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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갖 악조건 속에서 때가 되면
기어코 꽃을 피우고 또 피우는
민초 혹은 민중의 야생화들
돌이켜보면 우리 모두 이렇게 살아왔다”


섬진강에 봄비가 내리자 북상 중인 매화며 산수유 꽃들이 한결 산뜻해졌다. 아직은 봄꽃의 경계인 지리산의 남과 북, 해발 700m를 경계로 비의 냄새와 빛깔도 다르다. 잽싸게 우비를 챙겨 입고 카메라를 챙긴 뒤 매화나무를 찾아갔다. 몰아치는 빗줄기와 매화를 찍었다. 셔터 속도 50분의 1초 이하로 찍으니 꽃송이에 내리는 빗줄기가 사선을 그으며 길게 찍혔다.

누군가 ‘사진은 빛의 예술’이라는 멋진 말을 했다. 절묘한 표현이지만 곰곰 생각해보니 사진은 ‘시간의 예술’이다. 사실 빛이 곧 시간이기 때문이다. 눈 깜빡하는 것보다 빠른 8000분의 1초로 담을 수도 있고, 장노출로 30초 혹은 그 이상의 시간으로 빛을 잘라낼 수도 있다. 천안의 이정록 시인은 ‘달은 윙크 하는데 한 달이 걸린다’고 했다. 정말 대단한 장노출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우리의 기억은 이보다 더해 첫사랑처럼 30년이 지나도 더 생생해질 수 있는 것이다.

지난 3년 동안 나는 비바람 불고 먹구름이 밀려오면 산에 올랐다. 하산이 아니라 입산. 밤낮 가리지 않고 산정의 먹구름과 심심계곡의 물안개를 기다리며 입산 초심의 자세를 가다듬었다. 어느새 지리산살이 18년차, 그동안 섬이 된 한반도 남쪽만 3만리를 걸어서 순례하고, 모터사이클을 타고 100만㎞ 이상을 달렸다. 5대강을 다 걷고, 2001년부터 지리산 아랫도리 850리 둘레길을 네 바퀴 이상 걸었다. 그래도 못 가본 곳이 더 많고, 다시 가봐야 할 곳들 또한 일생의 숙제처럼 남아 있다. 때로는 훨훨 날고 싶지만 발바닥에 실핏줄 같은 뿌리를 살짝 내리고, 그렇다고 스스로를 가두는 텃새가 아니라 한반도 예저기를 기웃거리는 무정처의 철새가 되고 싶었다.

이 세상에 살아도 날마다 꿈만 같으니 나의 주된 관심사는 이름하여 몽유운무화(夢遊雲霧花)를 찍는 것이었다. 순례 후유증으로 결핵성 늑막염을 앓은 뒤부터 지난 3년 동안 모터사이클을 타고 15만㎞를 돌아다니며 전국의 멸종위기 야생화들을 찾아내 기록했다. 일단 증명사진을 찍었다. 그러다보니 조금 다른 관점의 사진을 찍고 싶었다. 그 하나의 주제로 설정한 것이 바로 짙은 운무 속에 문득 얼굴을 내미는 야생화들이었다.


장마철 산행에 깊이 빠지면서 자주 ‘청학동 전설’이나 ‘무릉도원’ 혹은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를 직접 목격했다. 안평대군이 안견에게 그리게 했다는 몽유도원도는 말 그대로 꿈속의 일이다. 하지만 나는 지리산 형제봉 등의 구름 속에서 이를 직접 목격했다. 먹구름이나 지독한 산안개 속에서 얼굴을 반쯤 가린, 아니 얼굴을 반쯤 내민 야생화들을 만나는 것은 실로 꿈결 같은 일이었다.

산정의 구름과 안개를 자세히 보면 기류에 따라 블랙홀처럼 빨려 들어가는 곳이 있다. 구름 속에 갇혀도 이중삼중의 결이 보이고, 새벽 안개도 그 흐름과 농도가 수시로 바뀐다. 그 찰나에 야생화가 얼굴을 드러내기도 하고 완벽하게 가려지기도 한다. ‘구름 속의 산책’이 아니라 아예 푹 빠져서 헤어나지 못할 때까지, 이 세상에서 완벽하게 지워질 때까지 기다리고 기다렸다. 우비를 입고 카메라를 품고 있다가 얼굴을 슬쩍슬쩍 내미는 야생화들을 마구 찍었다. 숨막히는 통정, 오래 꿈꾸던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숱한 시행착오와 끈질긴 집중력으로 ‘몽유운무화’를 하나씩 만날 수 있었다.

몽환적인 사진 한 장을 건지기 위해 한 송이 꽃 앞에서 1주일 동안 야영하기도 했다. 우중의 산정에 쪼그려 앉아 9시간을 기다린 적도 있다. 970장 정도를 찍어 겨우 단 한 장을 건지기도 했다. 우비를 입어도 속부터 후줄근하게 젖어오고, 온몸에는 이끼와 버섯들이 피어나는 듯했다. 밤낮 가리지 않고 비포장 산길을 오르다 구르기도 하고, 벼랑에서 미끄러져 갈비뼈에 금이 가기도 했다.

두려워서, 두렵다 못해 먹구름을 피하며 살다보면 오히려 난데없이, 피할 겨를도 없이 폭우를 맞게 된다. 돌이켜보니 나의 지난 생이 그러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발상의 전환을 하면서부터 차라리 ‘먹구름 우산’ 하나를 장만하기로 한 것이다. 역발상을 해보면 먹구름은 오히려 이 세상에서 제일 큰 우산이 아닌가. 한 번 젖은 나무는 더 이상 젖지 않는 법. 비와 먹구름, 산안개에 깊이 빠지고보니 날마다 폭우의 산정이 그리워졌다.

실로 오랫동안 짙은 운무에 빠져 살다보니 내 얼굴을 드러낼 때가 언제인지, 내 마음을 가려야 할 때가 언제인지 조금 알 것도 같다. 그리하여 지리산의 촌놈 시인이 어쩌다 아름다운 여수에서 ‘몽유운무화’라는 생애 첫 개인 사진전까지 열게 됐다(해안통갤러리, 3월24일~4월13일). 세상을 잠시 벗어나 산속을 기어다니며 건강도 되찾았다. 그리하여 한동안 더 운무 속에서 ‘즐겁게’ 궁리하며, ‘신명나게’ 전전긍긍하는 날들이 이어질 것이다.

온갖 악조건 속에서도 때가 되면 기어코 꽃을 피우는 야생화들. 제아무리 짙은 운무가 드리워도 자생적인 민초 혹은 민중의 야생화는 피고 또 피었다. 돌이켜보면 우리 모두 이렇게 살아왔다. 바람과 비와 눈, 구름과 안개 속에서도 한번쯤은 반드시 환한 얼굴을 내밀었다. 그리하여 풍설우운무(風雪雨雲霧) 속에 피는 꽃들에게 깊이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손을 내밀면 손끝이 보이지 않는 절대고독의 운무. 그 속에서 나는 비로소 나인 것이다. 너는 비로소 온전한 존재의 너인 것이다. 깊은 밤 홀로 깨어 울더라도 바로 그때 누군가 깊은 눈빛으로 봐준다면, 누구나 한 송이 눈물겨운 몽유운무화가 아닌가. 섬진강 봄꽃들이 막 지리산을 넘어가고 있다.


이원규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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