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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지는 못하나 알게 된 아이들이 있다. 민정이는 해마다 어버이날과 엄마 생일에 편지를 썼다. 또박또박한 글씨는 초등학생 때나 중·고생 때나 한결같다. 5학년 때 쓴 편지를 함께 읽고 싶다.

“아니 글쎄 내가 이번에 엄마 생일도 모르고 넘어갈 뻔한 것 있지. 엄마 갑작스럽지만 퀴즈야. 나에게 있어 행복이란 무엇일까. 사랑, 돈, 지위, 명예, 친구? 아니 물론 이것도 소중하긴 하지만 오로지 정답은 No.1 엄마 하나뿐이란 거 알지? 엄마를 태어나게 해주신 할머니께 감사드려. 엄마를 이 세상에 있게 한 세상에게 감사드려. 엄마를 웃게 한 <무한도전>에 감사해.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까지 이렇게 건강한 엄마에게 감사해. 나를 이 행복한 세상에 두 발을 디디게 해준 엄마에게 감사해. 엄마 마음을 아프게 하는 사람이 있으면 울트라 캡숑 초스피드의 속도로 달려가 뒤통수에 콩하고 꿀밤 한 대 때려줄게. 힘든 일 있으면 나에게 다 꼭 말해! 돈은 인생을 살면서 약간의 행복을 첨가해주는 조미료일 뿐이야. 엄마에게 있어 주재료는 역시 나이겠지. 엄마! 우리는 이 세상 최고의 하나뿐인 모녀지간인지 알지. 그리고 하나뿐인 친구인 거 알지. 이 세상이 사라져도 1000년, 10000년 사랑해.”

민정이는 태어나 14개월째에 아빠를 잃고 엄마와 단둘이 살았다. 편지에서 되풀이한 “감사해”는 말치레가 아니다. 마치 아르헨티나 가수 메르세데스 소사가 부르는 ‘그라시아스 아 라 비다(삶에 감사해)’를 듣는 듯하다. 민정이는 2014년 어버이날에 편지를 쓰지 못했다. 아침마다 엄마는 학교 가는 딸에게 가방을 메주고 볼에 뽀뽀를 했다는데 더는 그러지 못한다. 민정이는 그해 단원고 2학년이었다.


단원고 2학년 7반에서 학부모들이 세월호 희생 학생들의 단체사진을 보고 있다._경향DB


지난 12일 단원고 졸업식 날, 사람들이 분향소에서 모여 추모식을 하고 침묵 행진으로 학교를 찾았다. 앞서 이틀 전에는 졸업할 수 없는 아이들을 생각하는 겨울방학식이 열렸다. 민정이가 지낸 2학년9반 교실, 밖엔 찬바람이 부는데 창가로 따뜻한 볕이 들었다. 수학여행 가는 날, 누군가 쉬는 시간마다 찍은 사진 속에서 창 아래로 색색 여행용 가방이 늘어섰다. 둘이거나 셋씩 그리고 반 전체 아이들이 교실 여기저기서 어우러졌다. 웃고 얘기하고 책을 보고 살짝 고개 숙여 화장하고 사진 찍기 쑥스러운 듯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모두 생기 있고 자연스러웠다.

그랬던 아이들이 제자리에 없다. 교실에는 아이들을 그리는 말들이 가득하다. 칠판 테두리에까지 마음을 써 놓았다. 최혜정 쌤 존경합니다, 민정아 사랑해, 보고 싶다 최진아, 은정아 사랑해, 향매야 생일 축하해, 경미야 많이 보고 싶고 미안하고 사랑해, 보고 싶어 보미야 사랑해, 사랑한다 아라야, 보고 싶다 김혜선, 사랑하고 또 사랑하고 그립다 임세희, 하영아 사랑해, 윤희 언니 사랑해요, 한솔아 사랑해, 다혜야 사랑해, 다빈아 보고 싶어, 이수진 보고 싶어, 해화야 사랑해 미안해, 예지야 사랑한다, 다인아 사랑해, 김초예 사랑한다, 민경아 사랑해 잊지 않을게.

온통 “사랑해” “보고 싶다”…. 저 말을 쓰는 동안 심장은 얼마나 떨렸을까. 보고 싶다는 건 얼굴 마주하고 쓰다듬고 숨결 느끼고 목소리 듣고 싶다는 것. 꿈속에서도 간절하고 가슴 아린 말이다. 언젠가 나는 ‘외롭다’는 말을 함부로 쓰지 않겠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고 싶다’는 말도 휘뚜루 쓸 수 없겠다.

책상마다 아이 이름을 새긴 하늘색 공책이 놓였다. 아이를 아는 사람도, 모르는 사람도 거기에다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3분단 셋째 줄 왼쪽은 다빈이 자리다. 엄마가 공책에 쓴 글을 보니, 2년 가까운 시간을 견디는 동안 그리움이 줄어들지도, 애끊는 마음이 옅어지지도 않았다. 갈수록 짙어질 뿐. 가족들은, 눈에 보이지 않으나 곁에 있는 아이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어둠 속에서 숨죽여 우는 일 많을 것이다. ‘민정이와 다빈이’들이 생활하고 꿈꾼 교실, 이곳에 어떤 빛깔로든 남아 있을 이들의 흔적과 마주하고 읽어내고 질문하는 일이 가늠할 수 없는 그 눈물에 조금은 함께하는 일이지 않을까.


박수정 | 르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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