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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김대중 정부 10년간 13명의 교육장관이 임명됐다. 백년대계를 다루는 교육부 수장의 목숨이 파리만도 못하다는 얘기가 나왔다. 2003년 3월 노무현 대통령은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에 윤덕홍씨를 임명하며 “임기를 같이하겠다”고 공언했다. 새 부총리는 교육의 공공성을 중시하고, 고교 평준화에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었다. 대구대 총장 시절 재단으로부터 부당하게 해임당한 경험도 있어 사학 개혁 의지도 남달랐다.

그러나 윤 부총리는 여러 면에서 운이 나빴다. 취임하자마자 교육계가 진보·보수로 갈려 사사건건 충돌했다. 발단은 2003년 4월 초 충남의 한 초등학교 교장이 자살한 사건이었다. 교장은 같은 학교 기간제 여교사에게 차 시중을 강요해 전국교직원노조(전교조) 등으로부터 사과하라는 압박을 받고 있었다. 교장의 극단적인 선택에 보수 언론과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가 전교조와 여교사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전교조는 “전교조의 교육적 열정을 송두리째 부정하려는 보수 수구 세력에 맞서 강력히 투쟁해 나가겠다”고 선언했다. 정부의 교육행정정보화시스템(NEIS) 시행에도 반대 입장을 밝혔다. 이른바 NEIS 사태의 시작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청와대가 전교조 의견을 반영해 대안을 마련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교총이 강하게 반발했다. 윤 부총리로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지속됐다.

윤 부총리는 취임 일성으로 “장관을 핫바지로 만드는 곳이 교육부라고 하더라”며 관료들에게 휘둘리지 않겠다고 했지만 그러지도 못했다. 2003년 9월 건설교통부는 판교 학원단지 조성 방안을 발표했다. 교육부가 김대중 정부 때 건교부와 합의한 것인데 윤 부총리는 제대로 보고받지 못해 이를 전면 부정했다. 국정감사장에서 의원들이 교육부와 건교부가 합의한 문서를 공개했다. 그는 대망신을 당했다. 그해 겨울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른 수험생들에게 ‘한 말씀’ 해달라고 언론이 요청하자 윤 부총리는 “수능을 좀 잘 못 치르고, 가고 싶은 대학에 못 간다고 인생이 변하는 사회는 이제 고쳐질 것”이라고 말했다. 결기가 느껴졌지만 그는 얼마 못 가 크리스마스이브에 경질됐다. 취임 9개월여 만이었다.

윤 부총리 후임으로 김영삼 정부에서 장관을 맡았던 안병영 연세대 교수가 임명됐다. 안 부총리는 장관을 두 번이나 맡는 진기록을 세웠지만 2004년 11월 광주에서 발생한 수능시험 부정행위, 고교 등급제 및 내신 부풀리기 논란 등으로 힘겨운 시간을 보내다 1년 만에 물러났다. 그는 “수능 부정은 감독 체계의 문제가 아니라 교육의 실패를 보여주었기 때문에 책임지겠다”고 말했다.

바통을 이어받은 이기준 부총리는 서울대 총장 재직 당시 판공비 과다 지출, 사외이사 겸직, 장남 병역 기피 의혹 등이 불거지면서 취임 사흘 만에 사의를 밝혔다. 한동안 후임자를 찾지 못하던 노 대통령은 2005년 1월 고심 끝에 경제관료 출신의 김진표 부총리를 임명했다. 김 부총리는 교육계 인사들과 역대 어느 장관보다 많은 술을 마시며 소통했다. 그러나 학생 거주지와 다른 타 시·도 외국어고에 지원을 금지한 특목고 입시정책이 논란을 빚고, 최악의 급식 사고까지 터지자 1년6개월 만에 하차했다. 그는 “교육부총리가 경제부총리보다 10배는 더 힘들다”고 말했다.

그 뒤를 이은 김병준 부총리는 노 대통령의 신임이 각별했지만 국민일보 취재로 논문 표절 사실이 드러나면서 20일 만에 낙마했다. 결과적으로 그는 학문 윤리를 재정립하고 논문 표절 교수들의 공직 진출을 막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참여정부 종료 1년6개월을 앞두고 김신일 서울대 교수가 부총리에 임명됐다. 학식과 덕망이 높았지만 야구의 패전처리 투수나 다름없었다.

노 대통령이 임명한 다른 교육 참모들도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대통령직속 교육혁신위원회 위원장(장관급)에 전성은 거창고 교장과 설동근 부산교육감 등이 임명됐으나 교육부와의 파워 게임에 밀려 존재감 자체가 없었다. 김진경 청와대 교육비서관은 자신의 친정인 전교조 견인에 실패했다. 그의 후임인 최경희 비서관은 뜻밖의 인사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후일 이화여대 총장이 됐다. 그러나 ‘비선실세’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 부정입학 건으로 구속돼 현재 재판을 받고 있다.

참여정부 교육 행정 수뇌부는 본연의 업무보다는 사건·사고 뒷수습을 하고, 교원단체와 소모적인 힘겨루기를 하며 진을 뺐다. 지금은 기억하는 사람이 없겠지만 참여정부의 교육 공약은 ‘참여와 자치를 통한 교육공동체 구축’ ‘공교육 내실화와 교육복지 확대’ ‘지방대학 육성’ 등이었다. 참여정부의 교육 잔혹사가 문재인 정부 성공의 밑거름이 되기를 기원한다.

오창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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