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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를 믿는가. 믿는다. 아니다, 어떨 땐 믿고 어떨 땐 의심한다. 의심한다고? 그러면 나를 의심하는 그 순간의 나는 믿는가. 믿을 때도 있고 헷갈릴 때도 있다. 의심하는 나를 늘 발견하는가. 그건 아니다. 한참 지나서 발견하기 일쑤다. 그래도 나는 나의 판단과 행동과 생각을 중심으로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인정한다. 미덥지 못하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그제는 옆집에 가서 “할머니. 동네 길을 새로 잘 닦았으니 개통식 해야죠?”라며 거봉포도를 한 송이 드렸다. 친정에 와 있던 일흔이 다 된 따님도 활짝 반긴다. 고마워하시는 모습을 보자니 민망하고 죄송했다. 내가 내 죄(?)를 알기 때문이다.

그 전날이었다. 야생으로 돼지감자를 키우는 뒷산 밭으로 올라가려는데 길이 막혀 있었다. 찔레나무 등 고약한 가시나무들로 산길을 완벽하게 틀어막고는 원래 있었던 산길을 괭이로 파서 밭을 만들어놓았다. 여기까지가 이른바 ‘팩트’였다.

회전속도가 빠르고 정교한 내 생체 중앙처리장치의 연산 결론은 다음과 같았다. 이 결론은 순식간에 내려졌고 한 점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이건 옆집 소행이다. 한 평도 안될 땅 욕심에 길까지 밭으로 쳐 넣고는 남의 농로를 틀어막다니. 못 말리는 할머니다. 전에도 호박넝쿨을 밭으로 깔지 않고 길로 뻗어가게 해서 사람 다니기 힘들게 했던 적이 있다. 밭둑까지 호미로 풀뿌리를 캐내고 들깨를 심어서 장마가 지면 토사가 쏟아져 남의 밭을 못 쓰게 하는 게 취미인 할머니다. 그럴 때마다 아무 말 않고 지나갔더니 이제는 길까지 막다니 갈수록 태산이다. 옆집에 대한 배려라고는 눈곱만큼도 없고 사람을 우습게 보는 게 분명하다.

신중한 나는 이 명쾌한 결론을 여러 모로 재검증했다. 논리도 정확하고 증거도 있었다. 아. 그런데 엉뚱한 일이 벌어진 것은 한 나절이 못 되어서였다. 산림청 사람들이 이전 길 약간 위쪽으로 평평한 새 길을 만들고 있는 게 아닌가. 그들에게 물어봤다. 원래 있던 옛길을 복원하고 지적도에 나온 대로 할머니 땅을 회복시켜 드렸다고 한다. 할머니는 밭가에 얼씬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할머니께 거봉포도 한 송이로 죗값이 치러질지 죄송하다.

몇 달 전에는 이보다 더 심한 불상사가 있었다. 구례 ‘자연드림파크’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농촌인구 문제에 대한 발제를 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행사장에서 남의 차를 얻어 타고 남원으로 나와서 전주행 버스를 탔는데 전주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하면 내가 사는 시골로 가는 막차를 탈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다.

전주에 도착할 때쯤 되니 어두워진 차창으로 언뜻 고가도로가 보이는 것이었다. 전주에는 고가도로가 없는데 이상한 노릇이었지만 금방 내 생체 연산장치는 작동을 마치고 나를 안심시켰다. “요즘 하루가 다르게 공사판이 벌어지는데 고가도로 하나쯤이야 뚝딱이지 뭐.”

그래도 의심스러워 밖을 자세히 살폈더니 고가도로가 새로 건설된 것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낡고 더러워 보였다. 두 번째도 내 생체 연산장치는 자신 있게 결론을 내 보였다. “네가 전주를 다 알아?” “어두워서 잘 못 본 거야” 등.

내가 전주행 버스를 탔다는 것을 전제로 한 어거지 결론들이었다는 것은 곧 밝혀졌다. 버스가 도착한 곳은 광주였기 때문이다. 차창 밖으로 보이던 낯선 입간판들, 기아자동차 회사 건물 등도 나의 잘못된 결론을 수정하지 못했던 것이다. 심지어는 광주를 알리는 우체국 간판도 봤는데 그걸 보고도 나는 전국 어디에나 있는 ‘전주식당’을 떠올리며 광주를 선호하는 전주의 사설우체국이 이름만 갖다붙였을 거라는 한심한 결론을 내리기도 했던 것이다. 내 오류를 늦게라도 발견한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발견하지 못한 경우가 더 많이 있을 것이다. 못 믿을 ‘내 믿음’.

전희식 | 농부·‘소농은 혁명이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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