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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세대는  소확행을 하거나
영끌의 위험감수를 통해 
파이어족으로 진화하길
꿈꾸는 친구들이 늘지만
학생 창업가들을 위한 
제도는 아직 미흡하다

대학은 이제
청년들에게 무언가를 
도전하고 실패해 볼
인큐베이션 장으로 
진화해야 한다
그래야 그들이 더 커진다

이것이 내가 꿈꾸는 
기업가적 대학이다



“요즘 서울대학교 학생들 중 가장 똑똑한 친구들이 제일 많이 고민해보는 진로가 뭔지 알아요?” 몇 달 전에 동료 교수가 불쑥 내게 물었다. 그의 대답. “글로벌 기업이나 국내 대기업의 입사도, 고시 합격도 아니래요. 창업이랍니다.” 

정말 그럴까? 대학생에게 창업을 본격적으로 가르쳐보겠다며 이직을 준비하던 나에게 격려와 응원의 뜻으로 한 말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 전국 대학생 792명을 대상으로 2021년 6월에 실시한 한 설문조사 결과(알바천국)에 따르면, “취업 대신 창업을 고려한 바 있다”고 답한 친구들이 절반 이상이다. 대학알리미가 2020년에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인구 대비 대학생 창업자 비중이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비슷한 맥락에서 작년 중소벤처기업부의 발표도 흥미로운데, 이에 따르면 국내 벤처·스타트업의 고용 증가율은 국내 전체 기업 고용 증가율보다 세 배가량 높다. 또한 재직자의 전체 규모도 총 69만8000명인 4대그룹보다 3만명 정도가 더 많다. 물론 창업이 취업에 비해 더 선호되는 진로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일부 특이한 사람들의 리그는 더 이상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왜 이런 변화가 생겼을까?

우선 큰 흐름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첫번째 흐름은 199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다. 인터넷 상용화가 본격화되던 당시, 닷컴 창업은 거대한 물결이었다. 이때의 최강자는 야후 같은 인터넷 포털 기업이었다. 검색 엔진으로 야후를 제친 구글도 1990년대 후반에 태동한다. 이 시기 인터넷 이용자의 행동은 주로 웹페이지를 검색하고 읽는 정도였다. 그 이후 2007년에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들고나오면서 모바일 혁명이 시작된다. 스마트폰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애플의 운영체계(iOS)와 구글의 운영체계(안드로이드)에서 작동하는 앱생태계가 조성되면서 플랫폼 비즈니스의 빅뱅이 일어났다. 2000년대 중반부터 페이스북 같은 사회관계망서비스와 유튜브 같은 동영상 공유 서비스가 등장했고, 공유 플랫폼의 시대가 열린다.  

이로부터 대략 10년이 경과한 2016년, 딥러닝 기반의 AI와 비트코인 열풍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블록체인 기술 등이 또 다른 비즈니스의 문을 열었다. 이제 이용자는 단지 웹이나 앱에서 읽고 쓰는 정도를 넘어서, 해당 플랫폼의 생태계에 기여한 만큼 데이터에 기반하여 보상을 받을 수 있는, 탈중앙화된 구조 속의 주요 행위자가 될 수도 있다. 이런 세 가지 흐름에 대해 어떤 이들은 웹1, 웹2, 웹3라고 이름을 붙인다.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의 역사도 비슷하다. 인터넷 물결을 탄 네이버가 젊은 인재들을 빨아들여 지금의 대기업이 되었고, 모바일 물결을 환호한 카카오도 그랬다. 

중요한 것은 이런 새로운 물결이 올 때마다 기존 사고에 깊이 물들지 않은 젊고 유연한 인재들이 서핑을 즐겼다는 사실이다. 이런 맥락에서 모든 것이 디지털화되고 따라서 전 영역에서 디지털 전환이 가능해진 지금이야말로, 어쩌면 가장 큰 파도인지 모른다. 20대 초반의 말랑말랑한 청년들이 스타트업에 뛰어들고 있는 것은 혹시 멀리서 일렁이는 이 거대한 파도를 어렴풋이 보았기 때문일까? 

새 물결 올 때마다 청년들은 서핑

우리의 역사를 조금 더 이야기해보자. 닷컴 시기에는 벤처창업 태풍이 불었지만 정부나 민간이나 도울 준비가 부족했다. 창업자들을 어떻게 도와야 할지, 자금을 얼마나 어떻게 지원해주는 게 좋을지 우리의 데이터가 없었다. 그래서 수많은 청년들이 벤처의 세계로 진입했다가 큰 좌절과 함께 빚더미에 앉았다. 사회가 신용불량자를 양산한 것이다. 

하지만 학습력이 빠른 우리는 중소벤처기업부까지 창설하여 창업자 발굴, 교육, 육성, 자금 지원 체계를 만들었고, 이때부터 창업을 해서 열심히 일하면 비록 회사는 망하더라도 최선을 다한 개인들은 신용불량자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지원을 받은 일부 스타트업들이 유니콘의 길을 가고 있다. 청년들이 이 거대한 흐름과 생태계 변화를 이해하고 체감했기 때문에 스타트업 생태계에 뛰어드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저 창업해서 대박이 난 선배 창업가처럼 되고 싶고, 망해도 빚더미에 앉지는 않을 것이라는 안도감이 생겼기 때문일지 모른다. 

이것이 지금 대학가에 부는 창업 물결의 거시적 배경이다. 물론 우리 사회만의 특수한 상황도 더 깊이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는 자율성이 상당히 부족하다. OECD 국가 중에서 GDP 대비 행복도를 비교해보면 한국은 매우 낮은 위치를 점하고 있다. 즉 잘살기는 하는데 별로 행복하지 않은 것이다. 행복심리학자들에 따르면 자율성 훼손은 불행과 깊은 관련이 있다. 우리의 40~50대 유능한 분들은 대부분 직장에서 상사가 시키는 일을 잘해서 승진한 이들이었다. 이견을 내는 사람들도 인정받고 성공하는 문화는 아니었다.    

이 광경을 Z세대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다. 자신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꾸역꾸역 하는 모습이 혐오스럽기까지 하다. 그냥 자신이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소확행을 하거나, 영끌의 위험감수를 통해 파이어족으로 진화하는 것을 꿈꾸는 친구들이 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스타트업은 청년들에게 매력적인 대안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모험적 학생 창업가들을 위한 제도는 아직 미흡하다. 대학 1, 2학년 때 창업을 결심하고 창업가의 길을 가고 있는 청년들을 본 적이 있는가? 창업을 하다 보니 전공 공부를 따라가기 점점 힘들어져서 졸업장을 딸 수 있을지 걱정하는 친구들이 의외로 많다. 창업을 해서 열심히 일했다고 졸업시켜주는 대학은 거의 없으니까. 하지만 생각해본다. 스스로 팀을 만들고 창업을 해서 사활을 걸고 학습하고 실행하는데, 이것만큼 살아있는 공부가 어디 있겠는가? 가장 능동적인 학습과 교류를 하고 있을 시기일 텐데, 이들을 대학에서 내치거나 창업 휴학제 시행 정도로 제적을 연기시켜주는 것이 과연 답일까? 

대학, 교육을 넘어 기업가적 전환

창업 교수들에게도 비슷한 문제가 있다. 정부와 대학이 교원 창업을 격려하고 지원해준다고 하지만, 실제로 창업을 하고 나면 일이 복잡해진다. 대학의 고유 업무(교육과 연구)로부터 자연스럽게 멀어지기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창업은 주로 종신교수직을 받은 정교수들의 몫이다. 아이디어와 실행력이 뛰어난 젊은 교수들은 승진에 문제가 생길까 봐 창업을 꺼리는 경향이 있다. 창업 휴직제를 도입한 학교도 늘어나고 있지만, 근본적 해법은 아니다. 

나는 500년 전에 ‘교육’으로 시작한 대학이 100년 동안 ‘교육과 연구’의 패러다임으로 진화해왔으나, 이제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넘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기업가적 전환’이다. 

이제 창업은 실리콘밸리의 몇몇 대학만의 주제가 아니다. 내가 보기에 이것은 대학의 진화 단계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평균 수명 100세를 준비하는 이 시대에 기존의 대학 시스템은 기껏해야 첫번째 직장 정도에 영향을 주는 교육기관일 뿐이다. 대학이 테크놀로지와 수명의 급격한 변화에 적응하려면 청년들에게 스스로 무언가를 도전해보고 실패해볼 수 있는 인큐베이션 장으로 진화해야 한다. 나는 이것을 대학의 ‘기업가적 전환’이라 부르고자 한다. 이것은 대학이 기업이 되라거나 기업에서 써먹을 인재를 교육하는 기관으로 가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대학이 교육과 연구 기관을 넘어 구성원들이 기업가적 정신을 발휘하고 경험해볼 수 있게끔 진화해야 한다(하고 있다)는 뜻이다. 

대학생들의 공부를 보자. 중학교, 고등학교 총 6년 동안 대학 입시를 위한 문제집을 풀다 들어온 우리 아이들이 기업 입사를 위해 다시 4년간 교과서의 문제를 풀고 있지 않은가. 그들의 입장이 되어보라. 정말 지겹지 않겠는가. 이게 과연 대학에 와서 하고 싶었던 공부일까? 좌절하지 않겠는가. 

개인 또는 팀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를 스스로 발굴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2년을 능동적으로 배우고 경험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준다면 그들은 지금보다 훨씬 더 성장할 것이다. 순위가 더 높은 대학에 또다시 진학하기 위해 문제집을 펼치는 일은 줄어들 것이다. 이것이 내가 꿈꾸는 기업가적 대학이다. 이것이 내가 서울대라고 하는 안전지대를 떠나 가천대학 창업대학으로 가게 된 이유이다.

<장대익 가천대 창업대학 석좌교수(학장)>

 

 

연재 | 장대익의 에볼루션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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