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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 대한 폭력은 신체에 대한 물리적인 구속이나 상해를 가하는 것으로 흔히 이해된다. 그러나 이와 매우 다르게, 그리고 더욱 교묘하게 작동하는 폭력이 우리에게 상존한다. ‘담론적 폭력’이 그것이다. 미셸 푸코는 일찍이 <지식의 고고학>에서 담론의 폐쇄적 속성과 그에 따른 정치적 결과를 폭력이라는 측면으로 논한 바 있다. 푸코에 따르면 담론은 다음과 같은 기능을 발휘한다. 첫째, 특정한 발화자와 언표에 정당성을 부여하며 둘째, 이를 통해 향후에 발생할 수 있는 담론의 ‘무대’를 규정하여 셋째, 새로운 시각이나 대안의 범위를 매우 협소하게 만든다. 요컨대 담론은 무엇이 발화되는지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러한 언표들의 ‘형성체계와 규칙’을 만들어냄으로써 일종의 ‘규율적’ 도구가 되는 것이다. 무엇이 발화될 수 있으며, 어떻게 발화되어야만 하며, 따라서 무엇이 수용 가능한 발화행위인지에 대한 ‘경계’를 만든다는 것이다. 이렇게 구성된 담론경계로 인해 경계 ‘내부’에 들어와 있는 언표들은 ‘정당성’을 부여받게 되고, 경계 ‘밖’에 존재하는 언표들은 부자연스럽거나 비정상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비정상적인 것은 곧 규제나 배제의 대상이 된다.

담론 경쟁이 곧 정치권력 투쟁과 연동되는 지점도 바로 여기에 있다. 담론 경쟁에서 승리하여 주류·지배적 담론이 되면, 그 담론을 수용하는 발화자는 정당성을 갖게 되고 이는 곧 타자에 대한 규율로 이어지게 된다. 주류 담론에 속하지 않거나 이에 상응하지 않는 시각은 배제 혹은 소거 대상이 된다. 결과적으로 담론적 ‘경계’와 ‘폐쇄’로 인해 발생하는 폭력은 개인의 새로운 시각과 대안적 행동을 억압할 뿐만 아니라 주류 담론에서 벗어나 있는 개인 자체를 주변화시키게 된다.

30일 사드 부지 공사를 위해 주한미군 유조차량 2대가 성주골프장으로 진입하려다 주민들의 반대로 마을 입구에서 대기하고 있다. 미군 유조차는 이날 오전 8시40분부터 2시간가량 대기하다 되돌아갔다. 백경열 기자

이러한 담론적 폭력의 전형이 대선정국에서 발견된다. ‘사드’라는 기표와 이에 뒤따라 붙는 질문이 바로 그것이다. “사드, 찬성하는가, 반대하는가?” 대통령 후보자 검증을 위한 토론이나 인터뷰에서 거의 모든 언론은 이렇게 묻는다. 물론 사드에 관해 물을 수 있다. 사드는 한국 안보와 관련된 주요 현안 중 하나이며, 사드 배치에 대한 미·중의 상이한 입장은 한국 외교에 큰 난제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사드라는 기표가 안보담론의 무대 전체를 점령하고 있다는 데 있다. 마치 사드만이 한국 안보를 논하고 판단할 수 있는 잣대가 되며 이것을 말하는 발화자만이 안보담론의 무대에 설 수 있는 것인 양 매우 협소한 담론적 경계가 세워져 있는 것이다. 사드 이외의 문제는 담론의 무대 밖으로 내몰리게 된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사드 배치를 찬성하는 후보자는 곧 안보관이 투철한 것처럼 담론적 폐쇄가 형성되고 있다는 점이다. 사드를 말하지 않거나 혹은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후보자는 마치 안보관이 위험한 것처럼 인식되고 곧장 비난의 대상이 된다. “사드, 찬성이냐 반대냐”라는 질문으로 누군가의 안보관, 세계관을 따져 묻는 것은 담론적 폭력이다. 자유의지로 말하고 또한 상상되어야만 하는 새로운 가능성과 대안들이 주변부로 내몰리기 때문이다. 북한의 핵문제 해결을 위한 근본적인 해법, 남북통일을 위한 장기적 전략과 목표, 국민의 삶의 질적 향상, 세월호와 같은 대형 인재사고 재발 방지를 사회안전 시스템 구축 등등.

담론의 지형을 더욱 복잡하게, 담론의 경계를 더욱 유연하게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한국 안보를 지키고 개선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첫걸음이다. 피에르 부르디외는 사회라는 세상은 ‘말을 놓고 벌이는 투쟁의 장소’라고 했다. 변화를 위해서는 새로운 언어의 등장이 필수적인 것이다. 사드로 가려진 담론의 경계를 허물고, 다양하고 다원적인 언어와 질문을 안보담론의 무대에 재등장시켜야만 한다.

담론의 ‘경계 허물기’는 누가 진짜 안보대통령에 적합한가를 판단하는 데 유용한 기준이 될 수 있다. 누가 사드를 상징권력의 언어로써 행사하며 타자의 안보관과 세계관 전체를 재단하려 하는가? 누가 편협한 안보담론의 현상유지를 시도하는가? 누가 사드뿐 아니라 북핵 문제 해결, 남북통일, 사회의 안전, 국민복지 향상의 문제를 안보정책으로써 포괄적으로 ‘말’하고 있는가를 따져봐야만 한다. 이것은 우리 유권자의 몫이다. 담론폭력의 가장 큰 피해자는 결국 유권자이므로.

은용수 | 한양대 교수·정치외교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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