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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헌법 제11조는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헌법학자들은 ‘법 앞에’의 의미를 법의 ‘내용’도 평등해야 할 뿐만 아니라 법의 ‘적용’과 ‘집행’도 평등해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구속의 사유는 형사소송법 제70조 제1항이 규정하고 있다. 죄를 범하였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상황에서 주거 불명이거나, 도주나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으면 구속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제2항에서는 구속 여부를 판단할 때 ‘범죄의 중대성’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만인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것은 바로 구속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 구속 사유에 관한 이 형사소송법 제70조의 적용과 집행이 평등해야 함을 의미한다. 평등한 법의 적용과 집행은 일차적으로는 검사의 평등한 영장신청으로, 이차적으로는 법관의 평등한 영장발부로 실현된다. 그러면 형사소송법 제70조를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안에 적용해보면 어떤 결과가 나올 수 있을까?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집중되면서 휴일인 26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 긴장감이 돌고 있다.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첫째, 무엇보다 증거인멸의 우려를 부정하기 힘들다. 많은 국민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증거가 인멸되고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청와대는 아직까지도 증거 확보를 위한 검찰의 압수·수색에 완전히 협조적이지 않다. 민정수석실에 대해서만 임의제출의 형식으로 응했을 뿐이다.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 후 박 전 대통령은 2일 이상 청와대에 더 머물렀고, 이에 앞서 청와대가 문서파쇄기 수십대를 구입했다는 언론보도도 나왔다. 국민들은 왜 갑자기 그토록 많은 문서파쇄기가 필요했는지 의아해하고 있다. 안종범 전 수석 등 공범들의 K스포츠재단, 미르재단 설립과정에 대한 허위 진술의 종용도 있었다. 청와대에서 또 삼성동 자택에서 어떤 증거들이 폐기되고 있는지, 어떤 말 맞추기 시도들이 있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둘째, 범죄의 중대성도 충분하다. 박 전 대통령이 받고 있는 범죄 혐의는 수백억원에 이르는 뇌물수수죄와 사익 추구를 위한 각종 직권남용죄, 국가기밀 문건의 유출을 통한 공무상비밀누설죄를 비롯해 무려 13가지에 이른다. 13개 모두가 중대한 범죄 혐의들이다.

셋째, 범죄의 중대성과 함께 박 전 대통령이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는 점도 구속 여부에 영향을 준다. 박 전 대통령은 청와대를 나온 날 삼성동 자택에 도착해서 “시간이 걸리겠지만 진실은 밝혀질 것이라고 믿고 있다”고 말했다. 검찰이나 특검의 수사결과와 혐의사실들을 전면 부인한 것이다. 중대한 범죄 혐의를 받고 있음에도 이를 전면 부인하는 경우, 이러한 혐의 부인은 도주 및 증거인멸의 우려에 대한 검찰과 법원의 판단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준다. 진정어린 사과가 있어야 구속과 관련한 정상참작도 할 수 있는 것이다.

넷째, 이미 범죄의 중대성과 증거인멸의 우려로 구속된 많은 공범들과의 형평을 고려해야 한다. 최순실, 정호성, 안종범, 김종, 김기춘, 이재용 등 공범들이 대부분 구속되었고, 이 공범들에 대한 재판이 빠른 속도로 진행 중이다. 이들은 구속시켜 놓고 정작 이들과 공범관계에 있는 주범으로서 범죄 혐의를 받고 있는 박 전 대통령을 구속하지 않는다는 것은 헌법 제11조의 평등원칙에 정면으로 위배될 수 있다. 특히 뇌물수수와 관련해 돈을 준 사람보다 받은 사람을 더 무겁게 처벌하는 우리의 사법 관행을 고려할 때, 뇌물제공 혐의자인 이재용 부회장은 구속해놓고 박 전 대통령을 불구속 수사한다는 것은 국민들에게 설득력을 얻기 힘들다.

불구속의 근거로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를 말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의 현재 법적 지위는 검찰 조사를 받았던 앞선 세 명의 전직 대통령들과는 다르다는 점에 주목을 요한다. 그 세 명은 당시 대통령 임기를 마친 전직 대통령들이었지만, 박 전 대통령은 임기 중 중대하게 헌법과 법률을 위반한 이유로 헌법재판소에 의해 파면된 상태다. 그래서 ‘경호’를 제외하고 전직 대통령이 누리는 모든 혜택을 법에 의해 박탈당했다. 구속영장 신청과 관련해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를 이야기하기 곤란한 이유다.

물론 불구속 수사가 원칙이긴 하다. 그러나 법이 정한 기준을 거스르면서까지 불구속 수사를 고집해선 곤란하다. 박 전 대통령의 구속 수사를 지지하는 국민 여론이 72%에 이른다는 점도 고려돼야 한다. 이미 검찰 스스로가 구속영장 신청과 관련해 ‘법과 원칙’을 강조했듯이, 사안이 복잡할수록 원칙으로 돌아가 판단하면 된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헌법 제11조의 원칙 말이다. 그래서 만인은 ‘구속 앞에도 평등’함을 보여주면 된다.

임지봉 |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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