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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아이와 함께 학교까지 걷는다. 큰아이는 올해 초등학교 2학년에 올라가고 둘째는 그 학교에 딸린 유치원에 다닌다. 갓 두 돌이 지난 막내는 누나와 형이 학교 가는 길에 함께 따라 나서서는 언제나 제가 앞장 서 걷는다. 시간에 맞춰 학교에 갈 채비를 하느라 아이들을 윽박지르거나 다그치다가도 신발을 신고 집 밖으로 나서면 금세 웃고 떠들면서 학교까지 걸었다.
이곳 학교는 시골 학교 치고는 아이들이 많이 다닌다. 초등 전교생이 100명쯤. 아이를 키우는 젊은 부모가 꾸준히 새로 이사를 온다. 그런데 걸어서 학교를 다니는 아이는 그리 많지 않다. 우리 집도 시간이 늦거나 하면 차를 타고 나오기도 하는데, 어쨌거나 학교까지 걷는 아이는 손으로 꼽을 만큼이다. 자동차가 많아진 까닭에 ‘걸어서 어디에 간다는 것’이 시골 사람들에게도 낯선 일이 되어 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우리 집만큼 학교에서 가까운 집이 얼마 안되는 까닭도 있다. 원래는 악양면 안에 초등학교가 세 개였으나, 그게 모두 합쳐져서 지금은 하나다. 없어진 학교 가까운 마을에 사는 아이들은 지금 학교까지 걸어오자면 한두 시간은 족히 걸린다.
보육 문제나, 학교 교육에 관한 요즘 소식들은 늘 꾸준하고, 점점 강도를 높이면서, 정부가 아이들과 학부모를 힘들게 하는 뉴스가 대부분이라 자세히 들여다보기가 겁난다. 그중에 올해 초 슬그머니 목록을 하나 더 올린 것이 있는데, 전국에 있는 작은 학교는 싹 없애겠다는 것이다. 물론 이 일은 벌써 수십년째 해오고 있다. 그것을 올해에는 작은 학교 기준을 대폭 늘려잡아서 훨씬 많은 학교의 문을 닫겠다고 하고 있다. 그 기준대로라면 강원이나, 경북, 전라도 같은 곳은 절반에 가까운 학교가 문을 닫는다. 한 면을 통틀어 학교가 아예 하나도 남지 않는 곳들이 수두룩하다. 이웃 면으로 학교에 가야 하는 아이들은 날마다 수십km가 넘는 거리 때문에 차를 타야 한다. 어린 초등학생, 유치원생들이 그렇다.
시골 학교는 어디나 마을 한가운데에 있다. 아니, 학교가 있는 자리가 마을 가운데가 된다. 그런 학교가 문을 닫으면 마을에 얼마 남지 않은 모든 것이 흩어지고 사라진다. 아이들과 젊은 부모들이 떠나고, 묵정밭이 금세 곳곳에 검버섯처럼 피어난다. 시골에 살고 있으니 ‘마을이 아이를 키운다’라는 말을 절감하는데, 그 말이 맞는 만큼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는 마을을 떠받치는 기둥이 되기도 한다. 적어도 지금 여기에서는 그렇다. 학교 하나를 걸어 잠그는 일은 그래서 마을 하나를 늙어 죽게 만든다. 다시 돌이키기 어렵다는 점에서는 대대로 가꾸어 온 논을 아스팔트로 덮는 짓과도 다르지 않다. 학교가 없는 마을은 더 이상 젊은 사람이 들어올 일은 죽었다 깨어나도 없는 마을이 되듯, 반대로 작은 학교가 버티고 있는 마을은 여전히 학교를 통해서 숨을 쉬고 기운을 얻고, 사람이 모일 수 있다. 가까운 곳에도 그런 학교가 두엇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들은 남의 동네 학교에 다니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전광진 | 상추쌈 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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