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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폭력주의 신념에 따라 수년간 예비군 훈련을 거부하다 재판에 넘겨진 20대 남성에게 법원이 무죄를 선고했다. 지난 14일 수원지법은 병역법과 예비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ㄱ씨의 병역거부가 ‘양심에 의한 것’이라며 처벌 예외인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종교가 아닌 다른 이유로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한 첫 판결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지난해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형사처벌해서는 안된다고 판결한 뒤 하급심에서 100여건의 무죄가 나왔으나, 모두 여호와의증인 등 ‘종교적 양심’을 근거로 한 것이었다. 이번 판결은 양심적 병역거부의 범위를 종교에 국한하지 않고 비폭력·평화주의 등 신념에 따른 것으로 확장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2018년 11월 30일 오전 대구시 수성구 만촌동 대구구치소에서 출소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서로를 격려하고 있다. 연합뉴스

ㄱ씨는 어릴 때부터 폭력과 전쟁에 반대하는 신념을 품었고 군 입대도 거부하려 했다. 어머니의 설득으로 입대했으나 신병 훈련 과정에서 ‘총을 쏠 수 없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군 복무가 양심에 반할 뿐 아니라 동료와 국가에 해가 될 수 있음을 깨닫고 후회했다. 제대 후 더 이상 양심을 속이지 않기로 하고 예비군 훈련에 불참했다. 수십회 조사와 재판을 받고, 안정된 직장을 구할 수 없어 일용직 등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재판부는 신념 형성 과정에 대한 진술이 상세하고, 훈련 거부로 받는 불이익이 훈련 참가에 따른 불이익보다 크며, 유죄 판단 시 예비군 훈련을 면할 수 있는 징역형을 선고해달라고 요청한 점 등을 근거로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했다.

헌법 제19조는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고 천명하고 있다. 지난해 대법원은 헌법적 양심의 의미에 대해 “그렇게 행동하지 않고서는 인격적 존재가치가 파멸되고 말 것이라는 강력하고 진지한 마음의 소리로서 절박하고 구체적인 것”이라고 정의했다. 법원은 ㄱ씨에게 있어 ‘집총 거부’가 인격적 존재가치와 직결되는 절박한 내면의 결정이라고 본 것이다. 최근 국방부는 대체복무제와 관련해 논란을 최소화하겠다며 ‘종교적 신앙 등에 따른 병역거부’라는 용어를 사용키로 해 논란을 빚었다. 이 같은 표현은 전쟁 준비에 동참할 수 없다는 평화적 신념, ‘다른 이를 죽이지 않을 권리’를 지키려는 신념, 국가폭력과 군사주의에 반대하는 신념 등 다양한 ‘양심’을 배제하는 것이다. 수원지법의 이번 판결은 헌법적 기본권인 ‘양심의 자유’의 의미를 축소·훼손하는 행정부의 행태에 대한 경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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