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지난주, 두 개의 사진이 화제였다. 겉보기에 별반 관련성이 없어 보이는 두 사진은 사실 젠더질서로 잘 봉합되어 있다. 하나는 11월4일 청와대 인스타그램이 공개한 것이다. 청와대 처마 밑에 감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고, 그 아래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가 신문을 읽고 있다. 설명에 따르면 하나하나 깎고 일일이 꿰어 관저 처마 밑에 널어두었다고 한다. 트럼프 방한 시기에 맞춰 북한과 미국, 일본, 중국 사이에 끼여 위태로운 한반도 정세 속에 인간안보와 평화의 의미를 재고할 요량이었을까. 소소한 삶의 정서가 넘치는 사람 사는 공간, 청와대를 보여줌으로써 평화를 향한 대한민국 시민들의 간절한 염원을 전달하려 했을까. 그렇다면 의도는 선하다 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한국을 방한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내외와 7일 오후 청와대 접견실에서 기념촬영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진은 젠더 위계질서뿐 아니라 여성들 간 분리라는 가부장적 전략을 무의식적으로 담고 있다는 점에서 시대착오적이다. ‘가정 안의 천사’는 군사패권주의로 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동북아 국제질서와 묘하게 분리되고, 풍전등화에 놓인 국가를 위해 ‘열 일하는’ 바깥양반 덕분에 누릴 수 있는 안방마님의 여유로움마저 풍긴다. 이로써 공적영역의 중요한 일은 남성의 몫이요, 사적영역의 돌봄은 여성의 역할이라는 고정관념은 케케묵은 이념이 아니라 현실이 된다. ‘내조의 여왕’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때 여성 스스로도 가장 행복하다는 ‘여성성의 신화’는 다시 공고화된다. ‘보통’ 여성들의 힘겨운 일상과 괴리된 이 평화로운 장면은 각종 성차별의 현실을 밀어내고 비가시화하는 본의 아닌 효과마저 발휘한다.

청와대 바깥의 대한민국 여성들은 실제 지난 몇 주 동안에도 취업과 인사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당하며, 각종 위협과 폭력에 힘겨워하고, 이중노동에 시달리면서, OECD 국가 중 예외에 가까울 정도로 높은 여성노인 빈곤율과 전 세계 118위라는 성격차 지수에 절망했다. 실존을 위협하는 사건들에 맞서 거리에 나섰고, 낙태죄 폐지를 외쳤으며, 생리대 유해물질에 분노하고, 성폭력을 적절히 처벌하라고 절규했다.

‘청와대 곶감 말리기 사진’은 ‘여성문제’에 대해 소신 있는 발언을 한 번도 하지 않는 대통령 부인의 모습과 겹치면서, 이러한 일들이 사소한 것, 부차적인 것, 혹은 시끄럽고 드센 여자들의 무리한 요구로 치부될 수 있는 절묘한 알리바이까지 제공한다.

다른 하나는 11월7일, 청와대에서 열린 미국 대통령 부부 초청 공식만찬장의 한 장면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일본군 성노예제 생존자인 이용수 할머니를 초청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안내하고 두 사람이 포옹하는 사진이다. 피해자들에겐 10억엔(약 100억원)으로 면피하려 들더니, 트럼프의 딸에겐 ‘제국의 공주’ 대접도 모자라 여성 기업가 지원기금으로 5000만달러(약 570억원)를 약속한 아베 총리의 위선을 지적하려 했을 것이다.

살아있는 생존자의 존재를 통해 ‘2015 한·일 합의’의 부당함을 호소하려 했을지도 모른다. 미·일 공조관계에 균열을 내고, 역사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한·미·일 삼국 군사동맹은 어렵다는 메시지를 던지려 했다면 성공적 퍼포먼스였다. 일본 정부는 이용수 할머니 초청에 즉각적으로 반발했고, 이에 할머니는 한 방송에 출연해 ‘참견할 바 아니다’라고 응수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진은 포스트식민 젠더질서를 활용해 미국이 져야 할 역사적 책임에 면죄부를 주는 알리바이로 작동한다. 패전국 일본이 어떻게 동북아 냉전체제의 방어벽을 지키는 역할을 맡게 되었으며, 전쟁범죄의 최고 책임자 ‘천황’을 지킬 수 있었는가. 이로 인해 일본군성노예제 피해자들을 비롯한 수많은 피식민 민중들의 고통이 오랜 침묵의 늪에 빠지게 되었다는 사실은 이미 다 알려진 사실 아닌가. 미국이 ‘2015 한·일 합의’의 막후 배경이라는 의혹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게다가 트럼프 대통령이 에어 포스 원을 타고 내린 오산 공군기지가 어떤 곳인가. 기지촌으로 악명 높았던 송탄이다.

그럼에도 피해자 여성의 몸에 당당히 내린 가해자는 서슴없이 자신들의 병사들을 격려하고, 스스로의 가해자성을 가린 채 다른 서발턴 여성의 구원자로 등극했다. 더 큰 아이러니는 성차별, 인종차별로 악명 높은 골프장에서 일본 총리와 화기애애하게 게임을 즐긴 이에게, 그 남성 때문에 ‘위험’에 빠진 유색여성을 구원하는 백인남성 역할을 맡긴 곳이 대한민국 청와대라는 점이다.

이용수 할머니는 2007년 2월 미국 하원의회 공개 청문회에서 일본의 만행을 용감히 증언했던 당사자다. 어떤 정부도 들어주지 않던 시절부터 다른 생존자들과 한국의 운동단체들과 함께 열심히 말하고 활동해 오신 운동가다. 그러므로 이번 ‘트럼프 포옹’ 이벤트는 자신의 경험을 드러내고, 연대하고, 정체성을 변화시키며 주체적으로 세상을 바꿔온 여성들의 역사를 이미지로 봉쇄하고, 정치적 도구로 활용하려 했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여성의 몸’은 여전히 남성들의 전쟁터다.

<이나영 | 중앙대 교수·사회학>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