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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26일에 문재인 대통령은 개헌안을 발의하고 공고했다. 헌법은 개헌안 공고 후 60일 이내에 국회가 이를 의결하게 하고 있다. 국민투표에 앞서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의 의결을 먼저 거치게 한 것이다. 이번 목요일인 5월24일이 60일째가 된다. 이에 대해 24일까지 개헌안에 대한 국회 의결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이번 개헌안이 자동 폐기되게 된다는 주장이 들린다.

아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해서 개헌안에 대해서는 시한 경과로 인한 자동 폐기라는 것이 있을 수 없다. 우리 헌법 제130조가 개헌안 공고 후 60일 이내의 국회 의결을 의무사항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24일까지 대통령 발의 개헌안은 국회 본회의에 정식 안건으로 상정되어야 하고, 국회의원들은 표결을 통해 찬성이나 반대 의사 표시를 하든가, 아니면 하다 못해 기권 의사 표시라도 해야 한다.

헌법 제128조부터 규정된 헌법개정 절차조항들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이번 대통령 발의 개헌안에 대한 국회 대응의 몇 가지 문제점들을 짚어보자.

첫째, 개헌안 발의 절차다. 헌법은 ‘국회재적의원 과반수’나 ‘대통령’이 개헌안을 발의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선거를 통해 민주적 정당성을 획득한 두 축인 국회와 대통령에게 헌법개정안 발의권을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대통령의 개헌안 발의는 국민의 여론을 수렴한 국민헌법자문특위의 자문안을 참고해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 적법하게 이루어졌다. 헌법이 대통령의 개헌안 발의권을 규정하고 있는 만큼 이러한 적법한 개헌안 발의는 국회에 의해 충분히 존중받을 자격이 있고 또 존중받아야 한다.

둘째, 개헌안 공고 절차다. 헌법은 대통령이 제안된 개헌안을 20일 이상 공고하도록 하고 있다. 국가의 최고법이자 기본법인 헌법이 어떤 이유로, 어떤 내용이 이번에 개정되는지를 국민들에게 충분히 주지시키고 국민들 사이에 개헌안에 대한 공론의 장을 마련하기 위한 단계인 것이다.

셋째, 이 20일 이상의 공고기간을 포함해 공고 후 60일 이내에 개헌안에 대한 국회 의결을 거치게 한 것이 개헌안 의결 절차이다. 국회 의결에 앞서 최장 60일 동안 국민의 자유로운 의견 교환과 토론 및 비판을 통해 국회가 국민 참여를 유도하고 개헌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끌어낸 후, 거기서 드러난 민의를 확인하고 이를 반영해서 그 개헌안에 대한 가부를 엄중하게 결정해야 하는 중요한 단계인 것이다.

그러나 지난 60일 가까운 기간 동안 국회가 개헌안과 관련해 이러한 노력들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국민은 아마 별로 없을 것이다. 추경안이니, 특검 법안이니 하는 당파적 쟁점들로 소모적 정쟁을 일삼느라 60일이 거의 다 흘러갔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기류는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고, 급기야 개헌안에 대한 국회 의결이 24일까지 이루어지지 않아 개헌안이 자동폐기될 것이라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헌법 제130조 제1항은 대통령이 발의했건, 국회가 발의했건 국회가 개헌안이 발의되고 공고된 날로부터 60일 이내에 이를 “의결하여야 한다”고 하고 있지 “의결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지 않다. 즉 공고 후 60일 이내의 의결은 국회의 헌법상 의무인 것이다. 본회의 상정 없이 60일의 기한 마지막 날인 24일이 지나면 개헌안은 자동 폐기되는 것이 아니라, 국회가 헌법상의 의무를 방기한 위헌상태가 시작되는 셈이다. 이것은 어떤 식으로도 변명이 불가능한 국회의 중대한 직무유기일 수밖에 없다.

특히 국회법 제112조 제4항에 의해 개헌안에 대한 국회 의결을 기명투표로 하게 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개헌안에 대한 개별 국회의원들의 의사표시는 이름을 걸고 하는 ‘기명투표’ 방식을 통해 역사적 기록으로 남겨야 할 만큼 헌법적으로 중대한 사안이고, 따라서 국회의원 각자에게는 개헌안 표결이 무엇보다 중요한 헌법상 의무인 셈이다. 더욱이 국회 의결이 없으면 나머지 개헌절차인 국민투표나 대통령의 공포절차로 나아갈 수 없다. 국회의 직무유기가 개헌안에 대한 주권자 국민의 정당한 의사표시권 행사 자체를 가로막는 셈이다.

2014년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과 입법촉구 결정으로 효력을 상실한 국민투표법 제14조 제1항 개정안이 아직 국회에서 처리되지 않아 국회 의결이 있어도 어차피 국민투표에 부칠 수 없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들린다. 헌재가 제시한 법 개정 시한이 2년 반 가까이 지나도록 국회가 국민투표법을 개정하지 않고 있는 것도 직무유기다. 직무유기가 또 다른 직무유기를 정당화하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국회는 개헌안 의결 안건을 이번 24일까지 국회 본회의에 상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위헌 국회’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국회도 헌법 아래에 있다는 진리를 국회 스스로가 되새겨야 할 때다.

<임지봉 |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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