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일반 칼럼

[정동에서] 미생의 눈물

opinionX 2014. 12. 17. 21:00

몇해 전 방영된 MBC 다큐멘터리 <남극의 눈물>에는 황제펭귄의 ‘허들링(Huddling)’ 장면이 나온다. 남극의 겨울은 혹독하다. 영하 50도를 넘나드는 한파와 시속 100㎞가량의 눈폭풍이 몰아치기 일쑤다. 두 발로 알을 품은 황제펭귄들은 무리를 이뤄 서로의 체온을 주고받으며 바깥쪽에서 안쪽으로,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2~3시간 간격으로 이동하는 ‘허들링’으로 생존을 유지한다. 무리 안쪽은 바깥쪽보다 10도가량 높다. 그럼에도 ‘나만 살겠다’고 안쪽을 고집하는 황제펭귄은 없다. 바깥쪽에서 눈폭풍을 온몸으로 막아낸 황제펭귄들에게 안쪽 자리를 망설임없이 내준다. 공생을 위한 눈물겨운 몸부림이자 배려와 양보의 미덕이다. 황제펭귄들은 그렇게 두 달을 버티며 남극의 봄을 맞는다.

일본 파나소닉의 창업주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바람이 강하게 불 때야말로 연 날리기에 가장 좋은 때다”라는 말을 남겼다. 실제로 그는 모진 바람을 피하지 않고 맞섰다. ‘경영의 신(神)’이란 별칭이 그냥 붙은 게 아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화로가게 점원으로 일한 그는 1910년 오사카전등회사 수습사원으로 입사했다. 22살 때 검사원으로 승진했지만 그만뒀다. 허약한 몸으로 잦은 야근을 견뎌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마쓰시타는 24살 때 오사카시 오비라키 1번가에 2층 목조가옥을 빌려 ‘마쓰시타 전기기구제작소’를 차렸다. 직원은 아내와 처남이 전부였다.

열정적으로 일해 직원수를 늘려가던 마쓰시타도 1929년 대공황의 삭풍을 피해가지 못했다. 창고에는 재고가 넘쳤고, 자금난은 심화됐다. 주변에선 “긴축경영과 감원만이 살 길”이라고 조언했다. 하지만 그는 직원 임금을 한 푼도 깎지 않았다. 정리해고도 하지 않았다. 대신 직원들을 반나절만 근무토록 했다. 매주 이틀을 휴무로 정해 생산량을 절반으로 줄였다. 그러자 직원들은 오전에는 제품 생산에 집중하고, 오후엔 자발적으로 판매에 나섰다. 회사는 두 달 만에 정상화됐고, 경쟁업체를 따돌릴 수 있었다.

국내 기업들은 경영난에 직면하면 어떠할까. 혹한과 눈폭풍을 ‘허들링’으로 견뎌내는 황제펭귄을 닮았을까. 마쓰시타처럼 직원들의 ‘바람막이’가 돼주며 위기를 기회로 바꿀까. 안타깝게도 현실은 정반대다. 국내 기업 경영진은 바람이 불면 먼저 몸을 숨긴다. 모진 바람을 맞는 것은 직원들의 몫이다. 영화 <카트>가 묘사한 대형마트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그랬다. 대형마트 경영진은 경영난을 감원으로 해결하려 했다. 대형마트 점장은 “직원도 마음대로 못 자르면 그게 회사야?”라고 소리친다. 점장은 ‘노조’는 불순하고, ‘파업’은 나쁜 짓이며, ‘비정규직’은 언제든 해고할 수 있다고 여긴다.

드라마 <미생>에는 계약직이란 이유로, 여성이란 이유로, 사내 정치구도에 반한다는 이유로 뒷전으로 밀려나는 ‘미생’들의 애환이 그려진다. 회사는 나무에 가까스로 매달려 있는 마른 잎새와도 같은 ‘미생’들을 떨궈내려 한다. 계약직 사원 장그래의 “시련은 셀프”라는 독백은 그런 현실의 반영이다. 드라마 속의 한 퇴사자는 “회사는 전쟁터지만 밖은 지옥”이란 비감 어린 하소연을 한다. 지옥보다는 전쟁터가 낫다는 것을 알기에 ‘미생’들은 버티고, 견뎌내야 한다. 그래야 ‘바둑판 위의 죽은 돌’과 같은 존재가 되지 않는다.

드라마 미생 속 인물들은 '죽은 돌이 되지 않기 위해' 계속해서 발버둥친다. (출처 : 경향DB)


‘울트라 슈퍼갑’인 조현아 전 부사장에게 땅콩을 봉지째 건넨 대한항공 사무장과 승무원이 인격모독을 넘어 ‘하인 취급’을 당하고도 즉각 피해사실을 입 밖에 내지 못했던 까닭은 간단하다. “감히 오너의 딸인 그분의 말을 어길 수는 없었다”는 사무장의 말 속에는 멸시와 모욕을 견뎌내야만 하는 ‘미생’들의 서글픈 ‘생존논리’가 배태돼 있다. 그럼에도 대한항공은 ‘조현아 지키기’에만 골몰했다. 사무장에겐 거짓 증언을 회유하고, 병가신청도 뒤늦게 받아줬다. 대한항공이 발표한 사과문의 내용도 모든 책임을 직원들에게 떠넘긴 ‘직원사살문’과 다를 바 없었다.

박현정 대표에게 막말과 욕설을 듣고 성희롱까지 당한 서울시향 사무직 직원들의 처지도 마찬가지다. 사무직 직원들은 정명훈 예술감독의 지적처럼 ‘용납할 수 없는 인권유린’을 당하고도 호소문 형식을 빌려 뒤늦게 피해사실을 알렸다. 그들에게 박 대표는 6, 7년차가 돼도 엑셀을 다루지 못하고, 연주곡명조차 기록해놓지 않았다고 다그치는 ‘겁나는 갑’일 뿐이다. 세밑, 겨울바람이 차다. 찬 겨울바람을 맞으며 이 땅의 수많은 ‘미생’들은 또다시 허망한 꿈을 꾼다. 언젠가는 ‘봄바람’이 불 것이라는…. 그 꿈이 현실이 되길 바라는 것조차 허망한 것일까.


박구재 | 기획·문화에디터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