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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인 날이 밝았다. 결과에 따라 조금은 달라지겠지만 우리 모두의 신념은 확고하다. 탄핵이 성사된다고 해도 마냥 기쁜 것만은 아닐 것이다. 실패한다고 해도 결코 끝이 아니며, 따라서 좌절하지 않을 것이다.

어느 것 하나 보장된 것은 없지만 오늘은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가장 추악한 환부를 도려내기 위해 마침내 칼을 빼든 날이다. 국민을 철저하게 기만하고 정치를 난도질해 온 대통령을 심판하는 날이다. 사익을 추구하지 않았다며 반성 없는 대통령에게 국가를 사유화했던 잘못이 얼마나 큰 것임을 분명하게 알려주는 날이다. 치부은폐와 권력연장을 위해 눈 닫고, 귀 막고, 무릎 꿇어왔던 정치인과 정부 관리들에게도 죄를 묻는 날이다.

그리고 홀린 듯이, 취한 듯이 무지몽매하게 나라를 맡겼던 우리 모두의 실수와 오판에 대해 처절히 반성하는 날이다. 숨이란 계속 들이마시기만 할 수는 없는 법이다. 숨이 넘어가지 않으려면 숨을 뱉어내야 하듯이 임계점에 닿은 우리는 이제 이 부조리의 썩어서 악취 나는 호흡을 뱉을 때다. 기도를 꽉 막고 있던 찌든 가래덩어리를 내뱉어 버려야 할 때다.

혁명적 상황이 아니라 혁명이다. 이것이 혁명이 아니면 무엇이 혁명일까? 민의에 의한 혁명을 더럽히는 선택을 국회가 한다면, 역사는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이토록 모든 국민이 하나가 된 적이 있었던가? 박근혜 대통령은 고립무원이다. 고립무원이어야만 한다. 한 줌도 되지 않는 부역자들이야 남겠지만 그들과 함께 국민의 심판을 받아야만 우리의 미래가 살길이 생긴다.

탄핵 통과 여부와 상관없이 사퇴를 요구한다. 이유는 아까운 대한민국의 시간이 낭비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리라고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을 안다. 왜냐하면 깨달을 사람이었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깨달을 사람이었다면 후안무치의 3차례 담화는 분명 달랐을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에는 너무도 아까운 시간이 흐르고 있다. 이런 귀중한 시간을 지연시킬 권리는 대통령, 국회, 헌재를 포함해 누구에게도 없다.

지금 대한민국은 곧 2014년 4월16일의 세월호다. 침몰하는 세월호에서도 그랬듯이 지금의 골든타임은 대통령이 멋 부리며 낭비할 수 있는 시간이 아니라 국민의 목숨과 나라의 운명이 경각에 달린 시간이다. 정부가 야만성에 항거하고, 이웃의 경박한 피로감에 의해 매장당한 공동체 의식을 살려내어 이번에는 침몰을 막아야 한다.

세월호 대책모임 ‘연장전’이 발표한 시국선언문을 떠올린다. “박근혜 정부가 열어버린 지옥에서 우리는 생명보다 죽음에, 진실보다 왜곡에, 슬픔보다 분노에, 애도보다 투쟁에 익숙해져야 했다. 우리는 이 지옥에서 새로운 삶의 가치와 연대를 만들어 낼 진심들을 반드시 인양할 것이며, 또 우리는 304개의 우주를 기억할 것이다.”

우리 모두는 한국의 미래가 민주주의 퇴행을 막고 경제정의를 실현하는 계기가 되기를 원하는 마음을 담아 함께 피눈물로 쓴다. 각계각층의 외침과 준엄한 심판의 소리들은 대한민국의 과거와 현재에 대한 통곡이며, 미래를 위한 기대와 공감의 위대한 합창이다.

창자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신음은 입을 통과해 소리가 되어 울리며, 깊숙이 숨어있던 성찰은 손을 통과해 글이 되어 던져진다. 글과 소리는 여기에 머물지 않고 행동이 되어 저항의 광장으로 돌진한다. 촛불은 횃불이 되고, 횃불은 들불이 되듯이, 결코 뿔뿔이 낱개로 흩어지지 않고 모두 모여 싸워 이기도록 기원할 것이다.

대한민국은 갈림길에 서 있다. 박근혜 게이트는 위기와 기회를 모두 품고 있다. 박근혜와 최순실 무리들이 대한민국을 세계의 조롱거리로 만들어버렸지만, 국민은 일순간에 찬사로 바꿔버렸다. 세계적인 극우준동의 소용돌이 속에서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안보장사꾼들이 판치는 동북아에서 평화를 주도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 국민의 힘으로 정권교체를 실현하고 민주주의를 회복한 다음 정치권을 쇄신하여 양극화 해결에 본격적으로 나설 수 있다. 국가의 진짜 주인이 정치를 되살릴 때다. 시민의 힘으로 민의의 대변자가 되기를 포기한 대통령과 군주의 가신으로 호가호위하는 정치인들에게 준엄한 심판을 직접 내릴 수밖에 없다.

지난 몇 주 동안 부를 때마다 모두를 울컥하게 만들었던 노래를 다시 되뇌어본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김준형 한동대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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