 소리나 비슷하고. 그러니, 예전에 가장 큰 형벌은 멍석말이를 당해서 마을에서 쫓겨나는 일이었을 터. 지금도 마을 사람들은 언성을 높이고 싸우는 일이 있어도, 결국은 이웃으로 같이 살아간다.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든, 몸이 불편한 사람이든, 이웃과 헤어지는 일은 삶을 뒤흔드는 일이 된다.

영화 ‘블라인드’의 한 장면

최근에 도쿄에 갈 일이 있었다. 시내에서 점심을 먹다가, 옆자리에 앉아서 라면을 먹는 젊은 남자를 보고 흠칫 놀랐다. 사내는 정장을 입고 있었다. 가슴팍에는 회사 로고인 듯한 작은 배지를 꼽고. 밥을 다 먹은 사내가 일어났을 때에야 한쪽 팔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별다른 일은 없었다. 슬며시 눈치를 봤지만, 아무도 특별히 눈여겨보는 기색이 아니었다. 서울에서 지냈던 30년 동안을 되돌려 봤지만, 대도시 한복판에서 이런 광경을 본 적은 없었던 것 같았다. 우연이었는지 그날 저녁에는 주택가 슈퍼마켓에서 장을 보는 시각장애인과 마주쳤다. 물건을 고르느라 이것저것 살피고 있는데, 옆에서 한 사람이 반찬 이름과 값을 하나씩 또박또박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점원이었고, 그 앞에 시각장애인이 서 있었다. 그저 “오늘 뭐가 싱싱한가요?” 하는 물음에 대답하듯 모두가 일상적인 모습. 서울에서 내가 살던 모양새를 돌아보면, 몸이 불편하거나, 병이 있는 사람들을 눈앞에 보이지 않는 곳에 가두고는, 아예 없는 사람 취급했던 게 아니었는지.

얼마 전 교통사고가 난 것을 두고, 대뜸 장애인이 운전대를 잡을 수 없게 해야 한다는 말들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다. 몸이 불편한 사람들을 가두고, 장막 너머 보이지 않는 자리에 눌러앉히려는 마음들을, 여기 마을에 내려온 뒤로는 접하지 못했다. 운전을 하기 어려운 사람이 있다면, 운전을 하지 않고도 살아가기에 문제가 없도록 방도를 찾는 이야기는 있어도, 그악스럽게 운전대에서 끌어내리자는 소리는 듣기 어려웠다. 몸이 불편한 것이 나와 그를 나누고 서로 다른 세상을 살아가듯 할 만한 거리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모두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려온 지 몇 해가 지난 어느 해 대동회 때에 나는 그제야 몇몇 이웃의 손가락이 온전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기계나 연장을 다룰 때나, 들에서 일을 하고 있을 때나, 한 번도 손가락이 멀쩡하지 않으리라고는 짐작도 못할 만큼 손놀림이 좋은 분들이었다. 애써 손을 가리거나 하지도 않았는데, 그것을 알아채기까지 몇 해가 걸렸다. 무언가 가리려고 하거나, 편을 가르는 듯한 낌새가 있었다면 그렇게 한참 동안 모른 체 지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지금까지 모르고 지냈다고 한들, 하나도 이상할 일이 아닐지 모른다. 꼭 그렇게 드러나게 몸이 불편한 것이 아니어도 마을에서 지내면서 한 해 한 해가 가는 동안 누구는 미치광이 소리를 듣는 일이 있고, 누구는 모자란다는 소리를 듣는다는 것도 차차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이 사람 사이를 나누고, 그런 사람을 내치자는 뜻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쯤도 쉬이 알 수 있었다.

이제 햇수로 1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얼굴을 익힌, 그 몸이 불편한 마을 사람들은 여전히 별로 다르지 않은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인다. 여전히 웃는 얼굴로 가벼운 인사를 나누고, 사람들과 어울려 웃고 이야기하는 모습이 처음 봤을 때 그대로이다. 어찌 보면 여느 사람들보다 유난히 제 삶을 잘 지켜오고 있는 것 같은 인상을 받기도 한다. 동네 아이들도 누구든지 환하게 웃으면서 반가워하고 인사를 건넨다.

전광진 | 상추쌈 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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