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시급한 것은 모든 국민이 세계 최고 수준의 지식에 쉽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지금의 지식 생산과 유통의 체계를 일반 국민들이 안다면 기가 막힐 것이다. 반드시 해야 할 귀중한 연구 주제들이 쌓여 있다고 하자. 코로나19와 같은 재난으로부터 인류를 구할 수 있는 그런 연구 말이다. 연구를 하려면 비용이 들어간다. 때로는 천문학적인 액수가 필요하기도 하다. 연구비는 대부분 정부나 기업이 지원한다. 공익적인 연구일수록 정부가 지원하는 경우가 많다. 세금이 들어간다는 뜻이다. 다행히 연구가 성공하면 그 결과는 논문이 되어 학계에 보고된다. 이 단계에서부터 세계 학술지 시장을 독과점하고 있는 국제적 출판기업이 개입하기 시작한다. 논문 한 편이 심사를 거쳐 최종 출판되기까지 한국 돈으로 몇십만원에서 때로는 몇백만원에 이르는 비용을 내야 한다. 여기까지가 논문, 즉 지식의 생산 단계이다.
이제는 애써 생산한 지식을 인류를 위해 활용해야 할 단계이다. 몸이 약한 초등학생 자녀를 둔 부모가 우리 아이 백신을 맞혀야 할지 말아야 할지 세계적인 수준의 연구를 알고 싶다고 하자.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궁금증을 풀어줄 논문이 등장한다. 반가운 마음에 클릭하면 보통 한국 돈 몇십만원을 결제하라고 요구한다.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액수이다. 대학이나 연구소처럼 일상적으로 수많은 논문을 읽을 수밖에 없는 기관들은 엄청난 돈을 주고 외국 출판사의 논문 데이터베이스를 통째로 구독한다. 그 기관에 소속된 사람들만 볼 수 있는 조건인데, 기관 한 곳당 많게는 연간 100억원 가까운 돈이 외국 출판사로 흘러간다. 비영리조직인 대학이나 연구소가 감당할 수 없는 액수라서 정부가 일부를 지원하는 경우가 많다. 역시 세금이다. 그런데 막상 세금으로 수행하고 세금으로 구독하는 그 연구에 일반 납세자들은 접근할 수 없다.
돈은 국민들이 냈고 연구는 학자들이 했는데 출판기업들은 논문을 출판하면서 돈을 받고 그 논문을 읽는 데 또 돈을 받는다. 교육 및 연구기관 사이의 격차는 더 크게 벌어진다. 그나마 형편이 좀 나은 상위권 대학들은 비교적 많은 논문 데이터베이스를 구독하지만 그렇지 못한 대부분의 대학들은 예산이 없어서 아주 일부밖에 구독하지 못한다. 세계 학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가 없으니 세계적인 수준의 연구는 시작 단계부터 불리하다. 서울대 10개를 만들고 싶다면 다른 대학들도 서울대만큼 많은 논문들을 자유롭게 볼 수 있게 해주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더 나아가 세금으로 연구를 도와주고 논문을 구독할 수 있게 해준 국민들도 자유롭게 지식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앞서 말했듯이 지식과 경제성장의 상관관계는 0.9가 넘는다. 미래 성장동력은 바로 여기에 있다.
지나간 정부들은 지식 접근을 총괄하는 컨트롤타워조차 없었다. 대학은 교육부 소관이고 정부출연 연구소는 과기부 소관으로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가 하면, 지식에 접근할 수 있는 전 국민의 보편적 권리라는 인식은 찾기 힘들고 예산 지원해달라는 엄살쯤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선진국들은 앞서가기 시작했다. 거대한 국제적 출판기업 앞에 절대적 을일 수밖에 없는 연구기관들에 개별 협상을 맡겨놓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직접 협상하고 모든 국민이 자유롭게 지식에 접근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같은 세금을 훨씬 효율적으로 쓰는 방법이다. 우리나라 연구기관들이 출판기업에 지불하는 구독료는 연간 2000억원 정도로 추산된다. 비영리 연구기관들은 감당할 수 없는 돈이지만 국가 재정에 비추면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는 일이다. 지금껏 구독료 예산을 지원받던 대학들에는 절감된 예산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지식을 대중화하는 일을 맡기면 된다. 그 나비효과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미래는 여기에 있다. 새 정부는 닫혀 있는 지식의 문을 활짝 열어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