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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3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연이은 TV토론회에서 드러났듯 정치가로서의 능력(비르투)이나 ‘정치적 올바름’의 면에서나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단연 발군이었다. 정의당의 공약은 가치성·구체성·실현가능성에서 가장 좋은 평가를 받았다.(경향신문 4월28일자, ‘경향신문·경실련 공동 평가’) 그런데 우리는 무엇 때문에 망설여야 하나?

심상정을 제외한 다른 유력 후보들이 하나같이 영남 출신, 중장년 남성, 학벌 엘리트라는 사실은 과연 우연일까? 이는 성·학력·지방 차별이 깊이 내재화된 한국 현실정치의 모순을 드러내는 사실 아닌가? 특정 젠더(남자 이성애자)와 세대(50~60대), 지역(영남)에 근거를 두거나 그것을 대표하는 후보로만 짜여진 선택지는 너무 좁지 않은가? 이런 ‘대의민주주의’는 정상인가?

그래서 심상정 후보가 감당하는 무게는 현재의 지지율과 정의당의 의석수를 훨씬 초과한다. 이는 한국의 여성·(비정규)노동자·성소수자 등의 참담한 정치적·사회적 소외를 생각하면 더 선명해진다. 돼지흥분제로 강간모의한 사실을 버젓이 회고록에 젊은 날의 추억으로 그려놓고 말끝마다 ‘혐오’를 내뱉는 자가 유력 ‘보수’ 후보이고, 성소수자와 노동조합에 대한 혐오와 악선동이 횡행하는 선거판에서 여성·(비정규)노동자·성소수자의 시민권이란 무엇일까? ‘국가’와 주류들로부터 2등시민 취급받는 사람들은 과연 어떤 기준으로 지지후보를 정해야 할까? 이 사회의 주류 자리와 기득권을 차지하는 세력과 그 지지자들이 선거를 빌미로 차별과 혐오를 아무렇지도 않게 양산하는 현실은 멈춰야 한다.

실질적 민주주의를 위한 전선은 이중적이다. 하나는 홍준표로 상징되는 극우·혐오 세력 대 범민주 진영의 전선이고, 다른 하나는 범보수·다수자 대 진보·소수자 사이의 전선이다.

두 전선은 교차하고 또 길항한다. 교집합을 갖지만 하나만이 진리가 아니다. 후자의 싸움에 깃든 사회적 과제는 전자로써 해소될 수 없이 그 자체로 중요하다. 분단과 극우의 지배가 지속돼온 한국에서는 ‘민주 대 반민주’로 표상되는 전자가 언제나 압도적 힘을 발휘했을 뿐 아니라, 후자를 압박하고 해소해 버렸다. 그 때문에 진보정당과 노동운동은 물론 여성주의도, 생태주의도 클 수 없었다. 언제나 ‘나중에’라는 시기상조론과, (큰 파도가 밀려오니 조개나 줍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식의 ‘비판적 지지론’(이라 쓰고 ‘맹목적 지지’라 읽는다)이 횡행했다.

불가피한 현실이라고? 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한국 민주주의가 양과 질 양면에서 여전히 왜소하고, 또 다른 악순환에 처한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민주’에 불가결한 노동·여성·생태의 가치가 유보·억압되는 상황이 평등과 사회적 다양성을 약하게 했으며, 이는 혐오·억압과 극우 논리가 더 활개치게 만드는 핵심 배경이 된다. 여성의 권리와 노동조합의 힘이 제대로라면 과연 홍준표 같은 자가 ‘보수’로 표를 모으고 범죄적인 발언을 쏟아낼 수 있겠는가?

두 개의 전선을 같이 돌파할 수밖에 없고, ‘민주’와 ‘진보’ 양자는 서로 지렛대로 삼아 앞으로 나아간다. 지금은 그럴 만한 보기 드문 좋은 기회다.

지난 4월25일의 TV토론회에서 심상정은 명확하게 동성애자들의 인권을 옹호했다. 고공농성 중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찾아간 것도 심상정뿐이었다. 취업난에 시달리는 여대생들이나 일하는 엄마들이 유세장의 심상정을 안고 눈물 흘리는 모습도 상징적이다.

심 후보의 득표가 15%를 훌쩍 넘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당연히 이런 기대가 심상정 개인에 대한 지지 때문이 아니며, 높아진 지지율이 심상정 개인의 영달을 위한 재료가 되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한국 사회가 근저에서 달라지려면 진보정당의 독립적이고도 확고한 자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1개의 극우정당과 3개의 보수정당이 국회 의석과 지자체 단체장 자리를 다 차지하는 사회에서 ‘실질적 민주주의’가 제대로 자리를 잡을 리 없다.

세계화와 금융화를 통해 구조화된 신자유주의를 극복하기 위해서나, 2500만 비정규직 노동자와 영세 자영업자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서나 몇 가지 정책을 교정하는 정도로는 불가능하다. 정부·기업뿐 아니라 문화·교육을 근저에서부터 바꿔나가야 한다. 노무현 정부의 공과를 잘 기억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는 권위주의를 타파하고 한반도 평화의 기운을 북돋웠지만, 양극화와 신자유주의는 전혀 막지 못했다. 노동자와 여성의 삶도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았다.

덧붙여 이번 대선의 선전이 새로운 ‘적-녹-보(노동·환경·성) 연대’의 모멘텀이 되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 정의당을 위시한 진보정당들도 스스로 업그레이드되어야 한다.

천정환 | 성균관대 교수·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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