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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보고 ‘희귀종’이란다. 그만큼 보기 힘들다는 말이다. 기껏 손전화(스마트폰) 하나 없다고 희귀종이라니 좀 심한 것 아닌가? 손전화가 처음부터 없었던 건 아니다. 처음에 ‘벽돌’ 또는 ‘냉장고’라는 별명으로 나왔던 큼지막한 휴대폰부터 날렵한 스마트폰까지 줄곧 손전화를 썼다. 여러 가지 앱을 깔고 지하철 시간, 트위터, 페이스북 등을 하고 다녔다. 그러다가 2012년 여름 없애 버렸다. 마주 앉은 이와 진정성이 통하는 소통을 해야 한다든가, 현대 문명의 이기에서 좀 벗어나 보겠다는 등, 거창한 이유는 전혀 없었다.

손전화가 없으니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가장 힘들었던 때는 전북 부안 변산공동체에서 몇 개월 머물 때였다. 둘레에 아무도 없는 시골집이었는데 갑자기 배가 아팠다. 집 전화도 없었다. 허리를 부여잡고 가까스로 차를 운전해 10분 거리인 지서리로 내려와 전화를 빌려 119에 전화를 걸었다. 부안 읍내 병원을 가서 진찰해 보니 오줌보가 막힌 요로결석이었다. 또 한 번은 서해고속도로에서였다. 중간에 타이어에 펑크가 났다. 갓길에 차를 대고 지나가는 차에 도움을 청하려 했지만, 그 황량한 곳에 서는 차가 없었다. 할 수 없이 차를 끌고 가장 가까운 톨게이트로 빠져나와 수리할 수밖에 없었다.

그다음 불편한 게 기차 승차권 예약하기. 전에는 휴대폰으로 예약을 했는데 지금은 컴퓨터 앞에서밖에 할 수 없다. 또 인터넷에서 물건 구입할 때 휴대폰이 없으면 본인 인증을 하지 못하니 결제가 안된다. 사람들과 만나는 것도 쉽지 않다. 요즘 사람들은 모두 손전화가 있어서 장소를 대충 말한다. “제가 휴대폰이 없거든요” 하면 난감해한다.

손전화가 없으니 밖에서 전화 걸 일이 있으면 공중전화를 찾는다. 그런데 길거리에 공중전화가 잘 보이지 않고, 있다 해도 고장 난 전화가 많다. 지하철 역사에 있는 공중전화도 반은 고장 나 있다. 공중전화카드를 파는 곳도 별로 없다. T머니 카드를 올려놓고 거는 전화는 상대방이 전화를 받자마자 끊어지는 경우가 많다. 동전을 넣는 전화는 한 통화에 70원 하는데 150원을 넣으면 몇 마디 할 시간이 없다. 140원이 떨어진 뒤, 나머지 10원은 반환되지 않는다. 10원이라도 모자라면 결코 전화를 쓸 수 없는데 왜 남는 10원은 그냥 떼어먹는지 궁금하다. 오래전부터 그랬다. 그나마 이런 공중전화도 자꾸 없애는 것 같다.

공중전화 서비스는 보편적 역무로 지정돼 있다. 당연히 적자라도 운영해야 한다. 휴가 나온 군인이나 외국인 등에게는 필요한 통신 수단이다. 이동통신 장애 때도 공중전화가 필수다. 또 나처럼 손전화를 쓰지 않는 사람도 가끔 있다. 이동통신으로 떼돈을 벌고 있는 통신사업자들이 손실보전금을 각각 분담해서라도 공중전화를 유지해야 하는 것 아닌가? 지난달 한 이동통신 업체는 군 병사 수신용 공용 휴대폰과 요금, 유지 보수, 또 전국 각지에 700여기의 통신중계기를 신설하는 데 들어가는 600억원을 무상 지원하기로 했단다. 지난해 KT의 보편적 역무 제공에 따른 손실보전금 총액은 498억원밖에 안된다. 지난 1월28일 미래창조과학부는 전기통신 분야의 매출액이 300억원 이상인 20개 전기통신사업자에게 각각 분담토록 할 예정이라고 했다. 그나마 다행이다.

지하철을 타고 가다 보면 어느 때는 좀 섬뜩하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스마트폰에 고개를 처박고 있는 모습이 기괴하기까지 하다.

연속극을 보거나, 애니팡 같은 게임과 카톡, 인터넷 쇼핑 등을 한다. 나머지는 내가 관심이 없는 연예계 뉴스를 본다.

손전화가 없으면 불편하지만 좋은 점도 있다. 스팸 정보를 차단할 수 있고 보이스피싱에 걸릴 걱정이 없다. 통신비도 절약된다(4인 가족이면 평균 15만~20여만원이다). 또 책을 많이 읽을 수 있다. 요즘 출퇴근 지하철에서만 보는 책이 일주일에 두세 권이다. 불편해도 아직은 손전화를 사고 싶지 않다.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나도 궁금하다.


안건모 | ‘작은 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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