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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의 실력이 없다는 것이 첫째 비난이요, 사회의 맑은 지성이나 양심이 될 대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 열과 성이 모자란다는 것이 둘째 비난이요, 자기 학문에 뜨거운 정열을 기울여서 공부하지 않는다는 것이 셋째 비난이다.”

인사청문회 직후 조·중·동이 일제히 사설에서 임명 철회를 요구했던 교육부 장관 후보에 대한 논평일까? 아니다. 교수 일반에 대한 비판이다. 그것도 60년 전인 1955년에 잡지 ‘사상계’에 실린 주장이다. 교육부 장관 후보 파동으로 부조리한 교수 사회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났건만, 그걸로 끝이다. 교수 사회는 고요하기만 하다. 반성과 성찰이 없다. 두 세대가 흘렀건만, 교수 사회는 고여 있는 물과 같다. 고인 물은 썩는 법이다.

교수 사회 혁신의 바람은 늘 민주화 운동이 만개할 때 밖으로부터 불어왔다. 어용교수란 말을 기억하는가? 곡학아세를 일삼으며 권력바라기로 살아가는 교수를 가리키던 말이었다. 그들은 권력을 기웃거리는 데 열정을 쏟느라 교수 본연의 사명인 연구와 교육을 홀대하여 학생들로부터 지탄받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강의 시간에 가르침은 없고 권력과의 유착 관계를 자랑하더니만 문교부 장관에 이어 국무총리에 올라섰다가 학생들에게 달걀과 밀가루 세례를 받았던 교수에 대한 기억이 아직도 또렷하다.

시국선언 후 행진하는 경희대 교수진들 (출처 : 경향DB)

민주화의 흐름 속에 교수 사회 혁신을 요구한 주체는 사회와 학생이었고, 그들이 앞세운 요구가 바로 어용교수의 척결이었다. 4·19혁명 직후 분출한 대학 민주화 운동 역시 제일성으로 이승만 정부와 밀월관계에 있던 어용교수의 축출을 요구했다. 서울상대생들은 ‘어용교수는 물러나라’며 동맹휴업을 불사했고, 경북의대생은 집단자퇴식을 치렀다. 그들은 ‘학자로서의 정정당당한 기풍과 소신으로 대학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를 지키며 정치와 관권으로부터 간섭받지 않는 독립적인 대학을 만들고자 하는 교수’를 원했다. 대학의 자율성 확보가 대학 민주화의 출발점인데, 어용교수가 절대적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얘기다.

4·19혁명이 촉발한 대학 민주화의 바람을 가로막은 건 5·16 쿠데타였다. 군사정부는 들어서자마자 대학 개혁의 칼을 들이대는 듯했으나, 1년 만에 백지화했다. 그러고는 직접 나서 교수의 어용화에 공을 들였다. 덕분에 어용교수의 행태가 이전과 달라졌다고 한다. 이승만 정부 시절엔 어용교수라도 권력의 간택을 되도록 숨기려 했다. 반면에 군사 정부에선 그게 자랑거리였다. 민정이양으로 박정희 정부가 들어선 후에는 긴 독재의 세월 동안 정계와 행정부에 입성했다가 밀려나면 뻔뻔하게 대학으로 돌아오는 어용교수가 늘어갔다. 그리고 1980년 민주화의 봄은 어김없이 어용교수의 축출을 요구하는 대학 민주화에 불을 댕겼다. 학생들이 관직을 얻어 떠난 어용교수가 언제라도 돌아오려고 비워 둔 연구실을 폐쇄하는 퍼포먼스는 1980년대 내내 반복되었다.

민주화의 진전과 함께 어느덧 어용교수란 말은 사라졌다. 하지만 이번 교육부 장관 후보 파동에서 똑똑히 보았듯이, 연구와 교육은 뒷전인 채 권력과 밀착하여 부나방처럼 살아가는 어용교수는 분명 존재한다. 교수 사회 스스로 대학 자율화의 걸림돌인 어용교수를 걸러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교수 사회는 교수 개인의 어용화를 너그러이 용인하는 집단적 어용화의 최면에 걸려 있는지도 모른다. 독재 권력에 빌붙으면 어용이지만, 민주화 이후 권력에 다가가는 건 어용이 아니라고 우긴들, 그들의 권력 탐닉이 대학 자율화와 대학 민주화를 가로막고 있다는 진실이 가려지진 않는다. 해방 이후 교수 사회 스스로 대학 혁신의 주체로 나서 본 적이 없다는 자조적인 한탄은 씁쓸하지만 사실에 가깝다. 그래서 오늘의 교수 사회는 암울하다. 권력이 일방적인 대학 구조 조정안을 내놓았으나, 교수 사회는 무기력하게 끌려가기만 한다. 교육부 장관 후보가 대학교수로서 자신이 쌓은 ‘적폐’를 관행이라 버틸 때, ‘나는 교육부 장관 할 생각이 없다’며 소나기를 피할 생각만 할 뿐이다. 교수 사회는 죽었다. 정작 사라진 것은 어용교수가 아니라, 대학의 자율성이다.


김정인 | 춘천교대 교수·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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