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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자잖아’, ‘아니 그래도 전직 대통령인데’. 파면 이후에도 지면은 여전히 피의자 전직 대통령 박근혜로 장식된다. 검찰이 긴 고민 끝에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논쟁은 사그라지지 않을 것이다. 영장실질심사, 기소, 재판이 진행될 때마다 전직 대통령에 방점을 찍은 예우론이 등장할 것이다. 결국은 피의자이므로 여느 피의자와 마찬가지로 구속해야 한다는 평등론과 그래도 전직 대통령이므로 구속은 과하다는 공평론 또는 동정론의 대립이다. 만인은 법 앞에 평등하다. 그래서 누구든 형사소송법상 구속사유가 있으면 구속되어야 한다. 피의자가 나라의 대통령이었든, 재벌총수로서 국가경제를 위해 애썼든 그런 사정들은 고려되어서는 안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다 같은 피의자가 아닐진대 똑같이 취급하는 것이 공평한가라는 의문이 제기된다. 피의자라 하더라도 전직이 대통령이거나 현직 대기업 회장이면 다른 피의자보다 조금은 대접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반론이다.

우스갯소리로 돈을 좋아하면서 자본주의 국가가 아닌 중국과 모두가 평등하게 대접받기를 원하면서 공산주의·사회주의 체제가 아닌 대한민국을 불가사의하다고 한다.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도 같게’라는 평등에 대한 미신도 있고 평등 지향적이면서도 소득 불평등지수와 성 불평등지수가 아주 높은 것도 참 아이러니하다. 헌법재판소가 이해하는 법 앞의 평등을 보자. “헌법 제11조 제1항의 평등의 원칙은 일체의 차별적 대우를 부정하는 절대적 평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 근거가 없는 차별을 하여서는 안된다는 상대적 평등을 뜻하며, 합리적 근거가 있는 차별인가의 여부는 그 차별이 인간의 존엄성 존중이라는 헌법 원리에 반하지 아니하면서 정당한 입법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필요하고도 적정한 것인가를 기준으로 판단되어야 한다.” 이처럼 누구든 똑같이 대접받기를 원하지만 절대적 평등을 원하지 않기에 공산주의가 발붙이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 헌법의 평등권은 절대적 평등이 아니라 상대적·실질적 평등을 의미한다. 기회 균등과 차별 금지, 공평한 분배를 통해서 ‘각자에게 그의 몫을’ 보장하는 것이 평등권의 내용이다. 합리적인 근거, 정당한 이유에 따른 차별은 허용된다.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취급하는 것은 평등권을 침해하지 않는다는 것이 헌법재판소의 판단이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7년 3월28일 (출처: 경향신문DB)

어떤 법률이 정한 구성요건을 똑같이 충족하면 동등하게 처우하라는 원칙 또는 기회와 재화를 균등하게 분배하라는 원칙이 우리 법질서에 담긴 정의의 원리다. 공평은 절대적 평등과는 달리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로 표현된다. 평등대우 원칙은 재화나 권리, 기회의 균등뿐만 아니라 누구든 그 존엄성은 다르지 않고 평등하다는 근본이념을 담고 있다.

전직 대통령은 천부인권을 갖는 사람, 존엄성이 존중되어야 할 인간이라는 점에서는 우리와 한 치도 다르지 않지만 전직 대통령이라는 신분이 우리와는 다른 대우를 받게 한다. 그래야 공평하고 정의롭다. 그런데 피의자 박근혜가 전직 대통령이므로 달리 대우받아야 한다는 주장은 ‘다른 것은 다르게’라는 공평론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실은 동정론이다. 아직도 박정희 신화에서 깨어나지 못한 지지자들은 박근혜를 피의자가 아니라 왕의 딸, 비운의 공주로 받든다. 파면이라는 극형을 받았으므로 구속은 가혹하다고도 한다. 그래서 파면되어 대통령직에서 물러났지만 여전히 ‘피의자’보다는 ‘전직 대통령’에 방점을 찍어 여느 피의자와는 달리 최소한의 예우를 해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불공정하고 불평등한 사회에 대한 지난겨울의 분노가 지금의 상황을 만든 것임을 상기해보면, 그리고 법과 원칙이 흔들리면 나라가 휘청거린다는 값진 경험을 떠올려보면 피의자가 전직 대통령이라고 달리 대우해 줘서는 안된다. 무엇보다도 헌법과 법률을 위배해 파면된 신분이다.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 제7조 제2항에 의하면 재직 중 탄핵결정을 받아 퇴임한 경우에는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예우를 하지 않는다. 일정기간 경호와 경비의 예우만 받을 수 있다.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예우도 아주 제한적인데, 하물며 그가 피의자일 때는 더욱 더 그러하다. 범죄혐의가 뇌물수수 외에도 직권남용 등 열가지가 넘고, 범죄혐의도 무거워 중형이 예상되며, 공범도 다 구속된 상황이고 증거인멸의 우려도 없지 않기 때문에 법과 원칙에 따라 청구된 구속영장은 법원에 의해서 발부되어야 한다. 수사와 재판이 끝날 때까지 검찰과 법원은 ‘전직 대통령’이 아니라 법 앞에 평등한 ‘피의자’ 또는 ‘피고인’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국격 추락은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에 따른 수사와 재판만이 실추된 국가의 품격을 되살릴 수 있을 것이다.

하태훈 |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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