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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선거 후보자들의 포퓰리즘적 공약이 난무한 가운데 지금의 한국 경제를 바라보는 시각은 대부분 일치한다. 그들이 진단하는 한국 경제는 ‘중병 상태’이다. 치료방법을 선택하는 데는 신중해야 한다. 만병통치약이란 이 세상에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병의 근본원인이 무엇이고 어떻게 치료할 것인가이다. 그리고 그 병을 치료하기 위한 치료체제가 적절한가이다.

1993년쯤 버블 붕괴 후, 일본 경제는 20여년간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동안 평균임금이 하락한 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일본이 유일하다. 일본 정부는 그동안의 재정지출로 1000조엔(약 1경원)이 넘는 천문학적인 숫자의 재정적자를 안게 되었다. 매년 일반예산 96조7000억엔 정도(2016년)의 24%인 23조6000억엔(약 236조원) 정도를 그 빚을 갚는 데 사용하면서도 재원 마련을 위해 38조엔(약 380조원)가량의 국채를 발행해 조달하고 있다. 빚을 빚으로 갚고 있는 셈이다. 재정적자 1000조엔을 단순 계산했을 때 20여년간 매년 50조엔(약 500조원) 정도의 빚을 부담해야 함에도, 일본 정부는 막대한 공공사업이나 돈을 나눠주는 정책을 실시해왔다. 세수입을 고려하지 않고 정치적으로 예산을 편성해 매년 막대한 빚을 내면서도 선심성 예산을 집행해왔다는 의미다. 일본 정부는 이처럼 막대한 예산을 집행해 가면서 병든 경제를 연명해왔지만, 기대만큼 경제를 빨리 회복시키지는 못했다.

버블 붕괴로 금융시스템은 결정적으로 타격을 받았다. 불량채권으로 인한 자금부족으로 도산하는 은행이 속출하는 가운데 자기방어적 분위기가 강해지면서 기업에의 적극적인 자금 지원을 피하는 경향이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많은 대기업은 주가가 반 토막 나고, 부동산 투자 비중이 큰 대기업일수록 그 손실액이 커서 큰 규모의 투자는 더욱 어려운 지경이 됐다. 많은 대기업들은 경쟁에서 밀려나 경영위기를 초래하거나, 인수·합병(M&A)으로 다른 회사로 팔려가는 운명을 맞았다. 또한 세계적인 정보기술(IT) 붐 속에서도 자기방어적인 금융시스템으로 인해 기술개발과 창업도 적극적으로 지원하지 못했다. 그 결과 미국발 IT기업인 구글, 야후 그리고 아마존 등이 일본시장을 독차지하게 되고, 한국의 대기업이 세계 반도체와 스마트폰 시장을 거의 독차지하게 됐다.

그 버블 붕괴 후 많은 논쟁이 있었다. 공공사업과 복지에 대한 재정지출은 곧 일자리와 수요의 창출로 이어지기 때문에 재정지출을 적극적으로 늘려야 한다는 주장과, 기업의 투자의욕을 높이기 위해 법인세를 낮추고 각종 규제를 완화 혹은 철폐하거나 기술개발과 창업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 등이다. 집권 여당인 자민당은 선거에 이기기 위해서, 자연재해에 강한 국토건설이라는 명목으로 방대한 공공사업을 추진하거나 복지라는 명목으로 돈을 직접 나눠주는 포퓰리즘적 정책(에코포인트, 각종 보조금, 어린이수당, 노인수당 등)을 실시해왔다.

자민당의 막대한 재정지출로 심각한 경제파탄은 모면했다고 하지만 부동산가격은 반 토막이 나고, 임금이 하락하고, 빈부격차가 심해져 열심히 일해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계층, 이른바 ‘워킹푸어’라는 단어가 유행하는 등 일본인들의 생활은 어려워졌다. 임금하락, 빈부격차 심화라는 사회환경에서 급격히 성장하는 기업(다이소, 유니클로 등)도 탄생했지만, 결국 임금하락 등으로 일본 국내시장은 오랫동안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정부는 재정지출로 기력을 상실한 기업과 국민들을 오랫동안 먹여 살릴 것인가, 아니면 당장의 어려움 속에서도 기술개발 연구와 창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정책을 실시해 나갈 것인가. 미래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에 당장의 요구에 따라가기 십상이다. 그러나 자손들에게 무거운 짐이 아닌 활기있는 경제를 넘겨주기 위해서는 적어도 단기처방적인 포퓰리즘적 재정정책만은 당장 그만두어야 한다. 일본의 오랜 경제침체는 포퓰리즘적 정책이 낳은 산물이기도 하다.

한국의 정치 상황에서는 포퓰리즘적 정책을 그만두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대통령 단임제하에서 오히려 그 정책을 양산하기 십상이다. 그렇다면 그 정도를 최소화하고, 기술개발 연구와 젊은이들의 창업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 그리고 세계의 인재들이 한국에서도 쉽게 창업할 수 있는 제도를 하루빨리 정비하고, 또 적극 지원해야 한다. 기업이 활기를 찾지 못하고, 창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지지 않으면, 결국 좋은 일자리 창출도, 소득 향상도, 밝은 미래도 없다. 창업과 기술진보를 바탕으로 한 기업활동을 통해서만 지속적인 일자리 확대와 소득 향상이 가능하다. 포퓰리즘적 재정정책은 당장의 고통을 조금 완화시켜주는 일시적 처방에 불과하다. 젊은이들의 창업만이 최상의 일자리 창출이다. 활기찬 기업 활동만이 활기있는 미래를 자손들에게 물려주게 될 것이다.

최동술 | 일본 소비자사회 경제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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