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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너무 싫어. 나는 나와 원수로 지내고 싶어!” 한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외친 대사다. 어느 시인은 ‘나의 천적은 바로 나’라는 의미의 시를 쓰기도 했다. 오래전 일이지만, 처음 그 구절을 발견(?)했을 때 나는 깊이 공감했었다. 남들이 나를 괴롭히지 않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끊임없이 스스로를 괴롭히는 존재가 인간이란 것, 그 괴롭힘의 대부분은 불필요한 자책과 자기비하에서 비롯한다는 것을 임상에서 자주 경험해 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경험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나를 포함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런 자기비하나 자책의 감정은 때때로 참기 힘든 괴로움의 근원이 되곤 한다.

사실 우린 누군가가 끊임없이 나를 괜찮은 사람이라고 격려해 주기를 바란다. 설령 내 입에서는 “난 너무 모자란 사람이야”라는 말이 나가더라도 상대는 “아니야, 결코 그렇지 않아. 넌 참 괜찮은 사람이야”라고 말해주기를 내심 바라는 것이다. 하지만 꽃노래도 세 번 이상은 듣기 싫은 것처럼 계속해서 “난 모자란 사람이야” 하는 말에 장단을 맞춰 줄 상대를 찾기란 쉽지 않다. 심한 경우 “아! 쫌! 그럼 모자란 채로 살든가!” 하는 말을 듣지만 않아도 다행이다.

그러므로 남이 나보고 “넌 괜찮은 사람이야”라고 말해주기를 기다리지 말고 스스로 “난 참 괜찮은 사람이야”라고 격려해주는 것이 더 빠르다. 그런데 내가 봐도 안 괜찮은 것 같으니, 그것이 문제다. 앞에서도 천적 이야기를 했지만, 그 정도로 스스로에 대한 평가가 박할 때가 있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다. 물론 그 반대로 남이 보기에는 아닌데 스스로 자신이 최고라는 자만심에 빠진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정신의학적으로 자만심과 열등감은 동의어이기 때문에 그 또한 진심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아니다.

아무튼 스스로를 책망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정신분석적으로 슈퍼에고(superego)가 강하다는 것이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양심, 초자아라고 할 수 있다. 프로이트가 주장한 이론으로 우리의 정신세계에는 우리를 감독하고 감시하는 또 다른 마음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적절하면 균형 잡힌 자기성찰이 가능하므로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열린 사람이 될 수 있다. 단, 지나치면 때로는 강박적인 단계로 진입할 가능성이 높다. 그런 사람들을 상담하다 보면 끝없이 자신에게 ‘너는 무엇 무엇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너는 쓸모없는 인간이다’라는 생각을 주입하고 있다. 더욱이 그 ‘무엇 무엇에 대한 기대치’가 그렇게 높을 수가 없다. 그러니 결국 그처럼 자신이 바라는 이상에 못 미치는 스스로에 대해 불안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한 번의 실수에도 자신을 용서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남들은 괜찮다고 하는데도 자신은 아닌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그런 아이러니도 없다. 싫든 좋든 나는 나와 죽는 날까지 같이 살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럼 어떻게 하면 나는 나를 괜찮은 사람으로 여길 수 있을까?

가장 중요한 요소는 자존감의 회복이다. 자존심은 내가 사는 집이라고 할 수 있다. 집이 튼튼하지 못하면 작은 태풍에도 흔들리는 것처럼, 자존심이 낮으면 사소한 일에도 쉽게 좌절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스스로를 귀하게 여기고 귀한 사람으로 대접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내가 누군가를 귀하게 여기면 우린 그 사람이 성장하기를 바란다. 그런 것처럼 스스로를 괜찮은 사람이라고 지지할 때 우린 쉽게 게으름이나 좌절에 빠지지 않는다. 언젠가 살아오면서 가장 듣고 싶은 이야기가 “당신 잘했다”는 격려와 칭찬의 한마디였다고 하면서 인생 이야기를 들려준 여성이 있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정말 삶이 지난한 시간의 연속이었다. 그는 그 세월 동안 스스로 자신이 나름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없었다면 견디지 못했을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새삼 자신에게 들려주는 “잘했어, 넌 참 괜찮은 사람이야”라는 말의 의미가 더욱 절실하게 와 닿았다. 스스로를 향한 칭찬은 내 마음속의 고래를 춤추게 하는 법이다.

<양창순 정신과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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