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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법 개정안은 계륵이 되어있다. 위법·부당한 시행령이나 시행규칙 등에 대해 국회가 수정·변경을 요구할 수 있게 한 국회법 개정안이 대통령의 반발에 부딪혀 꼼짝 못 하는 신세가 되었다.

정부에 송부하려니 대통령의 거부권이 두렵고, 그렇다고 211명에 달하는 의원들의 찬성으로 가결된 법률안을 그냥 방치하려니 입법절차의 준엄함이 거슬린다. 이 와중에 우리의 법치는 급전직하의 운명에 처해진다.

법치주의의 원칙상 행정은 국회가 정한 법률에 따라야 한다. 하지만, 그동안의 관행은 이를 정면에서 거역했다. 법률안 제출권을 가진 행정부가 입법의 과정을 주도하였고, 대통령이나 각부 장관들은 법률의 범위를 넘어서는 시행령이나 시행규칙을 만들어 자기의 권력을 확장해 왔다. 행정을 통제하여야 할 법률이 되레 행정기관에 무한한 권력만 백지 위임하는 파행이 연발하였고 그 결과 권력분립은커녕 제왕적 대통령제가 구축되고 행정만능이라는 반법치적 현상이 굳어져 왔다.

이 개정안은 이런 폐습에 대한 반성에 터 잡은 것이다. 시행령·시행규칙에 의한 행정을 법률에 의한 행정으로 원위치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국회에 수정요구권이라는 조그마한 권한 하나를 마련한 것이다. 혹은 제왕적 대통령제를 교정해 나가는 좁은 길 하나를 열어둔 것이다. 그러기에 이 개정안에 대한 위헌론은 아주 무용한 패싸움에 지나지 않는다. 권력분립과 법치주의라는 헌법명령을 제대로 구현하여야 한다는 시대적 과제에 비하면 이 위헌시비의 세목들은 너무도 하찮거나 아예 본말이 전도된 채로 제기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5월 29일 여야 합의로 국회법 제98조의 제3항이 개정됐다. (출처 : 경향DB)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대통령의 반발에 한없이 위축되는 국회의 모습이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없애야 한다며 분권형 개헌론까지 서슴지 않고 제기하던 국회의원들이 바로 그 대통령의 일갈 한 마디에 좌고우면, 우왕좌왕할 뿐이다.

여기에 국회의장은 한술 더 뜬다. 작년 11월, 국회의장은 행정입법에 대한 검토 의무와 과잉 행정입법에 대한 시정요구권이 절실함을 공언하였다. 그러던 국회의장이 지금은 중재안 운운하며 수정 ‘요구’권을 ‘요청’권으로 완화시키자고 나선다. 국회와 행정부의 관계라는 점에서 이 두 단어의 차이는 엄청나다. 입법권은 국회의 고유한 권한이다. 만일 행정부가 이를 침해한다면 의당히 국회는 행정부에 시정을 요구할 수 있어야 하며 행정부는 그 시정요구를 성실히 처리할 의무를 져야 한다. 반면 ‘요청’은 그 의무를 희석시키고 행정부에 커다란 재량의 여지를 부여한다. 결국 이 ‘중재안’은 법률의 지배를 우롱해 왔던 지금까지의 역사를 또다시 반복하자는 제안에 다름 아니게 된다.

게다가 이 개정안의 ‘개정’을 위해서는 번안의 절차를 밟아야 한다. 그러나 번안절차는 이미 통과된 의안에 중대한 흠이 있을 때에나 사용하는 아주 이례적인 것이다.(국회의안정보시스템에는 지금까지 본회의에서 법률안을 번안한 사례가 단 한 건뿐이다.) 대통령의 반대와 같은 정치적 이유는 번안의 사유가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청’이라는 말을 넣기 위해 번안절차를 가동하는 것은 국회 스스로가 수정 ‘요구’권이 위법한 것임을 자인하며 행정이 국회 바깥에 있는 성역임을 공인하는 자가당착의 조치가 되어버리고 만다.

대의제 체제에서 국회가 허약해지면 민주주의 자체가 허약해진다. 국회법 개정안은 이에 대한 반성의 결과이다. 바로 그 때문에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또한 두려워할 일이 아니다. 그 과정에서 국회와 대통령은 각각 국민에게 자신의 행동이 정당함을 설명하고 국민은 그에 대해 스스로의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쩌면 이를 통해 대통령과 당당히 맞서며 그의 행정부를 제어하고 나서는 국회의 존재 또한 국민에게 각인시킬 수도 있게 될지도 모른다.

이 점에서 야당의 역할은 중차대하다. 아쉽게도 보도에 의하면 여당은 이미 말을 바꾸기로 작정한 듯이 보인다. 이제 공은 야당에 넘어간 형국이다. 섣불리 번안에 동의할 일이 아니라,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정면으로 대응하면서 그의 제왕적 권력의지를 차단해 내는 데 야당이 앞장서야 한다는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국회법 개정안은 계륵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국회가 제자리를 찾고 법치주의와 권력분립의 원칙이 헌법의 틀 안에서 제기능을 할 수 있도록 만드는 교두보이자 전진기지로 삼아야 하는 귀한 디딤돌이다. 지금은 국회가 물러설 때가 아니라 당당히 자기 목소리를 낼 때이다. 시인 김수영의 말처럼, 묵은 사랑이 벗겨질 때에야 붉은 파밭의 푸른 새싹이 보이는 법이다.


한상희 |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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