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선거를 치른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았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그사이 너무나 많은 일이 있었고 기억은 희미해져만 간다. 그러나 선거라는 것이 당선자를 결정하는 일뿐 아니라, 수천만 유권자들이 남겨놓은 작은 메시지들의 모자이크를 통해 우리 공동체가 나아갈 방향에 대한 큰 밑그림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이곳에서 재음미하고자 한다.

지난 대통령 선거는 다른 무엇보다도 다당제적인 선거였다. 단순히 여러 명의 후보가 출마하여 끝까지 완주했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출마자와 주요 정당들이 다당제적인 선거운동을 벌였고, 이와 동시에 유권자들이 다당제적인 정치적 수요를 보여주었다는 의미에서다. 한국 정치사의 긴 호흡에서 바라보자면 1990년 3당 합당 이래 강고하게 한국 정치를 지배해왔던 거대 양당의 독과점적 경쟁이 그 근본에서부터 부정된 선거였다.

그 한 축은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것처럼 ‘보수의 몰락’으로 이름붙일 수 있을 것이다. 집권 새누리당 혹은 자유한국당이 공천할 후보조차 찾지 못하고 지지율이 한동안 5%대도 넘기지 못하던 때를 고려하면, 홍준표 후보가 받아든 2위, 24%라는 성적은 많은 사람들에게 놀랍거나 혹은 다행스러운지 모르지만, 1987년 노태우 후보의 37% 득표 이래 한국의 보수정당은 그 어떤 선거에서도 이보다 낮은 지지를 기록한 적이 없었다.

더 결정적인 것은 자유한국당과 홍준표 후보는 정확하게 다당제하 극우정당으로서 지난 선거를 치렀다는 사실이다. 홍 후보의 선거전략은 시종일관 자신의 지지기반을 재확인하는 작업이었으며 이 과정에서 탄핵반대, 전술핵 배치, 노조 척결 등을 앞세웠고, ‘스트롱맨’을 자처하며 유신향수를 자극하였으며, 토론회에서는 성소수자, 사형제, 월남전 등 교과서적인 균열이슈들을 쉴 새 없이 정밀타격했다. 그러나 한국 정치가 도달한 2017년의 논의 지반을 고려할 때, 이상의 이슈들에서 홍 후보와 입장을 같이하는 과반의 유권자를 찾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여타 중도보수 유권자들이 애초에 홍 후보를 선택하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서울대 정치커뮤니케이션센터의 조사에 의하면, 홍 후보 이외의 후보에게 투표한 유권자들은 모두 (안철수 후보나 유승민 후보 지지자들을 포함해서) 압도적으로 낮은 비율로 홍 후보를 차선(次善)으로 선택하였다.

요컨대 자유한국당과 홍 후보의 지지층은 여타 보수·중도 유권자와 명확히 구분된다. 예상할 수 있는 것처럼 지지자들의 여성 비율이 가장 낮고 평균 연령이 가장 높았던 홍 후보에 비해 유승민 후보의 지지층은 평균 연령이 가장 낮으며 수도권에 그 구심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증세나 복지지출은 반대하면서 정부규제 완화와 시장자율을 중시하는 안철수 후보의 지지자들이 전통적인 국가 권위주의를 체현한 홍 후보를 지지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들은 이명박 후보를 선택했고, 박근혜 후보를 찍은 후 교과서 국정화에 분노했으며, 결국 지난겨울 촛불을 들었던 사람들이다. 유권자들의 다당제적 수요가 적어도 이념의 오른쪽 스펙트럼에서 무르익은 지는 제법 되었다.

이러한 유권자의 다당제적 수요가 실질적인 다당제로 귀결될 것인가? 그 해답은 우리 선거제에 있다. 국회의원 소선거구제와 제한적 비례대표, 그리고 결선투표 없는 대통령 선거 등으로 요약될 수 있는 우리의 선거제는 소수정당에 매우 불리하고 거대 양당에 매우 유리한 조합이다. 이러한 제도들이 돌파되지 않는 이상 다당제가 자리 잡기는 어려워 보이지만 개헌 국면에서 의외로 선거제도 개편이 이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 유권자들의 수요를 정치권이 마냥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선거의 가장 중요한 장면은 아마도 홍준표 후보가 성소수자와 사형제 관련 질문을 선두주자인 문재인 후보에게 던진 토론회였을 것이다. 우선 그 질문은 5년 전 박근혜 후보를 포함하여 과반을 노리는 어느 거대 정당의 후보도 토론회에서 던질 수 없는 질문이었다. 논쟁적이고 호불호가 명확하게 갈리는 이슈에 굳이 입장을 표명할 까닭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문 후보가 답변을 종용받은 순간은 우리 정치가 다당제로 이행하는 터널의 입구였을지도 모른다.

다당제적 정치가 반드시 양당제적 정치보다 우월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양당제적 정치가 다양하고 중요한 의제들의 거명과 토론을 가로막고 있었던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며, 2017년 선거는 성소수자 문제가 어떤 이들에게는 국정농단이나 사드 배치보다 더 중요한 이슈라는 사실을 새삼 가르쳐준 선거이기도 하였다. 새로운 정치는 이렇게 ‘사소하게’ 시작되는 것인가 상상할 따름이다.

박원호 | 서울대 교수·정치학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