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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공화국엔 부끄러운 사건들이 참으로 다양하게 이어지고 있다. 필리핀 관세당국은 지난 7월21일과 10월20일 한국발 수입 컨테이너 안에서 플라스틱 쓰레기 6500t을 적발하였다. 모두 재활용이 불가능한 것들이었다. 한국이 불법 수출한 폐기물인 이 플라스틱 쓰레기들은 필리핀 남부 민다나오섬에 있는 수입업체 베르데소코의 쓰레기 하치장에 5100t, 나머지 1400t은 미사미스 오리엔탈 터미널에 있는 컨테이너 51개에 분산, 보관되어 있다. 그린피스 서울사무소가 공개한, 필리핀 현지에 쌓여 있는 사진과 영상은 충격 그 자체였다. 한국 상표가 선명한 생활쓰레기가 그야말로 곤죽 상태가 되어 축구장 6배 넓이의 부지에 거대한 산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불과 20m 떨어진 지역에는 민간인들이 살고 있다. 이들의 고통은 어떠할까. 고온다습 기온에 쓰레기 부패까지 겹친 일상은 한폭의 지옥도일 것이다.

바젤협약에 따라 유해물질은 수출하면 안되는데 어떻게 우리나라 쓰레기가 필리핀까지 갈 수 있었을까. 현지 수입업체가 수입해야 가능한 일인데, 외관은 필리핀 업체이나 한국인 3명이 지분 40%를 가진 무늬만 필리핀 업체였다. 이 사람들은 쓰레기를 ‘플라스틱 수출품’이라고 속여 수출했다. 이들이 속임수까지 쓰면서 남의 나라에 쓰레기를 끌고 간 이유가 있다. 한국에서 생활쓰레기를 폐기하려면 t당 15만원이 드는 반면, 필리핀에서는 4만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운송비 3만원을 더해도 국내 비용의 반도 안되기에 이웃나라를 불법으로 쓰레기 매립지로 만든 것이다.

불길한 점은 필리핀 주민들을 분노케 하고 국제적인 망신을 산 이 사건이 이례적인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는 점이다. 필리핀 사건은 그나마 적발됐기 때문에 알려졌을 뿐이다. 한국이 연간 불법 수출하는 폐기물의 양은 약 20만t에 달한다. 그걸 입증이라도 하듯 인천 연수구 송도동에는 방치된 컨테이너들이 널려 있고 생활쓰레기와 산업쓰레기가 뒤섞인 폐기물들이 산처럼 쌓여 있다. 수출하려다 실패한 폐기물이다. 비단 송도만이 아니다. 수거 후 재활용이 가능한 자원만 빼고 매립하거나 소각해야 할 폐기물을 임시로 빌린 야적장에 버리고 도망간 비양심적인 업체들 때문에 지자체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은 이제 뉴스도 안된다.   

1992년부터 전 세계 약 1억600만t의 플라스틱 쓰레기를 수입해온 중국이 수입을 중단한 후 그 많은 플라스틱 쓰레기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모두 동남아시아로 향하고 있다. 베트남은 플라스틱 쓰레기 수입량이 2016년 34만t에서 2017년 55만t으로 증가했다. 말레이시아는 29만t에서 45만t으로, 인도네시아는 12만t에서 20만t으로 각각 늘어났다. 위태로움을 느낀 태국은 오는 2021년까지 플라스틱 수입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제 동남아 각국의 정부는 플라스틱을 비롯한 기타 쓰레기 수입을 불허하며 자국이 쓰레기 매립지로 전락하지 않도록 정책을 준비하고 있다. 

매년 전 세계적으로 3억3000만t의 플라스틱이 생산되지만, 재활용되는 플라스틱 쓰레기는 9%에 불과하다. 중국에서 동남아 국가로 향한 플라스틱 쓰레기들은 급증하는 양에 비해 처리시설이 부족하여 다수가 해양에 버려져서 또 다른 문제를 낳고 있다. OECD 국가 중 1인당 플라스틱 소비 1등 국가인 우리나라는 어떤 준비를 하고 있을까?

내년도 환경부 예산 및 기금 등 총지출이 7조8497억원으로 최종 확정됐다. 올해보다 5349억원(8.4%) 증가한 수치로 국회를 거치면서 정부안보다 2652억원이 증액됐다. 환영할 일이다. 그중에 폐기물 관련 예산이 포함된 자원순환 분야는 3555억원으로 4.5% 증액되었다. 기쁜 일이다. 그러나 환경부 전체 예산은 우리나라 총예산 469.6조원 가운데 1.49%에 불과하다. 보건복지, 지방행정, 교육, 국방 등 12개 재원 배분처 중 10위, 끝에서 세 번째다. 정부가 측정하건 민간이 하건 국민이 가장 심각하게 생각하는 문제 1위는 미세먼지, 2위는 플라스틱 문제이고 환경문제는 죽고 사는 문제인데 예산은 늘 거기서 거기다.

올 한해도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올해의 책이라 칭송해 마지않는 레이 달리오의 <원칙> 가운데 한 구절을 음미하며 새해를 맞고 싶다. “모든 사람이 실패를 경험한다. 내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현명하게 실패한 사람이다. (중략) 실패한 후 변하고 성공하는 것이 단순히 성공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의지를 필요로 한다. 한번에 성공한 사람들은 한계를 경험하지 못한다. 최악의 경우는 실패한 다음에 실패를 인정하지 않고 변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사람을 정부로 바꿔도 무방할 내용이다.

성탄절 이브다. 예수가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재림한다면 교회가 아니라 기재부에 내리셔야 할 것 같다. 메리 크리스마스!

<이미경 | 환경재단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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