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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헌법 제3조는 영토조항이다.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규정한다. 제헌헌법부터 존재하던 조항이다. 초대 국회의 헌법 제정논의 당시에도 삼팔선 이북지역을 영토로 규정할 수는 없다는 반론이 만만치 않았으나 미래의 통일을 위해 한반도 전체를 우리의 영토로 규정하자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어 헌법에 들어오게 된다. 그 후 1987년 현행헌법으로의 개헌 시에 제4조 평화통일조항이 헌법에 들어온다.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는 조항이 그것이다.

노태우 정부 초기인 1990년에 이 평화통일조항에 근거해 국회에서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고 다시 이 법률에 근거해 1년 후인 1991년 12월에 남북합의서가 남북 정부 간에 교환된다. 이 남북합의서는 남북 간의 관계를 통일과정의 ‘잠정적 특수관계’로 보고 북한정권을 ‘국가’는 아니지만 ‘당국’, 즉 일종의 사실상의 ‘정부’로 인정했다. 약 석달 전 9월18일에 열린 제46차 유엔 총회에서는 만장일치 승인에 의해 남한과 북한이 각각 독립된 국가의 자격으로 유엔 회원국이 된 상황이었다. 적어도 국제법적으로는 남북이 각각 국가로서 인정을 받은 셈이다.

이후 일부 헌법학자들은 헌법상의 영토조항과 평화통일조항이 상충관계에 있다고 보면서 개헌을 통한 영토조항 삭제 주장을 제기하였다. 남북 간의 관계 변화와 국제정치의 현실 변화를 반영해 시대에 맞지 않게 된 영토조항을 삭제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러자 또 다른 일부 학자들은 영토조항이 평화통일조항보다 우위에 있다고 보면서 이에 반대했다. 대한민국이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라는 1948년의 유엔 총회 결의를 그 근거로 했다. 헌법재판소는 이에 대해 다소 절충적인 ‘북한정권의 이중적 성격론’을 개진한다. 헌법상의 영토조항을 근거로 보면 북한은 반(反)국가단체이지만 평화통일조항을 근거로 보면 ‘통일을 위한 대화와 협력의 동반자’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 후 다수의 헌법학자들이 두 조항이 상충관계가 아니라 ‘조화적 관계’에 있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휴전선 이북의 북한지역도 우리의 영토이므로 제3조를 북한지역에 대해 우리의 주권적 권력을 실현할 ‘통일의 책무’를 부여한 조항으로 봤다. 그리고 제4조를 그 ‘통일의 성격’이 무력에 의한 통일이 아닌 평화통일이 되어야 함을 밝힌 조항으로 해석했다. 이러한 해석하에서 영토조항과 평화통일조항은 이제 얼마든지 조화적 관계에 있는 조항들로 볼 수 있게 되었으며, 두 조항 모두 궁극적으로는 ‘통일’을 강조한 평화통일조항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

2006년부터 시행된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은 남북합의서의 체결 및 비준, 공포의 절차와 효력 범위 등에 대해 규정하고 있는 법률로서, 평화통일조항으로서의 성격을 띠는 헌법 제3조와 제4조를 근거로 하고 있다. 이 법 제4조는 ‘남북합의서’를 “정부와 북한 당국 간에 문서의 형식으로 체결된 모든 합의”로 정의하면서, 제21조 제1항에서 남북합의서의 체결·비준권이 대통령에게 있음을 규정하고 제3항에서는 “국가나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남북합의서 또는 입법사항에 관한 남북합의서”에 대해 국회에 비준동의권을 부여하여 대통령의 체결·비준권을 견제하게 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3월21일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회 제2차 전체회의에서 “이번 남북정상회담 합의문에는 앞선 두 차례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한 기본사항을 담아 국회 비준 동의를 받도록 준비하라”고 지시했다는 언론보도가 있었다. 이번 27일의 남북정상 간 합의에 대해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의 비준동의를 받게 함으로써, 향후 정권이 바뀌거나 정치상황이 변화하더라도 합의 내용에 법적 구속력을 부여하고, 합의내용이 실효성 있게 계속적으로 이행될 수 있게 하겠다는 대통령의 의지가 읽힌다.

이 대목에서 남북합의서의 성격을 국가 간의 문서에 의한 합의를 의미하는 ‘조약’으로 볼 것인지 아닌지, 북한을 조약 주체로서의 ‘국가’나 혹은 ‘정부’로 인정할지 말지는 중요하지 않게 된다. 헌법 제3조와 제4조에 근거해 만들어진 남북관계발전법에서 정한 요건과 절차에 따라 남북합의서를 체결·비준하면 되는 것이고, 남북합의서에 담길 내용이 국가나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것이거나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입법사항’에 관한 것이면 국회의 비준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최종적인 비준을 하면 되는 것이다. 남북 문제나 평화통일과 같은 큰 국익이 걸린 문제에는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 남북합의서의 비준 동의에 초당적인 협력이 요구되는 이유이다. 국민들이 국회를 주시하고 있다.

<임지봉 |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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