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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2.15 20:26:09 수정 : 2016.02.15 20:30:50
안경을 벗어 뒀기 때문에 목욕탕에서 누가 아는 체를 하면 일부러 얼굴을 갖다 대지 않고서는 누군지 알 수가 없다. 멀찌감치 있으면서 손짓으로 아는 체를 하거나 곁을 지나가면서 툭 던지듯이 인사를 건네면 그러잖아도 희뿌연 김 때문에 상대를 알아채기가 더 힘들다.
읍내에 있는 목욕탕엘 갔는데 내가 들어가 있는 탕 쪽을 향해서 노인 한 분이 아는 체를 하는데 탕 속에는 나 말고도 한 사람이 더 있어서 내가 어쩌지 못하고 있자 다른 쪽에서 노인 목소리 하나가 들렸다. “저 사람 안경 안 써서 못 알아보니까 가까이 가서 말 혀.” 어이쿠.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또 하나 있구나 싶었다.
말을 걸어 온 사람은 며칠 전에 우리 집에 연탄 배달을 왔던 할아버지였다. 오늘은 배달 안 나가고 쉬느냐고 물었더니 눈이 오는 날은 일을 나갈 수 없다고 한다. 시골이지만 읍내까지 도시가스가 들어오다 보니 연탄을 때는 집은 우리 집처럼 산속 동네 집들뿐이라 연탄 트럭이 올라갈 수 없다는 것이다.
이 할아버지를 특별하게 기억하는 것은 10여 년째 연탄 배달을 오셔서만이 아니다. 늘 그러셨지만 며칠 전에도 연탄을 반듯하게 쌓아 주시고 일을 꼼꼼하게 마무리해 주셔서다. 그날은 약속 시간이 되기 전에 연탄트럭이 올라왔는데 도로에서 연탄을 손수레에 내려 싣고 집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마당은 치웠지만 신발을 신은 채 부엌을 가로질러 뒤안으로 갈 수 있게 갑파를 까는 작업을 끝내지 못한 상태였다. 그 작업을 할아버지가 도와주셨다. 그 새에 나는 생강차를 끓일 수 있었다.
할 일이 없어진 나는 손수레를 가져와서 트럭 위 연탄을 날랐다. 일흔이 넘은 할아버지는 어깨와 팔뚝 근육이 젊은 나 못지않았다. 양쪽으로 네 장씩 연탄을 집어 나르다 보니 그쪽 근육이 발달되어 있었다. 같이 일을 하다 보니 나랑 손발이 척척 맞았다. 작년에 같이 왔던 아들은 농공단지에 취직이 되어서 출근했다고 한다.
다른 집들은 대부분 트럭에서 바로 연탄 창고로 옮겨지지만 우리 집은 연탄을 수레에 실어 옮겨와서도 다시 집게로 집어 날라야 하는지라 곱으로 힘이 들었지만 할아버지는 투덜댄 적이 없다. 손수레에 실린 마지막 연탄이 뒤안에 쌓이는 동안 나는 트럭 바닥을 빗자루로 깨끗이 쓸어드렸고 생강차를 한 잔 더 마신 할아버지는 “다른 집은 어떡하든 한 푼이라도 연탄값을 깎으려고 하는데 이 집은 늘 값을 더 준다”며 돌아가신 게 엊그제였다.
같이 탕 속에 몸을 담그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연탄을 일찌감치 배달해서 충분히 마를 시간이 있어야 불땀도 좋고 연탄가스도 덜 나와 좋은데 늦가을이나 초겨울에 배달하게 된다고 하셨다. 연탄 가구가 많이 줄었지만 배달 시기가 집중되다 보니 무척 힘들다고 한다. 연탄공장 사정은 7월이나 8월부터도 배달할 수 있는데 그렇게 못하는 것은 ‘연탄 나누기’ 사업을 맡은 기관이 저소득층 주민들에게 연탄을 나누는 행사를 꼭 그때 벌여서란다. 정치인들이 겨울옷을 입고 사진도 찍고 방송국에서도 나와서 뉴스를 내보내야 하는 게 그 이유 같다고 했다. 군청에서 나눠주는 저소득층 연탄 300장 쿠폰도 꼭 그때 나온다고 했다.
요즘은 산속 동네도 큼직한 가스탱크를 묻어두고는 가스 트럭이 와서 보충하는 식으로 도시가스를 공급하는 시범사업이 진행 중이란다. 내가 사는 동네도 오래지 않아서 가스탱크가 묻힐 거라고 하면서 35년째 해 온 연탄일도 접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고 하셨다. 하는 일이 있어야 생활에 윤기가 나는 법인데 비나 눈이 와야 휴일이신 할아버지가 만약에 연탄 일을 그만두게 된다면 일이 없어진 그때는 목욕탕 말고 어디로 가실까?
전희식 | 농부·‘땅살림 시골살이’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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