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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 살고 싶었어요. 그랬는데, 아이가 생겼죠. 아이를 서울에서 낳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그래서 생각보다 일찍 내려오게 됐어요. 악양에서 봄이가 태어났지요.”

2008년 가을 경남 악양으로 왔다. 악양에서 나고 자란 첫째 아이는 겨울이 지나면 초등 2학년이 된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작년에, 이곳 경남은 도민과 ‘여민동락’하신다는 홍준표 도지사님께서 무상급식을 탁 끊었다. 덕분에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은 호기로운 것은 감히 배우지 못하고 마음만 쪼그라들었다. 지갑도 마찬가지.

결국 교육청 예산으로 되는 만큼만 급식비를 지원하기로 해서, 전교생이 100명이 넘지 않는 작은 학교 아이들만 급식비를 내지 않고 밥을 먹었다. 이 방침이 결정되던 작년 1학기, 아이가 다니던 초등학교는 전교생이 98명이었다. 그런데 여름방학 사이에 몇 명 전학을 왔다. 100명이 넘었다. 상황은 해를 넘긴 지금까지 똑같다. 그동안 애 키우는 집에서 귀농을 고민한다 하면, 악양으로 오라고 꾀면서 하는 말이 “여기 초등학교 애들이 100명이나 된다”였는데, 지금 내 얄팍한 마음은 올해 졸업생은 몇 명이고, 신입생은 몇 명인지 그런 걸 세고 앉았다. 그리고 홍준표 도지사는 여전히 눈앞에 대고 돈통을 딸랑거리면서 ‘아이들 밥 먹일 돈은 없다’ 같은 소리만 되풀이하고 있다.

마을 앞에는 섬진강을 따라 19번 국도가 지나간다. 화개 장터를 지나 전라도 구례로 가거나, 하동 읍내를 지나 남해로 가는 길. 아름답다. 읍내를 가든, 장을 보러 가든, 어디를 가든 이 길을 따라 바깥으로 나간다. 우리 집에 오는 손님이라면 누구든 이 길을 따라 온다. 그래서 처음 오는 손님일 때는 이 길을 찬찬히 보기에 좋은 시간을 머릿속에 그린다.

학교급식법개정과 차별없는 친환경의무·무상급식지키기 범국민연대 회원들이 19일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 앞에서 홍준표 경남도지사 구속 수사 및 경남 무상급식 원상회복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_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그런데 이 길이 몇 해째 공사 중이다. 2차선 국도를 4차선으로 넓히고 있다. 그 옆에다가는 심지어 반반한 모양으로 자전거도로까지 내고 있다. 공사를 하는 핑계는 간단하다. 매화가 피고 벚꽃이 흐드러지는 두세 주 동안의 주말, 전국에서 사람들이 꽃구경을 오는 그 며칠 동안 차가 막힌다. 그래서 쭉 뻗은 대로를 닦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옹색한 이유에도 공사는 벌어졌다. 길옆으로 맨땅이 드러나더니, 벚나무 가지가 부서져 뒹굴고, 흰 배꽃 피던 배밭이며, 금싸라기 같은 논밭과 과수원이 시꺼먼 아스팔트로 뒤덮였다. 농사를 조금 지으면서 알게 된 것은 물이 넘나드는 물가 땅은 농사짓기에 더없이 좋다는 것. 벼를 심으면 화수분처럼 나락이 나고, 섬진강가 배밭에서 나는 배는 맛으로 치자면 우리나라 첫손에 들 만한 것이었다. 우리 집 농사짓는 땅이 논밭 해서 1500평쯤인데, 이만 한 땅을 ‘각단지게’ 농사지으면 네댓 집 한 해 먹을 양식이 나온다. 읍내 가는 내내 검고 단단하게 뒤덮인 논밭이 우리 논만 한 것 몇 개일지가 저절로 헤아려진다.

이런 형편이니 읍내 한번 나가는 것도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 지난봄, 읍내에 다녀오던 길에 큰아이는 길 공사가 한창인 곳으로 눈길을 던지며 말했다. “저 사람들은 다 돈 벌려고 저러는 거야? 예쁜 산을 깎아서 이상하게 만들잖아.” 나는 복잡한 예산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몰라도, 이것이 집안 살림으로 치자면 아이들 밥 먹이는 것은 뒷전으로 미루고, 땅 문서 들고 나가서 노름하는 것이나 매한가지라는 것은 안다. 아이와 부모를 교묘하게 거지 취급하고, 겁박하면서 돈이 없다고 하는 사람들 앞에 돈이 쌓인다. 거기에 ‘필요’가 끼어들 자리는 없다. 하기는 이것이 아이들 급식과 보육비만의 문제일까.

공사는 부랴부랴 마무리되고 쭉 뻗은 길을 임시로 달리게 해 놓았다. 겨울에는 강가에 앉은 오리며 독수리를 보기도 하고, 길가에 컨테이너를 놓고 배 장사하는 가게 아주머니와 눈인사를 하며 지나던 길은 이제 없다. 차는 시속 80㎞를 가뿐히 넘기고, 아이들도 우리도 달리는 차 안에서 조용하다.


전광진 | 상추쌈 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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