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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톡이나 이와 비슷한 메신저 서비스를 이용하는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은 수많은 대화방에 참여한다. 메신저에서는 친구나 동창생들의 소소한 일상에 관한 대화가 오가며, 때로는 공적인 업무의 보조용으로 대화방이 이용되기도 한다. ‘나’의 계좌번호나 신용카드 번호, 비밀번호 등을 카카오톡 메시지로 알려주는 경우도 흔히 있다. 이렇듯 대화방에서는 ‘나’에 관한 수많은 정보가 오가게 된다. 100명이 참여하는 카톡방이라면 그 100명이 모두 ‘나’이다.

이런 메신저 서비스의 특성상, 수사기관이 A라는 사람의 카카오톡 대화를 압수수색하면, A와 대화방으로 연결된 수많은 ‘나’들의 모든 대화내용이 “털린다”. 수많은 ‘나’들은 대부분 A의 혐의와는 무관한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수백에서 수천에 이르는 시민들의 대화내용과 개인정보가 고스란히 수사기관의 손에 넘어간다.

물론 카카오톡 등 메신저 대화내용을 압수하려면 법원이 발부하는 압수수색영장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체포나 구속영장에 비해 압수수색영장의 요건은 훨씬 완화되어 있다. 경찰이나 검찰은 수사에 필요하다는 점만 소명하면 압수수색영장을 비교적 쉽게 발부받는다. 다음카카오 측이 10월8일 정보제공 현황을 공개했는데, 압수수색영장의 집행요청 건수는 2013년 상반기에 983건, 2013년 하반기에 1693건, 그리고 2014년 상반기에 2131건이었다고 한다. 하루에 10건 이상의 압수수색이 있었다는 것이고, 그 건수도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수사기관의 입장에서는 압수수색영장만 있으면 카카오톡 등 메신저의 대화내용을 ‘일괄해서’ 쓸어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정보를 차곡차곡 쌓아두었다가 나중에 써먹을 수도 있으니, 이보다 더 편리한 게 또 있을까 싶을 정도다.

이 사태를 ‘나’들의 입장에서 바라보자. 카카오톡 압수수색의 문제를 처음 제기한 정진우 노동당 부대표가 받은 집행통지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압수·수색·검증 집행의 대상과 종류: 2014년 5월1일부터 6월10일까지 ‘카카오톡 메시지 내용, 대화 상대방 아이디 및 전화번호, 대화일시, 수발신 내역 일체, 그림 및 사진 파일’ 전체를 압수수색.” 한마디로, 40일 동안 그가 참여한 카톡방에서 오고간 모든 대화내용과 파일들, 그리고 카톡방 참여자들의 개인정보를 ‘일괄 압수’한다는 내용이다. 그 당시 정진우 부대표가 참여한 카톡방에 함께 참여하고 있던 ‘나’들은 3000명에 이른다고 했다.

더 심각한 것은 수많은 ‘나’들은 압수수색 사실을 까맣게 모른다는 점이다. 집시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정진우 부대표는 자신의 카카오톡 압수수색이 있었다는 것을 약 3개월이 지난 후에 집행통지서를 받아보고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것도 압수수색을 집행했다는 집행통지서 1장만 덜렁 우편으로 받았을 뿐이고, 경찰이 카카오톡의 대화내용 중 무엇을 가져갔는지, 그리고 그 대화내용이 아직도 경찰의 손에 있는지, 경찰이 압수한 카카오톡 대화내용을 타인에게 제공했는지 등에 대해 지금도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 다른 ‘나’들은 그나마 이런 통지조차도 없다. 압수수색영장의 집행 대상자에게만 통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개 숙인 이석우 다음카카오 대표 (출처 : 경향DB)


이것이 ‘사이버 사찰’이다. 압수수색영장 하나로 수많은 시민들의 프라이버시와 개인정보가 ‘은밀하게, 대담하게’ 털리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이런 식의 사이버 사찰은 비단 카카오톡 압수수색에 국한되지 않는다. 수사기관은 통신사업자에게 요청만 하면 가입자 정보를 그대로 넘겨받는다. 그리고 ‘통신사실확인자료제공’이라는 제도도 있다.

이 모든 것이 ‘사찰’인 이유는 당사자이자 피해자인 ‘나’들이 철저하게 객체화되어 버리고 소외된다는 점에 있다. 헌법은 모든 ‘나’들에게 사생활의 비밀의 자유, 통신비밀의 자유를 보장한다고 선언한다. 그러나 권리주체이자 정보주체인 ‘나’들의 수많은 개인정보가 너무도 손쉽게 수사기관의 손에 넘어가고 사적인 대화내용까지 순식간에 털리는 현재의 상황을 보면, 국민이 주인인 국가가 아니라 ‘경찰국가’ 내지 ‘감시국가’의 모습일 뿐이다. 총체적인 법제도 개혁이 필요하다.


이호중 |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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