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정도언 | 서울대 교수·정신분석


조용필씨나 이미자씨가 대중가요 분야에 세운 업적이 대단하지만 국내에 있을 때 그들의 노래를 듣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미국 고속도로에서 그들의 노래를 들으면 눈물이 찔끔 흐른다. 유럽의 거리에서 국내 대기업의 광고판을 보면 헤어진 가족을 만난 것 같은 반가운 기분이 든다. 외국에서 잠시 잊고 있던 ‘우리나라’의 재발견이 작은 감동을 준 것이다. 그래서 “외국에 나가면 모두 애국자가 된다”고 말들을 한다.

방송국 스튜디오 창에 ‘우리나라(O), 저희 나라(X)’라고 쓴 큰 쪽지가 붙어있는 것을 보았다. 출연자 중에 그만큼 우리나라를 본의 아니게 낮추어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개인이라면 때로는 남들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국가는 함부로 낮출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나라를 높게 세워야 우리 모두 국제사회에서 고개 들고 살 수 있다. 그래서 ‘저희 나라’가 아니고 ‘우리나라’라고 해야 한다. 국민이라면 우리나라가 강해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나는 나라를 되찾은 후 태어났다. 그런 우리들은 나라 잃은 상태에서 태어났던 분들의 애환을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다. 베를린 올림픽의 마라톤에서 일본 대표로 우승한 손기정옹의 이야기를 비롯해 영화나 소설에 여러 이야기들이 나오지만 죄송하게도 피부에 닿기 어려운 간접 경험일 뿐이다.

무역 강국이 된 대한민국이 선진국 문턱에 거의 진입하기 직전이라고 하는데 아직 우리 자신이 우리나라를 받아들이는 형태와 정도는 각양각색이다. 외국의 저명인사, 예를 들어 유명 영화배우가 한국에 왔을 때 방송 인터뷰에서 자주 나오는 질문이 “한국을 어떻게 생각하는가”이다. 그 배우가 평소 우리나라에 대단한 관심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상업적 목적으로 그저 잠깐 다녀가는데 “한국을 좋아한다, 비빔밥이 맛있었다”는 말을 억지로 끌어내야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남아공월드컵 나이지리아전에 앞서 선수들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ㅣ 출처:경향DB

자존감에는 두 가지 형태가 있다. 하나는 자신의 마음에서 에너지가 나와서 유지되는 자존감이고 다른 하나는 다른 사람의 칭찬이나 격려를 에너지로 써야만 지켜지는 자존감이다. 그 둘 중 어느 것이 진정한 의미의 자존감인지는 설명이 필요 없다. 외국인들이 우리나라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자꾸 묻는 것과 같은, 자신 없는 모습은 이제 자랑할 만한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보일 필요가 없지 않을까.

나라의 정체성을 잘 규정하고 닦는 것이 우리의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서는 매우 중요하다. 우선 국민 각자가 격을 지켜주는 것이 중요하다. 지위의 높고 낮음이나 재산의 많고 적음을 떠나 사람으로서 사람에게 좋은 인상을 준다면 그것이 모여 나라의 격이 올라갈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딱한 사정은 있겠지만 젊은 여성들이 다른 나라에 가서 성을 파는 행위나 남성들이 해외에 나가 성을 사는 충동적 행위는 우리 자신과 나라의 자존감을 파괴하는 어리석은 짓이다.

일상에 바쁜 국민들이 늘 나라를 생각하며 살 수는 없다. 그래서 가끔 나라의 정체성을 생각하도록 하는 방법이 태극기를 보여주거나 애국가를 부르게 하는 것이다. 모든 나라에서 국가의 정체성과 자부심을 증진하기 위해 국기와 국가(國歌)를 활용하고 있다. 구체적 행위로 주요 행사에 모인 사람들은 국기에 경의를 표하고 국가를 부른다.

연구에 의하면 국기를 보여주는 것이 국민의 결속과 단합에 중요한 영향을 준다. 국가를 부르는 것도 같은 효과가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하면 의견의 양극화가 심한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중도적인 입장을 취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이를 뒤집으면 대한민국의 국가와 국기를 부정하는 말이나 행동은 국민의 단합을 방해하고 국민이 극단적인 형태로 분열되는 것을 교묘하게 조장하는 행위로 해석할 수 있다. 불현듯 궁금해지는 것은? 국가나 국기를 부정하는 사람이나 집단이 있다면 그들의 행위는 이런 모든 것을 알고 실천에 옮기고 있는 고도의 심리전일까.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