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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왝더독’(Wag the dog). 꼬리가 몸통을 흔든다는 말이다. 새누리당 전·현직 주요 당직자들이 세월호 참사를 해상 교통사고로 규정하는 발언을 잇달아 내놓았다. 이는 정부의 무능을 가리기 위한 전형적인 왝더독 발언이자 마타도어와 다름없다.

세월호 참사를 둘러싼 물타기식 왝더독 현상은 종교인이자 사업가인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이 등장하면서 이미 예견됐다. 유 전 회장 일가의 경영비리 의혹이 세월호 참사와 법적으로 얼마만큼의 연관성이 있는지 구체적으로 밝혀지기도 전에 유씨 일가가 도피하면서 곁가지가 마치 줄기인 양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보도가 잇따랐다.

유 전 회장의 죽음에 이어 경찰에 검거된 그의 장남 대균씨와 도피 조력자 박모씨가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는 모습을 보면 영락없는 ‘왝더독’이다. 세간의 관심은 대균씨보다는 태권도 국제심판 출신인 박씨의 미모에 쏠렸다. 언론이 ‘호위무사’란 수식어를 붙여준 박씨에 대한 과도한 관심은 소위 인터넷상의 ‘실검’(실시간 검색)에서 금방 증명됐다. 일반 대중은 박씨의 범죄 혐의보다 취재 카메라 앞에서 꼿꼿한 자세로 안광을 내뿜는 미인의 신상이 더 궁금했다.

유병언 전 회장의 사망 역시 마찬가지다. 그의 죽음을 둘러싼 미스터리는 어느새 세월호의 진실을 밝히는 등불을 벌써 가리고 있다. 유 전 회장은 시신이 발견되기 전에도 세월호 사건과 관련된 국민들의 분노와 의혹의 피뢰침 역할을 충실히 해오던 터였다. 이를 두고 정권이 의도적으로 세월호 참사에 대한 분노의 화살을 유 전 회장 일가로 돌렸다는 주장이 사실이든 아니든 간에 이 역시 왝더독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1998년 로버트 드니로와 더스틴 호프먼이 주연을 맡은 할리우드 영화 <왝더독>을 보자. 미국의 대통령 선거를 12일 앞두고 재선을 노리는 대통령이 백악관에 견학온 걸스카우트 학생을 성추행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백악관 참모진이 고용한 정치 해결사는 알바니아를 적대국으로 포장하고 언론을 통해 B-3 폭격기의 전진배치와 군장성들의 주둔지 이동에 관한 뉴스를 연일 속보로 보도하게 만든다. 긴박한 전쟁 현장 재현으로 성희롱 사건은 무마된다. 이후 대통령의 성추행 사건이 재이슈화되자 전쟁 후 알바니아에 억류된 가상의 군인 슈만을 전쟁 영웅으로 만들고 그의 죽음을 국가적 영웅의 죽음으로 위장한다. 이후 대통령 선거에서 현직 대통령은 89%라는 압도적인 지지율로 재선된다.

영화 '왝더독'의 한 장면 (출처 : 경향DB)

대중이 호기심이나 흥미, 집단주의에 집착하면 사건의 본질은 왜곡되기 쉽다. 아프간전쟁 당시 미군은 CNN 등의 TV 뉴스를 통해 미 육군 레인저스(Rangers)가 아프가니스탄 칸다하르 남서쪽 95㎞ 지점의 공군기지에 낙하산으로 침투하는 장면을 생생하게 공개했다. TV 화면에는 낟알 크기의 초록점으로 빛나는 특공 대원들과 파도처럼 움직이는 낙하산들이 가득했다.

미국 시청자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던 이 낙하산 침투는 TV 방송용 연출 작전이었음이 나중에 밝혀졌다. 미 육군 패스파인더(Pathfinder) 팀이 레인저스에 앞서 미리 탈레반의 공군기지에 침투한 후 탈레반군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다음 레인저스 대원들을 투입시키면서 야간 투시장비를 이용해 낙하장면을 촬영했던 것이다. 한마디로 미군은 영상 미디어로 가슴 뭉클한 공중 강습 장면을 연출해 미국민들의 집단주의적인 애국심을 자극하려 했던 것이다. 이는 영화 <왝더독>에서 보여준 전쟁 장면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영상을 통한 세계에는 ‘정보 왜곡’의 개연성이 숨어 있다. TV에서 본 장면은 아무리 현실감이 있다고 하더라도 한 단계 건너서 보는 ‘2차 세계’이지, 결코 ‘1차 세계’는 아닌 까닭에서다. 이는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인 존 F 케네디 상원의원과 공화당 후보인 리처드 닉슨 부통령이 1960년 9월26일 미 역사상 처음으로 벌인 TV 토론에서 외모의 ‘포장’에 성공한 케네디가 승리하면서 일찌감치 증명됐다. 당시 라디오를 청취한 유권자들은 닉슨이 승리했다고 여겼다.

어찌됐든 현대 사회에서 영상매체는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데 유용한 도구가 됐다. 경찰이 폐쇄회로(CC)TV에 찍힌 유대균씨와 박씨의 검거 모습을 국민의 알 권리 차원이라는 이유로 공개했다 하더라도 이는 세월호 사건의 왝더독 현상에 기여한 것은 분명한 듯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TV 화면에서는 경찰견이 사망한 유 전 회장의 흔적을 찾는 모습을 비추고 있다.


박성진 디지털뉴스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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