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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권력은 미디어에 넘어갔다. 굵직한 정치 뉴스가 휩쓸어도 한편으로는 시선을 훔칠 수 있는 이슈는 단연 식품이다. 동네 곳곳에 한참 늘어가던 ‘대만 카스텔라’ 점포를 좀 불안하게 보고 있던 차에 사달이 났다. 특정 외식 점포가 늘어나면 ‘상투 끝’이기 때문이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 6000원짜리 ‘육영탕수육’이 그랬고, ‘천원피자’가 그랬다. 착즙 주스와 순댓국 열풍에 이어 요즘엔 핫도그와 고로케가 한참 주가를 올리고 있다. 장기불황 터널에 갇히면 음식에 요구되는 명령은 하나다. 싸고 맛있을 것. 극상의 만족감을 주는 조합은 단연코 당과 지방의 조합이고, 유행을 타는 음식들의 조합이 대개 그렇다. 여기에 유행이어서 먹어보는 것이지 주머니 사정 때문만은 아니라는 느낌까지 얹어주니 묘한 자기 위안도 있다.
아주 커서 ‘대왕 카스텔라’라고도 하고 대만에서 들여온 것이라 하여 ‘대만 카스텔라’라고도 부르는 이 빵은 크기와 맛, 값이 매우 ‘착해서’ 한참 인기를 끌고 있었다. 계란 대란의 파고도 견뎌냈는데 복병을 만났다. 채널A의 <먹거리 X파일>에 딱 걸리고 만 것이다. 카스텔라에 계란과 버터, 우유만 넣는 줄 알았더니 다량의 식용유와 식품첨가물이 들어가고 있더란 익숙한 스토리.
방송사마다 소비자 정보 프로그램은 많지만 채널A의 <먹거리 X파일>은 외식 분야에 한정한 일종의 고발 프로그램이다. 소비자들에게 정확한 음식 정보를 알려주고, 착한 음식을 발굴한다는 순기능을 전면에 배치하지만 기본 틀은 음식에 대한 불신과 공포, 그리고 분노 유발이다. 업체들의 피해도 많고 정보 오류도 많아 논란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2.6% 이상의 안정적인 시청률을 담보하는 개국공신이자 일등공신인 <먹거리 X파일>을 채널A가 포기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한참 주가가 올라가는 음식 콘텐츠는 미디어와 결합해 유명세를 타면 가맹사업을 벌인다. 가맹을 희망하는 사람들은 치고 빠지는 타이밍을 노리며 시장에 진입한다. 유사 시장이 금방 형성되기 때문에 타이밍은 생명이다. 대왕 카스텔라의 타이밍도 그렇게 왔다. 그러나 미디어라는 변수는 그 누구도 설명해 주지 않았다. 한 방에 뜰 수도 있지만 한 방에 훅 갈 수도 있다는 걸 말이다. 3년 전 봄. ‘벌집 아이스크림’이 그렇게 벌집 쑤시듯 왔다가 우리 곁에서 사라졌다.
미디어권력은 이제 변수가 아니다. 인기의 정점에 서는 음식은 모두 미디어에 포획될 각오를 하고 시장에 진입하는 게 현명한 일일 것이다. 이런 사태에 자칭 전문가들도 한마디씩 보탠다. 먹어도 되느냐 마느냐, 합법이냐 불법이냐 하는 전문가 의견의 외피를 쓰지만 담론 차원에서 본다면 결국 안전 아니면 위험이란 틀에 가둘 뿐이다. 이 싸움의 승자는 입길에 오르내려 시청률을 거머쥔 방송사일 뿐이고, 영원한 패자는 상투 끝을 잡고 시장에 진입한 점주들일 뿐이다.
살림 재미에 정점을 찍을 때가 홈베이킹이다. 한때 채식베이킹에 꽂혀 집에 오븐까지 들여서 구워댔다. 하지만 과자를 굽든, 빵을 굽든 유지가 들어가야 한다. 채식베이킹이다 보니 버터와 계란 대신 식물성이라는 이유로 식용유를 들이부어야 했다. 어느 순간 이걸 과연 채식이라 이름 붙일 수 있을까 싶어진 데다 때마침 재미도 시들해졌다. 홈베이킹 경험으로 기름, 설탕 없이는 빵과 과자도 없다는 진리를 깨닫았다. 빵과 과자는 사먹자는 결론을 얻고 우리 집 오븐은 그렇게 멈추었다. 문제는 식용유가 아니라 음식 미디어 자체다.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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