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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수가 대학원생을 시켜 자신의 딸이 중·고등학생일 때부터 숙제를 대신하게 했고, 그 딸이 자라 학부생이 되자 논문까지 대필해서 국제학술지에 발표하게 했다는 보도가 또 나왔다. 딸은 학부 졸업 뒤 서울대 치의학대학원에 진학했다고 한다.(‘끈질긴 K - 교수 딸 논문이 국제학술지에…누가 썼나 추적했더니’, KBS, 2019·2·14) 작년 교육부는 미성년 자녀를 논문 저자 명단에 끼워 넣은 교수들을 전수(?)조사한 바 있지만, 이런 유의 일이 얼마나 허다했을지 짐작조차 어렵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학력주의와 학벌주의가 편만”해 있으며 학벌주의가 “특정 조직이나 집단에서 ‘파워게임’의 양상으로 보편화되고 있”기 때문이겠다. 특정 집단의 파워게임(권력투쟁)이란, 대학 중에서도 소위 명문대, 그리고 정규직이라도 더 큰 보상과 위신을 가져다준다고 생각되는 직업이 따로 있어 이를 위한 치열한 경쟁이 상층 계급에서 벌어지고 있음을 의미할 것이다. 이를테면 의사, 변호사, 교수, 고급 공무원, 교사, 주요 언론사 기자 그리고 대표적 재벌기업의 정규직 등 ‘좋은 직업’을 두고 벌이는 경쟁과 SKY 등을 향한 학벌과 상징투쟁은 중첩·구조화되어 있고, 중·고교에서부터 이미 높아져 있는 벽을 통과한 부류들에 의해 수행되는 경쟁일 뿐 ‘아무나’ 거기 낄 수가 없다.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자녀의 대학 경험과 노동시장 지위에 미치는 영향에 결정적인 것도 소위 ‘인서울’ 등 상층에서의 일일 뿐, 그외의 대학을 가는 데는 큰 상관이 없다는 사실도 실증돼 있다.(박경호 외, ‘교육격차 실태 종합분석’, 한국교육개발원 연구보고 RR 2017-2007) ‘SKY캐슬’을 향한 트랙은 애초에 보통 시민들의 삶 바깥에 있다는 것인데, 그럼에도 학벌·학력의 이중·삼중 차별 구조는 모두를 무한경쟁에 연루시키고 있다.

드라마 스카이캐슬의 한 장면

아마도 권력투쟁화된 학벌·스펙 경쟁은 상위 계층에게도 쉬운 일이 아닐 것이기에 금융권 및 공기업 인사 청탁, 시험지 유출, 학생부 조작, 그리고 미성년 자녀에 대한 스펙 조작 사건이 벌어진다. 이는 자신의 자원을 이용하여 경쟁에서 이기고 ‘좋은 직장’을 (간접) 세습하려 하는 상층 계급 부모들의 반칙이다. 이런 반칙이나 편법은 다양하며, 또 암암리에 허용돼 있다고 봐야겠다.

드라마 <SKY캐슬> 선풍 이후 ‘수시 대 정시’ 논쟁이 다시 불붙고 학종에 대한 시민들의 비판이 이어졌다. 학종이 돈과 정보력이 많은 자들에게 유리하도록 돼 있는 제도인 건 결코 부인하기 어렵다. 어떤 제도를 활용하기 위해 소수의 상위 계층은 엄청난 돈을 쓰고, 반대로 다수의 사람들은 정보와 자원에서 소외되어 있다면 그 제도는 제도로서의 정당성을 잃은 것이다. 따라서 가장 적극적인 방법으로 학종 제도를 고쳐야 한다. 그런데 일부가 주장하는 것처럼 학력고사 시절로 돌아갈 수도 없고 단순히 정시 비중을 확대하는 것만으로 문제가 다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이미 학력 자체가 심각하게 차이나기 때문이다. 초·중학교부터의 다른 출발과 고교 등급화가 굳혀놓은 격차를 한 번의 시험이 극복하지 못한다.

차별의 매트릭스는 대입뿐 아니라 사회 전반을 덮고 있어 깊고 어둡다. 문재인 정부의 모토인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운 나라”는 도대체 가능할까? 기회란 무엇을 위한 기회인가? SKY에 갈 수 있는 기회인가, 특목고에 갈 수 있는 기회인가? 아니면 공무원이 될 수 있는 기회인가? 기회의 단계마다 높이 올려 쳐진 문턱을 생각하면 자유주의자들이 금과옥조로 여기는 기회의 평등이란 이제 허구라고 말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과정’을 통해 개인의 노력으로 바꿀 수 있는 일은 별로 없고 ‘결과’는 처음부터 예상 가능하다. 그래서 국가가 과정이나 결과에의 개입을 시도하지만, ‘역차별’이라는 비난이 쇄도한다. 기득권을 1이라도 가진 자들은 물론 공포와 불안 때문에 서민들도 그렇게 한다. 모두가 ‘죄수의 딜레마’에 빠진 이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 1990년대 말부터 이른바 ‘수월성’이니 ‘경쟁력’이니 하는 이데올로기를 수입해온 교육 이데올로그들과 보수언론이 고교 평준화 등을 폐지시키기 위해 노력했던 게 기억난다.

무엇이 가능할까? 먼저 상층의 특권부터 폐지하고, 가장 소외된 계층이 받는 극심한 차별을 완화하는 일은 우선 실행되어야 하겠다. 대입 제도의 실질적 개혁은 물론 사립학교법 개정, 고교 차별화 폐지, 국공립대학 및 지방대 육성 가운데 하나라도 가능하다면 그게 곧 ‘촛불혁명’의 수행이겠다. 기회의 단계마다 앞 단계까지의 불평등을 보완하는 조치들이 수행되어야 과정의 공정이나 결과의 정의를 말할 수 있겠다. 교육부의 ‘교육신뢰회복 추진단’에 기대를 걸어보고 싶다.

<천정환 성균관대 교수·인문학협동조합 조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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