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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본청 앞 농성장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다. 28일 새벽에도 두 명의 어머니가 탈진하셔서 병원으로 실려갔다. 도무지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상태이다. 단식만이 아니다. 가족분들은 안산에서 서울로 도보행진도 하고, 일부 가족분들은 십자가를 메고 진도 팽목항으로 도보순례를 떠나기도 하셨다.

죄인도 아닌 세월호 유가족분들이 이렇게 벌 받는 이유는 무엇인가? 보상과 배상을 더 받기 위해서? 자기 자식을 대학특례입학시키려고? 아니면 이미 돌아올 수 없게 된 사랑하는 자식을 의사자로 만들기 위해서? 아니다. 분명히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가족들은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철저히 밝힐 수 있는 특별법을 제정하자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하고, 이 사회에 만연해 있는 부정과 부패를 찾아내서 도려내 안전한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다.

그런데 협상장에 앉아 있는 새누리당은 무엇을 보호하려고 하는지 조금도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더 나아가 세월호 참사를 단순한 교통사고로 치부하고 있다. 그리고 ‘특별위원회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주면 사법체계가 흔들린다’는, 겉으로 보면 세련되어 보이는 마타도어에서부터 유가족들의 안에는 들어 있지도 않은 ‘의사상자 지정’, ‘대학특례입학’, ‘막대한 배·보상’ 등을 내용으로 하는 무수한 흑색선전이 쏟아지고 있다. 한편, 지금 대부분의 언론은 유병언·유대균만 다루고 있다. 세월호 참사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를 제대로 밝히지도 못하면서 말이다. 심지어 세월호 증개축에 국정원이 관여돼 있다는 것을 유가족들이 폭로하자 유대균이 검거되는 기막힌 우연도 벌어지고 있다. 당연하게도 국정원이 세월호 증개축, 운영과 깊숙이 관련돼 있을 수 있다는 의혹과 이런 의혹들을 밝히기 위해서는 특별법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는 밀려나고 있다. 이렇게 협상장, 거리와 인터넷 그리고 보수 언론의 강력한 저항 때문에 당연해 보이는 특별법 제정 요구는 지금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새누리당 주호영 정책위 의장,'세월호는 교통사고' 발언 (출처 : 경향DB)

이 거대한 저항은 우리 사회를 세월호 참사 이전과 동일한 상태에 놓아두길 원한다. 감시되지 않는, 아니 감시할 수 없는 부정부패, 관피아, 권력과 한통속이 된 보수언론과 수사기관, 사람의 생명을 담보로 한 극단적 돈벌이 등 자신들의 안락한 서식지를 뺏기고 싶지 않은 것이다.

특별법이 형사법 체계를 흔든다는 마타도어가 분명히 그런 점을 보여준다. 유가족뿐만 아니라 국민들도 지금의 수사기관들을 신뢰하지 못한다. 최근 모 언론사가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10명 중 7명이 정부를 믿지 못하겠다고 한 것과 같은 이유다. 국민들의 바람대로 기존의 수사기관과 달리 정치적으로 매우 독립적인 수사기관이 등장하게 되면 기존 수사기관들은 이 땅에 설 수가 없게 될 것이다. 서식지를 뺏기는 것이다. 그래서 법리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형사법체계를 흔든다는 근거 없는 주장을 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국민들은 이제 분명히 안다. 있어서는 안되는 이 검은 서식지가 너무나 커져 있고 이 검은 서식지에 너무 많은 검은 짐승들이 살고 있다는 것을. 더 나아가 이 검은 서식지를 그대로 남겨두면 또 다른 사람들이 검은 짐승들의 먹이가 될 수밖에 없으며 이 사회는 발전할 수도 없다는 것을.

법률이라고 하는 것은 보통 분쟁이 어느 정도 정리되면서 그 산물로 나온다. 그러나 어느 시기에는 법률안 자체가 싸움의 목적이 되는 경우도 있다. 어느 정도 선에 법을 갖다 놓느냐는 것이 승패를 가름하는 것이다. 지금 검은 짐승들과 특별법을 놓고 벌이는 싸움이 바로 그렇다. 단순히 법리를 놓고 다투는 것이 아니라 이 땅 위에서 살 수 있느냐 없느냐를 놓고 벌이는 싸움인 것이다.

우리에게 지금 기회가 왔다. 안전한 사회에서 안전하게 아이들을 키울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다. 이 기회를 놓치는 것은 숨진 아이들에게도 미안한 일이자 우리 자신에게도 안타까운 일이 될 것이다. 특별법 제정 과정을 두 눈 뜨고 봐야 한다.


박주민 |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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