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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17일자 지면기사-

대학 민주화가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가늠하는 민감한 지표라는 생각이 대학 교수만의 자기중심적 주장이라고 의심할 수도 있다. 그러나 촛불항쟁으로 탄생한 새 정부가 반년을 넘긴 오늘, 대학 안에서 벌어지는 민주화 요구와 수구집단 간의 충돌은 대학 민주화가 촛불혁명을 한 단계 더 진전시키는 싸움임을 입증하고 있다.

그동안 수없이 불거졌지만 흐지부지되기 일쑤였던 사학비리 척결 요구는 뜨겁게 타오르고 있다. 사학비리에 관한 언론의 심층보도도 끈질기며, 교육부에 설치된 사학혁신추진단에 제보가 줄을 잇고 있다. 김문기 전 상지대 이사장은 한때 쫓겨났지만 2007년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막무가내 장외투쟁 끝에 개악된 사립학교법의 독소조항인 사학분쟁조정위원회 덕분에 복귀하여 구태를 반복했다.

그러나 구성원들의 기나긴 투쟁이 촛불에 힘입어 다시 대학을 제 궤도에 올려놓고 있다. 수원대 이인수 총장은 2심 유죄 판결 외에도 추가비리가 속속 드러나자 사퇴했다. 그러나 이사회는 징계가 예상되는 총장의 사표는 수리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직 처리함으로써 스스로 불법과 부정의 조역임을 폭로했다. 아직 갈 길이 먼 것이다.

딱히 비리사학이 아니어도 힘센 교수와 직원이 학생, 조교, 비정규직 교직원에게 저질러온 노동 착취와 성범죄 등 ‘갑질’에 대항해 끓어오르는 반발은 더 이상 낡은 체제로 버티기 힘들게 만들고 있다. 대학이 거듭남으로써 연구와 교육의 질이 높아지려면 무엇보다도 교수부터 바뀌어야 한다. 거창한 제도 변화를 주문하는 것이 아니다. 작은 사례를 두 가지만 들어보자.

미국 대학 도서관은 대개 한 주를 마무리하는 금요일 오후부터 운영시간을 줄인다. 일요일도 늦게 문을 열지만 다음날인 월요일부터 수업을 하는 교수와 학생을 위해 밤늦게까지 정상적으로 운영한다.

그러나 국내 대학은 일요일에 도서 대출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제한되거나 심지어 없다. 서울대의 도서관 개관시간은 오후 1시부터 5시이며, 그 이후에 갑자기 갈 일이 생기면 방법이 없다.

여러 해 전 서울대는 일요일 개관시간을 연장했지만 얼마 뒤 (아마도 인력 부족을 구실로) 여론수렴도 없이 다시 줄이고 말았다. 이런 작은 일에서부터 연구와 교육, 학사관리의 수준과 밀도는 격차가 벌어지는 법이다. 국내에서 박사를 딴 나는 학위논문 준비를 위해 30대 초반에 처음 바다 건너 미국 대학 도서관을 경험하며 부러워하지 않을 길이 없었다. 그런데 국내 교수 중 미국 박사가 이처럼 많은데도 왜 지금껏 도서관 주말 운영방식 하나를 개선하지 못할까.

이 대목에서 박사 배출을 미국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가운데 국내 학계의 자주성과 자생력이 드러내는 허약한 체질을 읽는 것은 결코 과민반응이 아닐 듯하다.

또 다른 사례는 지난해 가을 ‘김영란법’을 명분으로 한 교육부의 방침에 따라 학내 논의도 별로 없이 제정된 ‘조기 취업자 출석 및 성적처리 지침’이다. 아직 이수할 학점이 남은 학생이 조기 취업했을 때, 교수에게 개인적으로 부탁하면 불법 청탁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취업기관이 아예 공식적으로 학사과로 취업확인서류를 보내고 다시 학사과는 해당 학과를 거쳐 담당교수에게 통보하게 한 지침이다. 물론 학생의 불출석을 별도 과제 등으로 대체해줄지는 담당교수의 권한으로 남아 있지만, 이 일은 대학의 기본마저 무너졌음을 보여준다.

종강을 코앞에 두고 불가피한 회사 사정으로 출근하는 등 합당한 경우라면 나도 선생으로서 형평에 맞게 배려해왔다. 그러나 공식 지침까지 만들면 학생은 조기 취업에 따른 혜택을 권리처럼 여기게 마련이다. 구직난 탓에 어느 대학이나 조기 취업이 갈수록 엄정한 학사관리를 뒤흔들고 있지만, 이 폐해의 큰 책임은 사실 민간기업보다 정부에 있다.

 행정안전부나 외교부는 과거 재학생이 시험에 합격하면 졸업 때까지 유예기간을 허용했지만 요즘은 유예 없이 곧바로 근무하도록 요구한다. 수업보다는 고시 준비에 몰두하다가 심지어 한두 학기를 편법으로 이수하고 중앙부처 공무원이 된 이들이 학사운영의 원칙을 존중할 리 없고, 조기 취업의 기형적 관행을 없애자고 사회를 설득하기 위해 나설 리는 더더욱 없다.

대학다운 대학을 지키고 가꿀 가장 큰 책임은 교수에게 있다. 정규직 교수가 기득권을 내려놓고 비정규직 교수를 포함한 다양한 대학 구성원의 손을 굳게 잡는 자기혁신의 노력이 앞서야 고등교육의 위기를 조장하는 세력을 극복하고 대학개혁을 이뤄낼 수 있다.

<김명환 서울대 교수·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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